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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장도연의 <트루먼 쇼> “상황을 바로잡아!”
장도연(개그맨) 2016-11-30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불운은 한꺼번에 닥친다고, 안 좋은 일이 겹쳐 일어날 때 ‘이게 현실이 아니었으면’. 그러다 누군가가 ‘몰래카메라였습니다! 속았지, 이 녀석아!’ 하고 웃으면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멀쩡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다. 되지도 않는 상상이지. 거꾸로 내가 아끼는 가족이 혹은 친구가, 인생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가짜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라면, 일상의 모든 것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모든 게 잘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거라면 과연 어떨까.

태어나면서부터 트루먼(짐 캐리)의 일거수일투족은 전세계에 생방송으로 중계된다. 그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고 믿지만 모든 것은 감독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에 의해 철저하게 만들어진 극이다. 그가 생활하는 곳은 커다란 세트이고 만나는 사람들, 심지어 친구와 가족 모두 ‘트루먼 쇼’를 위한 배우다. 어느 날 트루먼은 하늘에서 조명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의 삶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아내는 대화 중에 느닷없이 어딘가를 응시하며 코코아 광고를 하고 그가 일상을 벗어나려 할 때마다 밖에 나가면 큰일이 날 것처럼 폭풍 경보가 울리거나 사고가 난다. 사람들은 이 모든 장면을 TV로 보며 자기 일처럼 감정이입하며 안타까워한다. 크리스토프의 의도에 따라 살아갈 뿐이던 트루먼은 진짜 삶을 찾기 위해 쇼에서 탈출하려 애쓴다. 크리스토프는 “부조리와 부정부패가 남발하는 바깥세상은 아름답지 못하다”며 트루먼에게 부와 명예를 보장할 테니 이곳에 남으라고 회유한다. 하지만 트루먼은 ‘시청자’들에게 말한다. “못볼지 모르니까 미리 인사하죠. 굿애프터눈, 굿이브닝 앤드 굿나이트.” 트루먼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크리스토프를 한방 먹이는 장면. 트루먼이 떠나는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아쉬워하… 기는 개뿔, 다른 재밌는 거 없나 하며 망설임 없이 채널을 돌린다. 두 시간 남짓한 영화도 엔딩 크레딧까지 보며 여운을 즐기고 일어나는 게 예의건만! 직업 때문에 내가 과몰입한 것일 수도 있지만, 허무했다. 그리고 서운했다. 최소한 트루먼의 뒷모습을 보며 그의 미래에 대해 몇 마디 정도는 나눌 줄 알았지.

크리스토프를 연기한 에드 해리스는 <설국열차>(2013)에서도 열차를 지휘하는 엔진칸 주인을 연기했다. 지휘자로 적임자인 것인가? 짐 캐리는 이름대로 ‘하드캐리’했다. <에이스 벤츄라>(1994)의 모지리와 <이터널 선샤인>(2005)의 슬픔 가득한 남자의 모습, <마스크>(1994)에서의 유쾌함까지. 트루먼 역에 다른 배우가 명단에 올랐었다는데 짐 캐리가 아닌 트루먼은 상상이 가질 않는다. 특히 떠날 때 슬픈 눈에 미소 띤 모습은 트루먼 그 자체였다. 장르가 코미디라고 되어 있지만 나에게는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무섭고 자극적이었다.

<트루먼 쇼>(1998)는 리얼 프로그램이 판치는 요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도 카메라 앞에서 일하는 사람이지만 ‘100% 리얼’이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요즘 하도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니까 영화 같은 얘기라고 생각했던 <트루먼 쇼>가 오히려 현실처럼 느껴진다. 우리에게도 크리스토프 같은 존재가 있어서 “상황을 바로잡아!”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좋을 텐데. 그리고 다들 그랬을 것 같지만, 내가 만약 트루먼이었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봤는데… ‘장도연쇼’라…. 전체 관람가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시청률은 잘 나올 거다.

장도연 개그맨. 2007년 KBS 22기 공채 데뷔. tvN <코미디빅리그>에 출연하고 있으며,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에 채널CGV 페이스북과 네이버 TV캐스트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소개 프로그램 <아가씨-네>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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