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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인터뷰] "<카우보이> 시나리오는 마치 ‘내 노래’ 같더라" - <카우보이> 감독·<예언자> <러스트 앤 본> 시나리오작가 토마 비드갱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16-11-24

<예언자>(2009), <러스트 앤 본>(2012), <디판>(2015)에 이르기까지 시나리오작가 토마 비드갱은 자크 오디아르의 영화세계를 구축하는 데 숨은 지지대 역할을 해왔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아내와 대학 때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토마 비드갱은 그 인연으로 자크 오디아르와 영화에 관한 의견을 함께 나누던 지인이었다. 배급 업무에 종사하던 그는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2005)의 시나리오에 참여한 걸 계기로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대상을 수상한 <예언자>에 정식으로 크레딧을 올리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베르트랑 보넬로의 <생 로랑>(2014), 에릭 라티고의 <미라클 벨리에>(2014)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전방위적인 작업을 해오던 그가 이번에 첫 연출작 <카우보이>(2015)로 또 한번의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카우보이>는 집 나간 딸을 찾아나선 평범한 가장 알랭(프랑수아 다미앙)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부극이라는 형식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첨예한 문제로 대두된 서구 사회와 모슬렘의 충돌과 대립을 그려낸 독특한 작품이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프렌치 시네마 투어 2016과 2016 KAFA+ 마스터클래스 참석을 위한 짧은 한국 방문. <카우보이> 연출가로, 또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해온 토마 비드갱에게 그간의 활동과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시나리오작가에 이어 <카우보이>로 연출자로 데뷔했다.

=지인이 스위스에 있는 카우보이 커뮤니티의 사진을 줬는데, 그 사진을 본 순간 서부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클래식한 장르의 영화들에 항상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카우보이라는 소재에 관심이 가더라. 오랫동안 글을 써오면서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글로는 담을 수 없는 부분을 직접 표현하고 싶었다. 열번, 스무번 수정해서 안되는 것도 배우들에게 귓속말 한번으로 해결될 때가 있다.

-시나리오작가로 작업할 때와 연출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어려운 점은 배우와 함께 작업하고 호흡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버지 알랭 역을 연기한 프랑수아 다미앙은 각본 작업을 한 <미라클 벨리에>에서 함께 작업했는데, 주로 코믹 연기를 해온 배우였다. 그가 가진 기존 이미지를 없애고 다시 진지한 배역에 몰입시키는 것이 어려운 점 중 하나였다. 아들 조지를 연기한 피네건 올드필드는 연기 경험이 별로 없었다. 17살의 어린 나이인데 주인공에 걸맞게 연기하도록 하는 게 고충이었다. 이렇게 두명의 주인공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전환하는 게 쉽지 않더라. 물론 작가들이 참고해야 할, 하지 말아야 할 법칙 같은 것들을, 감독이라는 권한으로 자유롭게 해볼 수 있다는 건 좋은 점이었다.

-이번 시나리오는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탐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웃음) 첫 연출작인 만큼 오랜 파트너인 오디아르 감독의 조언이나 평가가 궁금하다.

=이 시나리오는 마치 ‘내 노래’인 것 같더라. 자크 오디아르 영화로 볼 때는 너무 회한에 가까운 어조라 그가 결코 만들지 않을 영화인 것 같기도 했다. 이번 것은 내가 불러야겠다는 생각에 직접 연출까지 하게 됐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도 전적으로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우려도 하더라. 친한 친구가 영화를 만든다고 하는데 만약 영화가 잘 안 되면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지 않나. 그러니 여러 생각이 들었을 거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그가 이런 말을 하더라. “시나리오작가는 직업 같은 거고, 감독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될 거다.” 촬영하면서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현대 서구 사회를 그리는데, 서부극의 형식을 빌려왔다. 리얼한 세계의 문제를 담는 데 서부극이라는 장르가 어떤 효과를 가져다줄 거라 생각했나.

=영화를 만들면서 나는 장르를 통해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고 그렇게 작업해왔다. 갱스터, 멜로드라마, 전기, 지금의 서부극까지 내가 쓴 모든 시나리오가 장르 영화에 기반하고 있다. 장르는 민주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관객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다. 장르라는 기차에는 모든 사람들을 태울 수 있다. 그리고 일단 출발하면 복잡다단한 이야기들을 전개할 수 있다. <카우보이>는 ‘딸을 찾는 아버지’라는 간단한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시작은 심플하고 그래서 진입하기가 쉬운데, 막상 들어가면 그 안에 다양한 사람이 등장하고, 지역사회의 복잡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부분에 관해서 봉준호 감독의 작업과 비교해서 말하고 싶은데, <살인의 추억>(2003)이나 <괴물>(2006)을 보면 장르영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이런 영화를 통해서 한국이라는 사회를 유추하게끔 해준다. 5천km 떨어진 타지에서 이 영화를 봤지만 그의 영화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이해할 수 있다.

-가출한 딸이 이슬람 지하드에 가담하고, 아버지는 그 딸을 찾아 헤맨다. 카우보이와 미국 인디언의 관계를 그린 서부극의 틀을 통해 서구인과 이슬람인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존 포드의 <수색자>(1956)가 연상된다.

=현대사회에서 문명간의 전쟁, 갈등을 이야기할 때 서구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갈등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건 마치 예전 카우보이와 아메리칸 인디언들과의 관계에 비교해볼 수 있다. <수색자>의 주인공인 존 웨인은 폭력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면을 가진 인물로 친밀한 캐릭터는 아니다. <수색자>를 시발점으로 영향을 받긴 했지만 <카우보이>는 거기서 더 나아간다.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치는 동안 결국 아들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삼대에 걸쳐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들 세대는 아버지 세대보다 더 발전되어가길, 그런 모습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주축이 되었다가 아들의 이야기로 본격적으로 전환되는 구조가 매우 파격적으로 보인다. 마치 두편의 영화가 이어진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 만큼 위험한 선택이었다.

=시나리오 작법 책의 2페이지를 보면 ‘말 경주를 할 때 경주 말을 바꾸면 안 된다’는 법칙이 있다. 시나리오 작가에겐 일종의 정석 같은 것인데, 나는 그 법칙을 깨고 중간에 주인공을 바꾸었다. 난 할리우드영화의 내러티브가 너무 포맷에 맞춰져 있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모든 사물이나 사건이 우리가 예측하는 것과 같지 않고 항상 빗나간다는 거다. 오히려 요즘 TV드라마를 보면 훨씬 내러티브가 유연하고 자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4회차에 주인공의 절반이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있지 않나. 관객 역시 그런 시리즈에 익숙해 있다. 영화에도 충분히 이런 유연함을 적용시킬 수 있다고 본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과 작업 스타일을 보니 시나리오를 탈고하고 나면 연출자의 손에 전적으로 맡기는 게 아니라 서로 매일 촬영분을 피드백 과정을 거치고 새롭게 시나리오를 고쳐나가는 방식의 작업을 견지해왔다. 이런 방식은 기존 영화현장과는 상당히 다른 메커니즘일뿐더러 자크 오디아르에게 토마 비드갱 같은 작가가 있을 때 가능하다. 연출할 때도 같은 방식과 같은 협업자가 존재했을 것 같다.

=시나리오작가는 스토리만 쓰는 게 아니라 결국 ‘영화를 쓰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시나리오작가가 시나리오를 써서 감독에게 주고, 그걸 그대로 감독이 연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믹싱을 할 때까지 시나리오는 계속 쓰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크 오디아르와 작업할 때 대화를 많이 나누었고, 매일매일 내용을 확인하면서 시나리오를 고쳤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대치했던 장면이 논의를 거치면서 화해의 장면으로 바뀐 적도 있다. <생 로랑>을 만들 때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과도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과 작업할 때 그래서 우리에게는 ‘B 공책’이 있었다. 일종의 플랜B 같은 것인데, 배우들과 리허설하면서 바뀐 내용, 프로덕션을 진행하면서 나눈 모든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공책이다. 이렇게 모아둔 것들은 정식 각본에는 없지만 편집 때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는 또 하나의 각본이 된다. 이번 <카우보이>를 공동 작업한 신인 작가 노에 드브레와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했다.

-다양한 분야의 영화 작업에 참여해왔다. 특히 영화 비즈니스인 배급을 시작으로 창작 영역인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연출에 도전했다.

=새로운 일에 시도하는 걸 좋아한다. 십수년간 시나리오작가 활동을 했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있었다. 지금도 시나리오 작업을 그만둔 건 아니다. 배급 일도 돌아보면 결국 작가 활동에 도움이 많이 됐다. 왜 관객이 10달러나 내고 이 영화를 보러 올까 하는 고민을 계속 해야 했고, 시나리오 작업할 때도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했다. 그리고 시나리오작가가 된 계기를 돌이켜보면 제작하다가 캐스팅이 안 되고 가망 없던 시간들을 만나면서였다. 한 1년간 진척 없이 고배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때 LA에서 활동하는 한 촬영감독을 만났다. 그는 일주일 만에 나오미 와츠와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하더라. 나는 그렇게 매달려도 안 되는 걸 그는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해냈을까. 그날 호텔 방에서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데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일단은 영화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장르, 규모, 어떤 위치의 영화인가, 감동을 주는 영화인가, 무서움을 주는 영화인가 이런 모든 사항을 먼저 정리하고 고심하는 일이다. 이 요소들을 통해 만든 ‘박스’가 규정되면 내용물(이야기)을 채우는 것은 그때부터 시작하면 된다.

-더 앞선 기억을 되짚어보자. 원래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더불어 시나리오작가로 글쓰기에 대한 소질은 언제 발견했나.

=20대 중반에 배급 일을 시작했다. 배급은 내가 생각해도 어느 정도 중간은 한 것 같은데, 제작자로서는 잘 못했던 것 같다. (웃음) 내 이야기로 쓴 첫 번째 이야기가 3일 뒤에 팔리고, 또 한편을 쓰고 나서 세 번째 영화가 <예언자>였다. 글 쓰는 건 항상 좋아했고, 특히 스토리텔링에는 취미가 있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고, 특히 여성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웃음) 영화와 인연을 맺은 건 대략 7, 8살 때로 생각되는데, 제일 친한 친구의 엄마가 당시 영화관에서 일했다. 작은 상영관의 검표원이셨다. 덕분에 20살 때까지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그 극장에서는 옛날 영화, 특히 미국 장르영화를 주로 상영했는데, 누아르영화나 MGM의 뮤지컬영화, 서부극들을 보면서 자랐다. 2010년 <예언자>로 세자르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각본상을 받았을 때 그분에게 감사한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내게 이런 영향을 줬는지 몰랐다며 깜짝 놀랐고 매우 감동받았다고 하시더라. (웃음) 이후 혼자 영화를 보는 습관이 길러졌다. 특히 <사냥꾼의 밤>(1955, 찰스 로턴이 연출한 범죄 누아르)을 보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극장에서 나오지 않고 다음 회차, 또 다음 회차를 연달아 봤던 기억이 난다. 전공도 경제학이었고, 가족도 이 분야와는 전혀 다른 일을 했으며, 영화계에 지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구체적으로 영화 일을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데, 인턴 일을 할 때나 리포트를 제출하는 일을 할 때도 영화와 관련된 것들을 했다. 그렇게 영화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인지 결국 영화 일을 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과의 작업을 비롯해 <카우보이>까지 리얼함을 반영한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너무 리얼하면 따분하고, 너무 스타일리시하면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을 했다. 리얼리티를 적극 반영하는 것과 더불어 영화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스토리텔링의 상관관계에서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자칫 스토리를 위해 리얼함이 소구되거나, 리얼함으로 스토리를 포기할 수 없다. 작가로서 연출가로서 이 부분에 대한 해법이 있다면.

=내 영화는 항상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를 대변하고 우리의 삶을 반영하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또 그러면서도 과감하고 야심찬 것들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적인 것, 창의적인 걸 하더라도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것들을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다. <러스트 앤 본>도 2008년 경제위기가 닥쳤던 당시 인물들이 겪는 어려움을 통해 당시 자본주의의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을 통해 동시에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또 상당히 판타스틱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냥꾼의 밤>이 바로 이런 두가지 지점의 균형을 잘 맞춰준 영화였고, 이후 내가 영화를 만들 때 큰 영향을 끼쳤다.

-<카우보이>의 연출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제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영화에 어떤 변화가 올까 걱정했었다. (웃음) 앞으로 계획을 들려달라.

=다음 작품은 자크 오디아르 감독과 같이 한다. (웃음) 공동 각본이고 1850년대 골드러시 당시 이야기를 그린 서부극이다. 미카엘 로스캄 감독이 연출하는 갱스터물 <불 헤드>와 무인도에 갇힌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HBO> 미니시리즈 각본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