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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연기를 향한 곧은 삶
이화정 2017-02-03

존 허트 (1940∼2017)

지난 1월31일(한국시각) 올랜도 유니버설 스튜디오 앞. <해리 포터> 시리즈의 팬들이 호그스메이드와 디아곤 앨리의 상장 밖에서 ‘해리 포터’ 의상을 챙겨 입은 뒤 일제히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갑작스런 퍼포먼스가 열린 데는 지난 1월27일(현지시각) 췌장암 투병 끝에 고인이 된 영국의 대배우 존 허트를 추모하는 뜻에서였다. 존 허트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지팡이 제작의 장인 올리밴더 역할로, 기나긴 운명의 여정을 앞둔 해리 포터에게 마법의 힘을 부여하는 조력자이자, 마법의 시리즈의 서막을 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췌장암에 걸렸지만 완치 사실을 알려온 게 2015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에서 부조리한 사회구조 속, 강직한 꼬리칸 지도자 길리엄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긴 데다 최근 <재키>(2016)에서 비탄에 빠진 재클린 케네디에게 용기를 주는 신부로 출연, 왕성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던 터라 그의 부고가 사뭇 갑작스럽지만 지난 60여년간 오롯이 연기에 전념하고 1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긴 배우를 향한 애정 어린 팬들의 애도 앞에서 그나마 작은 위로가 전해진다. 그의 부고에 <해리 포터> 시리즈를 함께한 J. K. 롤링, 엘리야 우드를 비롯해 샤론 스톤, 빈센트 도노프리오, 스티븐 프라이, 크리스 에반스 등 후배 배우들의 헌사가 이어지기도 했다. 엘리야 우드는 “당신의 연기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는 말로 슬픔을 달랬으며, 배우 앨프리드 몰리나는 “이 시대 최고의 배우”라는 찬사를 부여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1940년 1월22일 영국 더비셔의 체스터필드 태생인 존 허트는 1962년 <더 와일드 앤드 윌링>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 아래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사랑했다. 바로 집 건너편에 극장이 있었지만 그에게 영화 보기는 일체 금지였다. 결국 부모님의 뜻에 따라 미술공부를 하지만 연기를 향한 존 허트의 의지를 결국 꺾을 수는 없었다. 그가 <올리버 트위스트>(1948)에서 앨릭 기니스의 연기를 본 게 9살. 그는 앨릭 같은 연기자가 되길 꿈꾼다. 결국 그림을 팔아 근근이 번 돈으로 무대에서 활동하며 배우로서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토머스 모어의 전기영화 <사계절의 사나이>(1966)는 존 허트의 배우 생활을 예견하게 해준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출세를 위해 위증을 하는 청년 리처드 리치 역은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극의 흐름을 만들어준다. 존 허트를 스타의 길로 이끈 작품은 <BBC> 드라마 <나, 클라우디우스>(1966)였다. 로마 시대, 포악한 황제 칼리굴라 역 역시 <사계절의 사나이>에서의 비열한 모습과 연관된다. 무려 47회, 스크린에서 가장 많이 죽는 장면을 연기(출연작 중 거의 절반에서는 죽는다)한 ‘희한한’ 기록을 세운 존 허트. 그가 영화사에서 지울 수 없는 명장면에 기록된 것도 바로 죽는 장면에서였다. 배에서 괴생명체가 뚫고 나와 피칠갑을 하며 죽어가는 <에이리언>(1979)의 첫 희생자 케인 연기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원래 내정된 배우가 병으로 인해 하차하면서 생긴 기회로, 이후 그가 SF, 액션 블록버스터 등에 연달아 출연하는 데 기반을 마련해준 일생일대의 기회가 된 셈이다.

<설국열차>

<에이리언> 이후 <엘리펀트맨>(1980)에서는 기형아 존 메릭 역할을 맡으며 인생 캐릭터를 선보인다. 특수분장을 하는 데만 무려 12시간이 소요되는 고통 속에서 탄생한 캐릭터로, 존 허트에게는 자신을 가장 고생시킨 역할로 남아 있다. 특히 <미드나잇 익스프레스>(1978)와 더불어 이 영화로 총 2번 아카데미 후보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는데, 그는 수상 불발에 대해 “수상은 중요하지 않다. 배우는 기록을 세우는 스포츠맨이 아니다. 업계를 경쟁구도로 몰아가는 수상에는 관심이 없다”는 의지를 표하기도 했다. 이 밖에 헬보이를 영웅으로 키워낸 브룸 박사(<헬보이>(2004)), 무시무시한 파시스트 애담 서틀러(<브이 포 벤데타>(2005)) 등을 통해 선보인 강렬한 역할도 존 허트의 대표작으로 기억된다.

<엘리펀트맨>

돌이켜보건대 작품의 크기는 그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대작뿐만 아니라 독립영화 연출에 대해서도 그는 뚜렷한 당의를 가지고 임해왔다. “내 연기 커리어를 돌아보면 독립영화의 비중이 높다. 작업할 때의 흥미 때문에 참여한다는 의미도 크지만 이 작업이 영화산업의 근간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존 허트는 “나는 결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많고 많은 계획을 세우며 살지만 한번이라도 그 길로 간 적이 있던가?”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한평생을 매진해온 그의 연기도 계획이 아닌, 순수한 열망과 바람이 이끈 운명이었을 거다. 그가 남긴 주옥같은 영화 유산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시간들로, 그를 향한 추모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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