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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근혜의 말과 유연의 말
노순택(사진작가) 2016-11-02

1.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에서 ‘엄마 잃은 소년’ 철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안드로메다로 긴 여행을 떠난다. 미지의 여인 메텔과 동행하는 조건으로 특별무임승차권을 얻었다. 안드로메다는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 은하라지만 빛의 속도로도 230만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다. 우주의 관점에서 가깝다 해도 우리의 관점에선 멀고도 멀다.

2. 박근혜의 ‘말’은 자주 버석거렸다. 기이하고 신비로울 지경이었다. 정치언어라기보다는 무속언어에 가까웠다. 대박을 점치고, 비정상 혼을 저주하며, 우주의 기운생동을 간절히 기원하는 주술의 언어였다. 지상에서 온 것이라기보다 머나먼 안드로메다에서 온 것처럼 들렸다.

3. 1974년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편지를 보냈다. ‘엄마 잃은 소녀’의 가슴에 솟아오르는 그리움을 흔들었다. 엄마 육영수가 최태민의 꿈을 빌려 딸을 걱정하고 있다니 어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이듬해 둘은 만났다. 긴 여행이 시작됐다. 박정희가 걱정할 정도였다.

4. 최태민이 박근혜의 정신적 지주였다는 증언은 차고 넘친다. 근혜는 미지의 여인 순실과 동행하는 조건으로 청와대행 특별무임승차권을 얻은 걸까. 근혜는 투표가 아니라 댓글로, 순실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당선됐다. 순실은 대통령이 된 근혜의 옷과 근혜의 여행과 근혜의 말과 표정까지 관장했다. “아베의 특사를 만날 때, 독도를 언급하면 미소만 지어라”라는 식이었다. 다 큰 인형이었다.

5. 순실의 딸 유연은 ‘말’을 탔다. 딸은 명마를 탔고, 인형은 명언을 토했다. 둘 다 ‘말’이었다. 특별무임승차권으로 강탈한 것들이었다.

6. 철이가 원했던 영원한 생명을 근혜도 원했다. 기계인간이 되거나, 인형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철이는 포기한다. 근혜는 택한다. 근혜의 정치 고향 구미에는 ‘반인반신’이라 새겨진 박정희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돈과 신도를 끌어당기고 있다.

7. 순실정국으로 그네가 흔들린다. 근혜는 접신을 꿈꾼다. 간절히 원하므로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