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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혼자> 박홍민 감독
이예지 사진 백종헌 2016-11-24

한 남자(이주원)가 복면을 쓴 악당들에게 쫓기고 있다. 눈을 질끈 감고, 악몽에서 깼나 했더니 또 꿈이다. 남자는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골목길을 헤매고 또 헤맨다. <혼자>(2015)는 초반부 실험적인 장르영화처럼 보이지만 흐름을 좇다보면 곧 무의식의 세계를 내밀히 담아낸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는 수면과 해저 깊은 곳을 오가는 능숙한 잠수부처럼 유영하며 의식과 무의식의 궤적을 추적한다.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낸 박홍민 감독은 꿈과 현실, 감독과 관객의 자리를 오가며 메타적 구조를 겹겹이 쌓는다. 진도의 씻김굿을 소재로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3D영화 <물고기>(2011)로 데뷔한 박홍민 감독은 이번에는 <혼자>로 서사와 형식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했다. <혼자>는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상과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상과 올해의 배우상(이주원)을 받았고, 밴쿠버국제영화제와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등의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런던한국영화제에서 막 귀국한 박홍민 감독을 만나 영화 안팎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두 번째 장편 <혼자>가 영화제들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의 초청으로 런던한국영화제를 갔다가 어제 돌아왔다. 토니 레인즈가 첫 장편 <물고기>에 이어 <혼자>도 좋게 봐준 덕에 두편 모두 상영했다. 첫 장편 <물고기> 이후 공백이 길어 잊히지 않았을까 했는데, <물고기> 감독의 차기작으로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부산국제영화제 남동철 프로그래머도 이번 영화가 좋다고 격려해주시더라. 큰 용기를 얻었다. (웃음)

-<혼자>는 한 남자의 내면을 깊게 파내려가는 영화다. 자전적 이야기라고.

=<물고기> 이후 <황사>라는 작품을 준비했는데, 제작하기로 한 곳과 삐걱대다가 결국 진행이 안 됐다. 이후 4년간 수익도 없고 돌파구도 보이지 않아 방에만 있었다. 사람이 힘이 드니 시야가 좁아지면서 피해망상도 생기고 아버지를 미워했던 어린 시절 기억도 떠오르더라. 그런 스스로를 돌아보며 만든 영화다. 영화 속 수민(이주원)은 자신의 고통을 가까운 주변에 투사하면서 더 외로워지는 자기중심적 인물이다. 그런 행동이 끝나지 않는 한 그의 악몽은 계속될 거고. 심리 치료 중 역할극을 통해 내가 한 행동을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걸 보는 과정이 있지 않나. 그런 연장선상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자기 객관화를 하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치유적 속성이 있다. 창작자에게 치유가 되듯, 영화를 본 관객에게도 위로를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게임플레이를 연상시키는 시점숏, 과감한 컷 전환, 롱테이크 등 다양한 형식 실험이 있다. 3D영화인 <물고기>부터 형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효과적인 방법들을 이용했다. 같은 대화 신이어도 투숏으로 찍을 수도 있고 오버숄더숏으로 보여줄 수도 있고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데, TV드라마 같은 경우는 굉장히 패턴화되어 있다. 전형적인 패턴을 내려놓고 펼쳐놓은 뒤, 내가 고민하는 걸 흥미롭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갔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시간의 흐름과 개연성에서 자유롭게 내러티브를 구성했다.

=난 환상과 현실을 굳이 구분 짓지 않는다. 상상하는 것도 어떤 점에 있어선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정확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영화 자체도 현실이 아니잖나. (웃음) 나는 현실에 얽매이기보다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 때 그것이 왜 생겼을까를 고민한다. 거기에도 나름의 인과가 있다. 이를테면 한 프로그램에서 꽃게의 등판을 뜯어서 알이 풍성하다고 보여주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났을까 분석해보니, 과거 회사 다닐 때 착취를 당하고 뜯겨서 전시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거다. 이렇게 감정을 추적하는 과정을 거친 뒤 그것에 맞는 내러티브를 넣는 방식이다.

-어떤 법칙에도 얽매이지 않는 <혼자>가 정박해 있는 곳은 공간이다. 수민은 영화 내내 재개발 지역을 떠나지 못한다.

=내가 사는 신당동 제9재개발 지역과 내 원룸을 배경으로 찍었다. 옥상에서 이 동네를 몇년간 바라보면서 내 머릿속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머릿속 기억의 파편이 쌓여 있듯이 수많은 집들과 사람들이 보인다. 재개발과 철거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은데, 사람의 기억도 없애버리고 싶은 것일지라도 다 안고 살아가는 것 아니겠나. 기억을 공간에 빗대서 은유했다.

-에셔의 그림처럼 논리에서 벗어난 착시 같은 장면들이 있다. 왼쪽 계단에서 올라오는데 카메라가 패닝하면 오른쪽 계단을 오르고 있는 신이 인상적이더라.

=옥상에서 망원렌즈로 당겨서 찍고, 타이밍 연결만 CG로 합성해 붙인 거다. 미로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초반부엔 카메라가 클로즈업으로 수민을 따라가다 점점 수민과 떨어져서 그가 헤매는 공간 전체를 풀숏으로 찍었는데, 한 사람의 머리가 동네가 될 수도 있고, 동네가 우주가 될 수도 있고, 그 우주가 한 사람의 머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초반부는 <엣지 오브 투모로우> 같은 장르영화처럼 보인다. 장르영화를 기대한 관객은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런 얘길 많이 들었다. (웃음) 초반엔 관객이 수민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쉽게 몰입할 수 있게 하기 위해 1인칭 시점으로 시작하고, 그 후엔 수민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취했다. 돌멩이가 수면에 떨어질 때 처음엔 물이 튕겨 오르지만 곧 깊은 곳으로 잠겨가듯이. 장르적인 기대감을 내려놓으면 이 영화만의 리듬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웃음)

-수민 역 배우 이주원이 전라 연기까지 감행했다.

=물론 골목길을 철저히 통제해 사람을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웃음) 카메라 배터리가 방전될 정도로 추운 날씨였으니 얼마나 고생스러웠겠나. 무엇보다 연출자를 깊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준 점이 감사했다. 품이 넓은 배우다.

-제작사 농부영화사를 차려 직접 제작했다.

=(이)광국 형이 많은 도움을 줬다. 그가 <꿈보다 해몽>(2014)을 찍을 때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극복하고 밀어붙여 찍더라. 나도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며 제작사 차리는 법도 알려줬다. 1인 제작사지만 <혼자>의 차혜진 작가 겸 프로듀서가 도와주고 있다.

-차기작은.

=남동철 프로그래머가 불법 다단계를 다룬 스릴러 <황사>를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에 내보라고 권유해서 준비 중이다. 실상을 알기 위해 잠입 취재도 하고 있다. (웃음) 하나는 내 제작사에서 준비 중이다. <영화 너머에>라는 작품으로, 내가 영화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것을 그려낸 미스터리 판타지다. 나는 내가 느끼고 맞닿아 있는 것들을 영화로 하고 싶다. 대중과 소통이 잘되는 편은 아닌데, 어설프게 못하는 걸 잘하는 척하고 싶진 않다. (웃음) 상업영화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을 모아 교집합을 만들지만 다양성영화는 영화에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것도 영화가 될 가치가 있다는 걸 보이고, 한계를 확장해나가는 거다. 앞으로도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을 영화로 만드는 데 몰두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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