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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소녀를 만나다
2002-04-03

비디오카페/p찍음

그와 그녀가 수상하다. 같은 대여점 안의 아르바이트생인 그들은 같은 저녁 시간에 근무를 하지만 요즘 들어 점점 친해지고 있는 듯하다. 그가 처음 가게에 등장한 건 작년 수능이 끝난 직후. 올해 초 들은 바에 의하면 지원한 대학에 모두 떨어졌다는데 그 뒤의 이야기는 알 수 없다. 미숙했던 그의 곁에서 일처리를 코치해준 그녀. 그녀의 경력은 족히 8개월은 넘었으며 엿들은 바로는 화학공학과 4학년이었는데 올해 대학을 졸업했는지는 미지수다.

함께 있을 때 그들은 언제나 즐겁다. 주로 그가 농담거리를 던지면 그녀가 웃음으로 화답하는 방식인데, 그럴 때 그의 표정은 너무나 행복해보인다. 그 순간에 저만치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랑 눈이 마주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미소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한참 동생인 그를 귀여워해 주며 가끔 애정이 실린 핀잔을 주기도 하는 그녀의 모습 역시 미소를 자아내기는 마찬가지.

최근에 엿들은 가장 반가웠던 그와 그녀의 대화는, 나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상습적으로 연체료를 물며, 그 사실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한다는 거였다. 아무리 아르바이트생이라도 연체료는 꼬박꼬박 내야 하는지, 서로 각자가 부담한 연체료에 대해 손뼉까지 쳐가며 억울해하는 둘의 모습은 절박한 동지애를 느끼게 했다. 그러나 내가 뭔가를 호소하는 듯한 눈빛으로 카운터에 다가가 비디오를 내밀자 둘은 친밀감을 후다닥 벗어던지고 건조한 어투로 선언했다. “연체료 삼천원이요.” 그렇다.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할 줄 아는, 애정으로 건립된 둘의 세계에 끼어들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bnai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