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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장형윤의 <모노노케 히메> 그래도 살아야 한다

고민을 많이 하긴 했지만 말해야겠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듯이 내 인생의 영화는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다!’라고.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이 인생의 영화라고 고백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를 보고 영화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고백이 더 신선할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고백해왔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감독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지만 거의 동시기적으로 보았던 <모노노케 히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성룡을 청룽이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듯이 <모노노케 히메>보다 <원령공주>라는 제목을 택하고 싶다.

<원령공주>를 본 것은 1998년 가을이었다. 그전까지는 한국에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수입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동아리의 프로젝터 상영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일본에서 개봉한 지 1년이 지나긴 했지만 대학의 노천극장에서 <원령공주>를 상영한다고 했을 때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동아리 프로젝터와는 스크린 크기부터 다르다. 극장 스크린만 한 크기로 상영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오랜 고민 끝에 다시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이미 이 영화가 일본에서 크게 흥행한 것도 알고 있었고 여러 잡지를 통해 영화가 뛰어나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영화가 놀랍도록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오프닝의 재앙신의 습격 장면도 상상을 초월하는 박력을 보여줬다. 게다가 재앙신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지렁이 같은 표면의 움직임은 애니메이이션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던 나를 당황하게 했다. 어떻게 저런 작화가 가능하지? 게다가 내용은 또 어떠한가?

이 액션영화 같아 보이는 애니메이션은 인간과 자연의 투쟁을 웅장한 서사시로 그리고 있다. 자연보다는 기술 발달을 중요시하는 인간 편의 에보시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입체적인 인물이어서 악역 없이도 충분히 긴장감을 가진 작품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불로 대표되는 자연에 대한 인간 문명의 서글픈 승리가, 그 쓸쓸함이 이토록 잘 표현될 수 있을까 싶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사슴신이 죽는 장면은 아름답고 슬프다. 재생과 순환을 상징하는 사슴신은 인간의 이기심에 무참히 살해당한다. 오늘날 강을 막고 보를 만드는 것이 환경 파괴로 되돌아오듯이 머리를 잃은 사슴신은 거대한 재앙의 신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남자주인공 아시타카의 대사는 또 얼마나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가? 정말 우리는 그래도 살아야 한다. 생명으로서, 인간으로서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놀랍게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서사와 아름다운 영상미는 이전부터 대단하던 여겼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의심할 수 없는 예술작품의 지위를 부여한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장형윤 애니메이션 감독. 2002년 단편애니메이션 <어쩌면 나는 장님인지도 모른다>로 데뷔. <아빠가 필요해>(2005), <무림일검의 사생활>(2007),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2013)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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