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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내털리 포트먼의 호연이 돋보이는 <재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이 암살당했다. 어린 두 아이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남편의 장례식을 준비했다. 영부인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고, 수년간 공들여 복원한 백악관에서 떠나야 했다. 당시 재클린 케네디는 34살이었다.

칠레 출신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첫 영어 연출작 <재키>는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의 암살 전후 몇주간 퍼스트레이디였던 재클린 케네디가 겪었을 내적인 갈등과 주변 인물들과의 이야기를 조명한 영화다. 노아 오픈헤임이 각본을 쓴 이 작품에서는 미국인의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공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방대한 리서치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나 <재키>는 전기영화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뉴스 방송분과 공개된 인터뷰 자료, 전기들에 기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했지만 공개되지 않은 사적 공간에서 오간 이야기와 그녀의 내면 세계를 상상해본 픽션이다. 라라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재키가 어떤 사람인지 온전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녀가 겪은 아픔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깨진 거울 속에서 자신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재키>를 통해 우리는 공인이 아닌 다양한 면모의 재클린을 만날 수 있다. 이 영화가 조명하는 그녀는 기품 있는 동시에 아이 같고, 영부인다운 카리스마를 지녔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가족만 돌보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비극과 혼돈의 시기를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재키가 내리는 매 순간의 선택이다. 케네디가 암살당한 뒤, 엄중한 분위기에서 모두가 간소한 장례식을 치르길 원했지만 재키만은 끝까지 이 장례식이 성대하게 치러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편을 죽인 사람들이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뿐만 아니라 어떤 가치를 훼손시켰는지 만천하에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존 F. 케네디라는 이름이 상징하던 미국의 희망.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은 절망 가운데서도 남편이 상징하던 무언가를 각인시키길 원했던 재키의 힘든 결정은 아마도 오늘날 케네디 가문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낸 근원일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대해 과거 수편의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제작됐지만 재클린 케네디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은 드물었다. 라라인 감독은 “케네디 대통령 옆에 앉아 있던 ‘재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라며 “<재키>는 인간의 습성에 대한 영화이지 미국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 현지에서 <재키>에 대한 평은 대체적으로 호평이다. 평론 포털 사이트 로튼토마토에 따르면 <재키>의 신선도는 88%. 특히 재클린 케네디로 변신한 내털리 포트먼의 연기가 가장 눈길을 끈다. 이어지는 지면에서는 그녀와의 만남을 전한다.

내털리 포트먼 인터뷰

-재클린 케네디는 미국인들이 잘 알고, 사랑한 역사적인 인물이다. 역할을 준비하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우선 시나리오 자체가 많은 리서치를 통해 완성된 것이라 큰 도움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재키를 연기하기 위해 목소리와 스피치 패턴을 코치와 한달가량 연습했다. 그녀가 백악관 투어를 안내하는 자료화면을 많이 보고 들었고, 찾을 수 있는 모든 인터뷰를 반복적으로 들었다. 자료를 공부하며 그녀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었다. 유튜브에 그녀의 초창기 인터뷰도 있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상원의원에 출마할 때였는데, 기자의 질문에 잘못 대답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웃음) 시간이 흐르면서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잘 다듬어지고 세련된 모습이 된 것이지. 찾을 수 있는 대부분의 자료도 찾아 읽었는데, 아마 그녀를 알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그녀에 대한 책을 낸 것 같더라. 경호원에서부터 보모까지. 덕분에 재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재키를 연기하면서 그녀의 어떤 면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됐나.

=미국에서의 재키는 이상적인 결혼 상대자로 묘사돼왔다. 상당히 성차별적인 생각이었는데, 여자를 처녀와 창녀로만 구분하는 것 말이다. 미국인들은 “당신은 마릴린(먼로)인가요? 재키인가요?”라는 식의 질문을 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 작품을 위해 리서치하면서, 재키가 진짜 재키가 되기 전에는 마릴린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웃음) 그녀의 고교 시절을 보면 데이트도 많이 했고, 학교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워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고, 재미있게 놀 줄 알았다더라.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파티에 가거나 파티를 여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백악관에서 처음으로 모든 참석자들이 즐길 수 있는 파티를 연 것도 재키라고 하더라. 그런 그녀를 단순히 ‘부인’으로만 묘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물론 그런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이 재키를 사랑하긴 했지만 그런 모습 외에도 복잡한 많은 것들이 그녀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어메이징’했다. 감독들과의 작업 중 가장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는 모두에게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파블로는 자신이 원하는 확실한 비전을 지녔지만 동시에 모든 이들의 아이디어에도 오픈돼 있었다. 새로운 연기를 시도하고 싶다 하면 늘 기회를 주었다. 촬영할 때 세트 전체에 조명을 켜고 핸드헬드 카메라를 이용해 즉흥 연기가 가능하게 배려했다. 시나리오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고, 덕분에 그 공간에서 실제로 생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야외 촬영에서도 자연광을 사용해서 같은 방식을 적용했다. 무척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한다. 재키를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뭐였나.

=오히려 모든 장면에 나왔기 때문에 캐릭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긴장을 풀거나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암살 장면이다. 이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이다. 더군다나 암살 장면이 사진과 필름으로 기록돼 있기 때문에 재키의 작은 몸짓이나 표정까지도 세밀하게 신경 써야 했다. 장면에 대한 감정적인 중압감에 기술적인 촬영방식까지 더해져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극중 케네디 대통령의 업적을 마치 전설처럼 남기고 싶어 하는 재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여성이 내러티브를 컨트롤한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누가 그 가운데서 ‘베스트 스토리’를 이야기했는지가 중요하다. 재키의 선택은 시대를 앞선 행동이었다. 현재 모두가 이야기하고 있는 (대선에 큰 영향을 끼친) ‘가짜 뉴스’ 역시 그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있어 가능했다.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파워풀한 도구다. 물론 아티스트에게는 좋은 것일 수 있어도, 정치계에서는 어려운 일이겠지. (웃음)

-최근 연기인생의 새로운 챕터에 들어선 것 같다.

=정말 운이 좋은 시기인 것은 사실이다. 파블로나 테렌스 맬릭(<송 투 송>), 레베카 즐로토브스키(<플라네타륨>) 등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으니까. 특히 내 작품(<사랑과 어둠의 이야기>)을 직접 연출해보니 작품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지 연출가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연기할 때 좀더 많은 것을 가지고 오려고 노력한다. 과거와는 다른 자세로 임하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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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그린나래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