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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블랙박스] 폭로를 넘어 법과 제도의 개선으로

웹툰계에서 촉발된 성폭력 고발이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문화예술계에 누적된 성차별 이슈가 해시태그를 기회 삼아 퍼져나가고 있다. 영화계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 제작현장과 학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들이 폭로되고 있다. 이 유례없는 움직임은 예술계 전반의 자성을 촉구한다. 가해자의 일시적인 사과를 넘어 재발 방지를 포함한 다양한 후속조치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각계의 노력이 먼저 필요하겠지만 평소 현 이슈에 대한 고민이 많지 않았던 곳이라면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속한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협회’)의 사례를 언급하고자 한다.

2011년 협회에 가입한 한 회원이 외부에서 위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일으켰고, 협회는 피해자의 제보를 통해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대응 매뉴얼이 있을 리 만무했다. 외부 전문단체와 상담하고 회의를 거듭하여 어렵게 중지를 모아나갔고, 긴 시간 진상조사를 거쳐 결국 협회에서 당사자를 제명했다. 협회는 이를 조직 내 문화를 돌아보는 계기로 여겨 이듬해 총회에서 ‘성차별 금지 및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내규’를 제정하고 ‘성평등 위원회’를 설치했다. 이를 통해 회의 때마다 성평등 이슈를 점검하고 매년 성평등 교육을 실시할 기반을 마련했다.

현재 한국 법률에는 성차별 조항이 분산되어 있거나 포괄적이어서 실체법으로 미비한 측면이 있다. 성희롱의 경우도 기관, 직장, 고용 같은 협소한 테두리에 갇혀 있다. 최근 개봉한 <걷기왕>이 촬영 전 실시한 성희롱예방교육도 남녀고용평등법(약칭)에 근거한 것이다. 학생영화 현장이나 사설교육 및 상영공간 같은 그외 현장은 규제의 사각지대다. 해시태그가 폭로와 고발을 넘어 법과 제도의 개선으로 나아가야 하는 까닭이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영화산업의 젠더 이슈를 꼬집는 인상적인 트레일러를 내놓았다. 2015년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 22편 중 여성감독이 0명이고, 벡델테스트(1985년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고안한 영화 내 성평등 지수)를 통과한 작품은 8편에 불과하며, 몇년간 개봉영화의 여성감독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트레일러는 ‘여성은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구호를 역설하였다. 같은 해 서울독립영화제 국내 상영작 중 여성감독의 비율은 45%였다. 산업의 젠더성과 영화 서사의 연결을 부정하기 어렵다. 한국영화 관람객 1억명 시대, 영화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입체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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