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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을 뒤흔들기 시작한 그들의 아주 특별한 나라 사랑 <우리 손자 베스트>
정지혜 2016-12-07

2016년 12월, <우리 손자 베스트>가 관객 앞에 도착한 건 상당히 시의적절하다. 아니, 위악적 현실이 부른 당연한 결과다. 현재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적나라하게 씹고 뜯고 비튼 블랙코미디가 아닌가. 교환(구교환)은 소방 공무원이 꿈이라는데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교환이 열을 올리는 건 PC방을 기웃거리며 게임 속 성우의 목소리를 자의적으로 짜깁기해 시위 현장 사진과 합성하고는 키보드 워리어들의 세상 ‘너나나나베스트’에 올리는 일이다. 탑골공원에 출근 도장을 찍는 어르신 정수(동방우)는 ‘애국’이라는 자기 소명 아래 종북 좌파 척결에 여생을 바칠 준비가 끝났다. 그런 교환과 정수가 통했다. 세대로만 보자면 접점이 없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이 있는 광화문광장에서 교환은 그들을 비웃듯 피자를 먹으며 인증숏을 찍었고 정수는 좌파 척결을 외쳤다. 둘의 무서운 연결 고리다.

교환과 정수와 이들 주변인들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한국 사회의 이념적, 탈이념적 논쟁의 지점에 대해 자기식으로 대응하고 행동한다. 교환의 가족만 봐도 여러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 교환은 386세대 아버지를 보며 민주화를 ‘좌파들의 논리에 제압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여동생 미선(2002년 미군 장갑차에 압사한 효순, 미선양을 떠올리게 한다)은 탈조선을 준비한다. 교환은 속옷만 입고 있는 미선을 몰래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도 반성이 없다. 엄마도 이 가족에게 거는 기대가 없다. 이들은 편의점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서로의 안부조차 궁금해 하지 않는 이름뿐인 가족 공동체다. 정수는 과거 기지촌에서 일하다 미군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일명 ‘박카스 아줌마’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각자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이 아비규환을 보고 있자면 쓴웃음을 넘어 공포가 밀려온다. 세대, 이념, 지역, 젠더의 차를 차별과 공격의 언어로 바꿔버리는 여기 대한민국의 단면이 영화 내내 펼쳐진다. <창피해>(2010) 등을 연출한 김수현 감독의 네 번째 장편으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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