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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연애놀이> 정유미 작가
김현수 사진 오계옥 2017-03-20

영화와 책은 읽고 보는 이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매체지만 얼마든지 교류가 가능하다. 그런데 영화의 문법을 활자가 아니라 이미지 자체로 책에 옮겨놓으려는 시도는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는 아니다. 정유미 감독은 자신이 만든 단편애니메이션을 굳이 책으로 다시 엮는 작업을 세 번째 하고 있다. 이건 그림책도 아니고 아트북도 아니다. 그림 소설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영화의 편집 기술을 손으로 넘기며 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해외에서는 이 독특한 번역 작업을 일찌감치 주목했다. 그녀의 앞선 두권의 책 <먼지아이>(2012)와 <나의 작은 인형상자>(2015)가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2년 연속 수상하면서 주목받았고 이제 세 번째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이번에 새로 출간한 <연애놀이> 역시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동명 애니메이션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자신이 직접 독립 출판사를 차리면서까지 책을 만들어낸 그녀의 꾸준한 노력이 이룬 결과가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 별다른 의도 없이 “그냥 했다”고 하는 그 말 뒤에 숨은 의미가 궁금해서 만남을 청했다.

-<나의 작은 인형상자>(이하 <인형상자>) 출간 이후 2년 만의 신작이다.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2년 연속 라가치상을 수상한 뒤에 만났던 2015년 인터뷰 이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대상을 수상하면 이듬해 심사를 맡아야 하는 규정이 있었던 해외 영화제 몇곳을 다녀왔고, 일상과 작업을 병행하다 보니 작업이 느렸다. 2015년 출간을 계획했던 책이 이제 나왔다.

-넓은 해외 무대로 나가서 심사를 해보니 어떻던가.

=단편애니메이션 <연애놀이>로 대상을 수상한 자그레브애니메이션영화제와 홀랜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두곳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는데 상에 대해서 더 알게 됐다. 운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는 걸. (웃음) 좋은 작품이 꼭 받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는 걸 봤다. 나보다 훨씬 경력 많은 분들의 작업도 많이 봤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건 심사위원들이 난해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 같긴 하더라. 개성 강한 작품을 선호한다는 걸 느꼈다.

-3월에 출간한 <연애놀이>는 단편애니메이션을 책으로 옮기는 세 번째 작업이다. 마치 3부작이 완성된 듯하다.

=책의 구성 면에서는 <먼지아이> 때와 비슷하게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그대로 활용해서 작업했다. <인형상자>는 애니메이션 활용도를 줄이고 이미지 재작업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고 대신에 <인형상자>에서 활용했던 글의 분량을 늘렸다. 앞선 두권의 장점이 섞인 셈이다. 아무것도 몰라서 뛰어들 수 있었던 몇번의 도전 이후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책의 구성이 앞선 두권의 책보다 훨씬 깔끔해졌다. <먼지아이> 때와 비교하면 영화의 프레임과 책의 페이지를 가지고 여러 실험을 해봤던 그때와 달리, 영화적인 편집에 대해 정리가 잘된 느낌이다.

=애니메이션 <연애놀이>가 단순한 앵글로만 이뤄졌기 때문에 그에 맞추다 보니 자연스레 책 구성도 간단해졌다. 풀숏과 클로즈업의 반복을 그대로 책 언어로 옮길 때 뭘 덧붙일 필요가 없겠다 판단했다. <먼지아이>를 책으로 옮길 때도 애니메이션 이외에는 첨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인형상자> 때는 짧게나마 글이 들어가니 영상보다 훨씬 쉬운 책이 된다는 걸 느꼈다. 이야기가 쉽게 전달되길 바랐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뉘앙스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선택한 방식이었다. 사실 글쓰는 게 자신 없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도 내레이션 쓰는 게 사족 같고 어색해서 잘 안 썼다. 그런데 책에서는 방향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단순한 놀이인데도 연애감정을 느낄 수 있다. 보편적인 상황이 쉽게 전달된다.

=공감이 잘된다니 다행이다. (웃음) 사람들의 기억과 비슷해야 했다.

-애니메이션을 책으로 옮길 때 물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궁금하다.

=<먼지아이>와 <연애놀이>를 예로 들면, 애니메이션의 모든 이미지를 TIF 파일로 변환한 다음, 그 이미지 중에서 4컷을 연속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컷, 한 페이지에 1컷만 실어서 여운을 주고 싶은 컷을 추려낸다. 4컷은 구체적인 장면을 보여줄 때 고르고, 호흡을 길게 가져갈 때는 한장으로 보여주는 걸 고른다. 영화에서 책으로 옮길 때는 컷의 개수 자체가 언어가 된다. 편집 리듬을 가져가듯이 컷 변화 배치를 통해 의미가 전달된다는 게 재미있다.

-<먼지아이>의 혼자 사는 방, <인형상자>의 상자, <연애놀이>의 사각 틀까지, 결국 나를 가둬두는 좁은 공간을 벗어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연애놀이>의 사각 틀은 당시에 생각했던 연애의 분위기를 은유하는 방식이었다. 연애라는 게 열려 있는 관계가 아니라 개인적인 둘의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방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렸다.

-수익은 어디서 어떻게 발생하나.

=책의 제작비는 관련 기관의 지원비를 받아서 만든다. 다행히 만든 책들이 지금도 판매되고 있고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영화제 수상 상금도 조금 있었다. <아르테TV> 같은 해외 아트 계열 채널에 애니메이션을 많이 판매해서 거기서 발생한 수익도 있었다.

-혹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독립적인 책을 출간할 계획은 없나.

=할 수도 있다. 책부터 내고 나중에 영화로 옮기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작업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책은 애니메이션처럼 일단 그리면서 이야기를 바꿔가는 과정으로는 불가능하다. 모든 공정을 짜놓고 시작해야 한다.

-<먼지아이> <인형상자> <연애놀이>까지 순서대로 출간되니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연대기 순으로 엮은 것 같기도 하다. 다음 이야기는 뭐가 될까.

=<파라노이드 키드> 재출간 계획을 올해 꼭 마무리할 예정이다. 그림을 그리고 책을 엮는 일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작업이더라. 그 에너지가 고민을 끄집어낼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무엇이 됐든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취향, <괴물들이 사는 나라>

(시공주니어 펴냄, 2002)

인터뷰를 위해 그녀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책장에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대부분이 꽂혀 있는 걸 보며 취향을 캐묻기 시작했다. “한때는 정말 그의 소설에 빠져 살았다. 그림책 중에서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특히 좋아하고 회화 작가 중에서는 프로이트의 손자로도 유명한 루시언 프로이트와 키키 스미스를 존경한다.”

<먼지아이>, <스토커> (왼쪽부터)

박찬욱, <스토커>(2013)와 <먼지아이>(2009)

박찬욱 감독과 정유미 작가의 인연이 재미있다. 2009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먼지아이>를 좋게 본 당시 심사위원 박찬욱 감독은 <박쥐> DVD에 추천사와 함께 영화를 실어주었다. 그는 추천사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중요한 작품”이며 “먼지아이라는 캐릭터는 여러 가지 파생상품으로서도 충분히 상업적인 가치를 지닌, 사랑스러운 보석과도 같은 단편이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스토커>의 인 디아(미아 바시코프스카)가 지하실에서 전등을 비추는 장면은 <먼지아이>에서 주인공이 전등에 머리를 부딪히는 장면의 연출과 똑같다. 실은 이 조명 연출의 원조는 <싸이코>(1960)의 마지막 장면이다.

캐릭터의 기원, 일 리퀴드

(ill liquid, 나무 패널 위에 아크릴로 작업, 2004)

<먼지아이>와 <연애놀이>의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을 보며 영향받은 작가를 물었다. “후루야 미노루와 이토 준지다. (웃음) 사실적인 라인으로 구성된 만화, 즉 동양화의 라인을 좋아하는데 덩어리로 보는 게 아니라 선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대학 때부터 좋아했다.” 그녀가 2004년 국민대 회화과 졸업작품으로 발표했던 작품을 보면 그녀가 그리고자 하는 선의 기원을 알 수 있다.

양장본, 정유미 작가의 단행본들

정유미 작가의 책은 양장본에 해당 단편애니메이션영화를 담은 DVD까지 부록으로 제공한다. 책의 제작비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콘텐츠진흥원과 출판진흥원의 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비 지원을 받지 못했으면 만들 수 없었던 작업이다. 일반판과 한정 양장본 두개의 판본까지 만드려니 더 힘들다. 하지만 책의 물성 자체를 중요시 여기며 한정판을 소장하고자 하는 최근의 흐름과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이번 책의 DVD에는 ‘루프’ 기능을 추가해 전시 상영이나 행사장에서 영화를 무한 반복해서 재생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참고문헌 , <퍼스트 에이드>

“<연애놀이>를 작업할 때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책이다. 여행 갔을 때 사온 안전구급법에 관한 책인데 얼굴에 붕대를 감은 사진이 독특해서 작품에 써먹었다. 책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자주 쓰는 친숙한 도구들은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 된다. 나의 사연이 깃들어 있는 단순한 기능이 돋보이는 소품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내 인생의 영화

<보이후드>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2014)

“내 작업 스타일은 계획과 구성대로 진행하기보다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변하는 생각을 그대로 담는 걸 선호한다. <보이후드> 역시 진짜 살면서 느끼는 것들이 직접적으로 담겨 있는, 게다가 만드는 과정에서도 삶을 계속 발견하게 되는 실험적인 영화였다. 그렇게 작업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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