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디스토피아로부터
[조광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정원사 챈스의 외출

폴란드 망명자 출신의 코신스키는 1971년 <정원사 챈스의 외출>(Being There)이라는 소설을 썼다. 소설은 1979년 피터 셀러스와 셜리 매클레인 주연으로 영화화됐다. 미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지자 우리나라에 책이 번역되었고, 그것을 내가 읽은 모양이다. 책은 두어 차례 더 번역된 후 절판되었고, 영화는 수입되지 않은 것 같다. 영화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에 <챈스>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아주 어려서 고아가 된 이후 중년이 되기까지 정원사로 살아온 챈스는 평생 저택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보다 지능이 낮은 그의 유일한 낙은 TV를 보는 것이고, 그는 현실 세계와 TV 속 세계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 고령의 주인이 죽자 그는 주인의 고급 신사복을 입고 처음으로 세상으로 나오는데, 길을 가다가 엘리자베스의 차에 치인다. 엘리자베스는 대통령과 자주 독대할 정도로 저명한 재계인사 랜드의 부인인데, 챈스가 치료차 그 집에 머무르면서 일이 점점 꼬인다.

성이 따로 없는 그는 ‘정원사 챈스’라고 자기를 소개하지만 ‘촌시 가디너씨’라고 불리게 된다. 정원 일밖에 아는 게 없어 무슨 질문에도 그에 터를 잡아 대답하는데, 그것이 사업이나 경제에 관한 탁월한 비유로 여겨진다. 갑작스럽게 랜드 집을 방문한 대통령은 동석한 그에게 미국 경제에 대해 묻는다. 그는 “성장에는 각기 계절이 있습니다. 뿌리가 살아 있는 한, 다시 봄과 여름이 오면 모든 것은 정상으로 회복됩니다”라는 선문답을 하고, 대통령은 경제낙관론에 대한 심오한 비유로 받아들여 연설에 인용한다. 대통령의 연설 이후 중요한 인물이 된 그는 TV에 초대된다. 멋진 외모와 (지적장애로 인한) 평화로움과 솔직함을 지닌 그는 현안에 대한 본질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인물로 큰 인기를 모으고, 급기야 오해된 대화와 미디어의 호들갑 속에 부통령 후보로 내정된다.

이 이야기는 그저 코미디인가. 최근의 정치 상황을 보면서 나는 중학 시절에 읽은 이 책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물론 우리의 지도자는 챈스 같은 지적장애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수천만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이해력과 판단력을 가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의 사태는 윤리적이고 법률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에게 결여된 근본적 판단 능력과 무관하지 않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준비된 원고 없이는 기자의 질문을 받을 수 없는 지도자가 어떻게 가능한가. 그가 원고 없이 말한 것을 녹취한 문장에는 언어의 구조가 자주 와해되어 있다. 나는 솔직히 그가 정상적으로 서강대에 입학하고 졸업했다고 믿기지 않는다. 그는 성공한 정유라일지도 모른다. 어떤 조직의 팀장을 맡아도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은 그가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을까. 앞으로 긴 시간 한국 정치의 숙제가 될 것이다. 아버지의 빗나간 후광이 막대한 정치적 자산을 남겼지만 모리배가 활개를 치는 후진적 정치와 왜곡된 언론 환경의 배양 없이 이러한 참사가 가능했을까.

논픽션 작가라면 그의 전기에 도전해야 한다. 제대로 쓰여진다면, 한국 현대사와 한 인간의 눈물겨운 분투 그리고 공동체의 위기를 그처럼 잘 드러내는 텍스트는 향후 100년간 불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