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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박석영의 <언더그라운드> 1997년 가을에 본 그 영화
박석영(영화감독) 2016-12-28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 당황한다.

사랑하는 배우는 어쩌면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존경하는 감독도 단숨에 몇명을 꼽을 수 있는데,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는 질문에는 늘 우물쭈물한다. 하물며 내 인생의 영화라니, 더욱 난감하다. 예전에는 그런 질문에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안개 속의 풍경>(1988)을 말했던 것 같다. 가끔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를 꼽기도 하고, 임권택 감독의 <짝코>(1980)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1954)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소나티네>(1993)를 좋아하기도 했고,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2007)나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1991)이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인생의 영화라고 하면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의 <언더그라운드>(1995)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997년 가을, 나는 뉴욕에 있었다. 그해 한국에 IMF가 닥쳤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한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부모님께는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가을학기 등록을 하지 못했고 매일 빨래방에서 남의 빨래를 대신 해주는 일을 했다. 학생비자를 연장할 수 없었던 나는 곧 불법체류자가 될 상황이었고, 별다른 방법도 없었다. 망해가는 나라의 국민으로 흡사 무국적자가 된 듯한 일상의 불안감을 떨칠 수 있었던 곳은 앤솔러지 필름 아카이브라는 맨해튼의 오래된 시네마테크뿐이었다.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1989)을 좋아했던 나는 <언더그라운드> 상영 소식을 듣고 곧장 극장으로 향했다. 보통 네댓명 정도의 시네필들만 있던 극장은 그날따라 만석이었다. 나는 겨우 보조석을 구했고, 접이식 의자에 앉아서 떨리는 마음으로 영화를 기다렸다.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처음부터 눈물이 나서 계속 훌쩍거렸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극장을 나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 추웠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울렁거렸다. 길거리에서 혼자 노래를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갑자기 모르는 사람의 손을 잡고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뭔가 깊이 이해받고 푹 따뜻하게 안겼다가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더이상 우울하지 않았다.

‘꽃 3부작’을 함께한 정하담 배우에게 영화를 추천하면서 <언더그라운드>를 다시 찾아봤다. 이 작품이 내가 20년 전 본 영화가 맞는지 의심하게 됐다. 영화는 여전히 좋았고 화면도 기억보다 선명했지만, 마음에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절반쯤 보다가 멈췄다. 어떤 영화들은 자신의 인생과 함께 기억되는 것 같다. 20년 전 타지에서 떠돌던 불안한 날의 내가 그때의 영화와 운명처럼 묶여 있는 것이다. 이제는 사라진 극장의 스크린과 그 영화를 보고 있는 내가 영원히 함께 ‘상영되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내 인생의 영화’는 1997년 가을, 26살의 내가 보았던 <언더그라운드>다.

박석영 영화감독. <들꽃>(2014), <스틸 플라워>(2015), <재꽃>(2016)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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