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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스타워즈>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완벽하게 메운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허지웅(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민소원(일러스트레이션) 2017-01-02

우리는 예수의 생애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그가 어떻게 아버지 없이 태어났고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며 이후 그의 나이 12살에 예루살렘을 찾았던 일도 알고 있다. 일찍이 메시아로 예언되었던 그가 30살이 되어 세례를 받고 공생애가 시작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12살부터 30살 사이, 그러니까 공생애 이전의 알려지지 않은 기간에 관해서는 알 방법이 없다. 공식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기간을 다룬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마틴 스코시즈가 영화화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없다. 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신성모독이다.

<스타워즈> 연대기를 신약에 비교한다면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는 바로 이 ‘알려지지 않은 기간’에 관한 이야기다(이건 타당한 비교다. <스타워즈>는 수많은 신화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특히 기독교의 신약과 메시아 전설로부터 가장 큰 모티브를 가져왔다).

신약이 예수의 생애를 기록했듯 <스타워즈> 연대기는 스카이워커 가문의 3대에 걸친 이야기다. 우리는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어떻게 아버지 없이 태어났고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며 이후 제다이가 된 그가 클론전쟁의 중심에서 어떤 영웅적인 성취를 거두었는지 알고 있다. 일찍이 메시아로 예언되었던 그가 어떻게 타락한 제다이로 전락하여 다스 베이더로 거듭나게 되었는지도 알고 있다. 다스 베이더가 데스스타의 설계도를 탈취한 레아 공주를 추적하는 저 유명한 장면 또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 베이더로 거듭난 이후, 그리고 그런 그가 레아 공주를 뒤쫓는 이야기 사이의 사연은 알 길이 없었다. 저항군을 다룬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있었지만, 이 기간을 완벽하게 메울 수 있는 이야기는 없었던 것이다.

<로그 원>은 바로 이 시기, 정확히는 저항군이 어떻게 데스스타의 설계도를 탈취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영화다. 심지어 팬픽이 아니라 공식적인 외전 에피소드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신약이 새로 추가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흥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로그 원>은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이하 <새로운 희망>)이 있기 이전, 모두가 아주 조금의 희망도 없이 제국군의 폭정 아래 신음하고 있을 때 얼마나 크고 아픈 희생을 들여 반격의 기회를 얻어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영화는 본래의 7부작을 모르더라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볼 수 있다는 것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원작을 몰라도 괜찮다는 말만 듣고 극장을 찾은 관객은 정말 괜찮은 정도만 경험하고 나오게 될 것이다. 반면 <스타워즈> 세계관에 관해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그러니까 X윙과 Y윙의 레드 리더, 골드 리더가 나올 때 주먹을 꽉 쥐게 되고 초반부에 주인공이 탈출하는 강제 노동수용소 행성의 이름이 ‘오비완’ 철자의 아나그램이라는 걸 눈치채며,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에피소드4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완전무결한 이음새라는 사실에 전율하는 관객이라면, <로그 원>은 끝내주는 영화다.

<로그 원>의 가장 큰 즐거움은 명백하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가장 비싼 시각효과를 보여주는 건 언제나 가장 나중에 나온 영화였다. 그러나 가장 진보적인 미감을 보여준 건 언제나 변함없이 오리지널 시리즈였다. 에피소드4, 5, 6 말이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이 오리지널 시리즈의 아름다운 기체 디자인과 초월적인 미감이 당대의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지금에 이르러서는 빈티지 컬렉션 이상, 이하도 아닌 경험에 불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로그 원>은 이를 극복한다. 이 영화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기체 디자인과 초월적인 미감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오리지널 시리즈에서 썼던 빈티지 의상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를 가장 비싼 시각효과를 동원해 표현해낸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스타워즈> 역사상 가장 환상적인 저항군 편대 전투 시퀀스를 볼 수 있고, 기체 안과 밖에서 진행되는 하이퍼스페이스 전 과정을 최초로 확인할 수 있다. 실제 배우가 연기한 위로 CG를 입혀 재현한 타킨 총독과 레아 공주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다스 베이더가 얼마나 강한지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것, 다스 베이더가 얼마나 강한지에 관한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적인 장면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스 베이더가 강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 그가 얼마나 강한지에 관해서는 눈으로 확인해본 일이 별로 없다. 에피소드4에서 오비완 케노비와의 대결 시퀀스를 떠올려보자. 그건 대결이라기보다 광선검을 들고 장기를 두는 것 같은 장면이었다. 에피소드5와 6에서 루크와의 대결은 그보다 조금 더 나았다. 그러나 역시 둔하고 느렸다. 이 정도를 제외하면 다스 베이더의 힘은 대개 포스를 이용한 목 조르기를 통해서만 가늠할 수 있었다. 기본기: 목 조르기, 특기: 목 조르기, 필살기: 목 조르기, 가장 잘하는 것: 목 조르기, 가장 자주 하는 것: 목 조르기, 가장 짜증났을 때 하는 것: 목 조르고 나서 “너는 포스의 어두운 면이 가진 힘에 대해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반면 <로그 원>에 등장하는 다스 베이더의 학살 장면은 압도적이다. 누구도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없다. 다스 베이더는 <로그 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스타워즈> 시리즈의 압도적인 사기 캐릭터로서 입지를 확실히 한다.

오래전 오리지널 시리즈를 봤을 때 나는 다스 베이더에 매료되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군림하지만 끝내는 반성하고 책임지는 가부장이라는 점에서 다스 베이더는 내게 현실에 없는 판타지였다. 이후 추가된 프리퀄 시리즈를 보면서 다스 베이더, 그러니까 아나킨 스카이워커에 대한 나의 애정은 더욱 커졌다. 메시아로 예언되었고 실제 그렇게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다이 원로 꼰대들의 지혜를 가장한 견제와 방해(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이용한 황제의 계략으로 흑화의 길을 걸어간 다스 베이더의 생애는 슬프고 매혹적이었다.

<로그 원>은 살아 있는 다스 베이더를 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영화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에피소드3과 에피소드4 사이에 알려지지 않은 베이더의 이야기는 <로그 원>에서 그려진 이야기 외에도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나는 정말 이게 반드시 영화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그 원>을 필두로 다양한 외전들이 등장해주길 고대한다. 디즈니의 번식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시점에 캐리 피셔의 부고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는 한때 우리의 첫사랑이었다. 동시에 우리의 오누이였다. 우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여동생이었다. 자꾸 <로그 원>의 마지막 장면과 겹쳐져서 나는 이 부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적당한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의 영혼에 포스가 함께하기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