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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 팔라디오의 건축 전시장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에 피난처로 등장한 비첸차 인근의 빌라 고디. 가운데는 알리다 발리.

조셉 로지는 매카시즘을 피해 유럽으로 망명한 감독이다. 1930년대에 옛 소련을 방문하여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같은 혁명주의자 영화인들과 교류하고, 당시 그곳에 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친교를 맺은 사실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후로도 로지는 브레히트와 친하게 지냈다. 아직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기 전인 1947년, LA에서 브레히트의 희곡 <갈릴레오>를 무대에 올려 그와 공동연출을 맡기도 했다. 그 연극을 연출하며, 로지는 바로크 시대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로부터 자신의 분신을 봤다. 국가와 화합하지 못하고 긴장 관계에 놓인 인물 혹은 사회적 통념에 반항하는 억압받는 개인으로서 갈릴레이를 본 것이다. 갈릴레이처럼 ‘정치적 재판정’의 피고석에 앉을 위기에 놓였을 때, 로지는 자발적 망명을 선택했다.

조셉 로지, 비첸차에서 <돈 조반니>를 찍다

청년 로지의 분신이 갈릴레이였다면, 노년 로지의 분신은 모차르트 오페라의 주인공 ‘돈 조반니’일 것이다. 그는 사회에는 금기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 혹은 무시하는 듯 행동하는 바람둥이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오직 여인의 사랑뿐인 것처럼 보인다. 돈 조반니는 오페라가 시작하자마자 귀족 여성을 겁탈하려다 들켜, 그녀의 부친과 결투를 벌이고, 결국 (유사)부친 살해의 범죄자가 됐지만 전혀 뉘우치지 않고 다음 ‘목표’를 찾아가는 인물로 제시된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돈 조반니를 약간 복잡하게 묘사한다. 사드 후작의 캐릭터를 섞어놓았다. 곧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그 모든 통념을 부정하고, 잔인할 정도로 비웃는 자발적 아웃사이더의 성격을 입혀놓아서다. 통념의 상징은 부친이고, 돈 조반니는 마지막에 회개하라는 (유사)부친의 권고를 7번 부정하며, 스스로 불길에 뛰어들어 죽는다. 말하자면 제도에 순응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돈 조반니의 반항에서 로지는 자신의 분신을, 또 모차르트의 분신을 본 것 같다. 비록 그 캐릭터가 혼란스러워도 말이다.

말년에 로지는 희곡 <갈릴레오>를 영화로도 발표했고(1975), 뒤이어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영화로 각색했다(1979). 망명자 로지에게 갈릴레이와 돈 조반니는 어쩌면 말년의 길동무 같은 존재였을 테다. 영화 <돈 조반니>는 ‘오페라 필름’이다. 오페라 대본을 이용하여, 극장이 아니라 실제 장소에서 찍은 것이다. 로지가 선택한 공간이 이탈리아 북동부의 비첸차(Vicenza)다. 베네치아에서 서쪽으로 60km 떨어진 곳이다. 인구 20만명 정도 되는 작은 도시인데, 건축학도들에겐 일종의 성지(聖地)다. 르네상스 건축의 거장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대표작들이 몰려 있어서다.

고전 건축을 이용한 열주(列柱)와 로지아(Loggia, 실외로 나와있는 실내 또는 그 역)가 특징인 ‘팔라디오 스타일’은 16세기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비첸차 시내에만 팔라디오가 설계한 23개의 건물이 있고, 비첸차 인근의 전원에는 25개의 빌라가 있다. 이들은 전부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말하자면 도시 전체가 팔라디오의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셈이다. ‘가우디의 바르셀로나’가 비교되곤 하지만 한명의 건축가가 도시 전체를 장악하다시피한 도시는 아마 ‘팔라디오의 비첸차’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팔라디오를 ‘비첸차의 북극성’이라고 불렀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라는 뜻일 테다.

릴리아나 카바니의 <리플리스 게임>. 주인공 리플리의 집은 비첸차 인근의 빌라 에모이다. 가운데는 존 말코비치.

이탈리아식 ‘노블리스 오블리제’

<돈 조반니>는 팔라디오의 건물 가운데 아마도 가장 유명한 빌라인 ‘라 로톤다’(La Rotonda)를 돈 조반니의 집으로 이용한다. 사방이 모두 똑같은 계단과 웅장한 열주, 그리고 로지아로 지어져 있어서 네 방향 모두에서 건물의 외관은 똑같아 보인다. 건물 한가운데는 ‘둥근’(rotonda) 홀이 있어서 ‘라 로톤다’라는 이름을 얻었다. 르네상스 특유의 반듯한 권위가 묻어나는 고전주의 양식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보통 사람들에게 탄성을 자아내는 이 반듯한 건물을 조셉 로지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곧 로지에게 ‘라 로톤다’는 질서와 제도의 상징으로 쓰였다. 특히 거대한 건물의 둥근 홀에서 만찬을 벌이며 (유사)부친과 논쟁을 이어가는 마지막 장면의 경우, 건물은 그 자체로 억압하는 부권의 상징이다. 견제와 균형을 이룬 고전주의 건물은 ‘개인’ 돈 조반니의 존재를 짓누르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반항아 돈 조반니는 최후를 맞는다.

말하자면 로지는 비첸차를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캐릭터처럼 이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먼저 르네상스 건물들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화려하고 과시적이다. 이와 덧붙여 고전주의 양식의 심리적 중압감도 놓치지 않았다. 이런 억압의 심리적 기제는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온 전통적인 건물들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다.

‘라 로톤다’가 남성적이라면 이와 대조되는 여성적인 건물이 ‘빌라 칼도뇨’(Villa Caldogno)이다. 돈 조반니의 여성인 돈나 안나의 집으로 나온다. 역시 팔라디오의 작품이다. 모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어서인지 빌라 칼도뇨는 편안한 느낌이 나도록 표현돼 있다. 이 건물은 밝은 갈색의 외관과 내부에 그려진 벽화로 유명하다. 르네상스 화가 조반니 안토니오 파졸로의 벽화는 과시적인 신화나 종교적 내용을 그린 게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어서 건물에 인간적인 따뜻함을 더해준다.

비첸차를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이용한 또 다른 대표작으로 릴리아나 카바니의 <리플리스 게임>(2002)이 있다. 원작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톰 리플리(존 말코비치)가 돈과 화려한 생활을 동경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생활에의 매혹은 하이스미스 소설의 범죄적, 대중적 유혹일 것이다. 두 도시 베를린과 비첸차가 대조돼 있다. 리플리가 베를린에서 범죄를 저질러 한몫 잡은 뒤, 정착한 곳이 바로 비첸차다. 이곳에서 톰이 거주하는 고풍스런 저택은 ‘빌라 에모’(Villa Emo)인데, 역시 팔라디오의 작품이다. 열주와 로지아의 균형 잡힌 자태, 그리고 전면으로 쭉 뻗어 있는 정원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말하자면 범죄자 톰은 빌라 에모에 살며 어두운 과거를 지우고, 자신을 교양이 넘치는 귀족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이처럼 팔라디오의 르네상스 건물은 평범한 사람의 신분을 바꿔버릴 정도로 고전주의의 품위가 넘치는 공간이다. 팔라디오가 설계한 세계 최고(最古)의 실내 극장 가운데 하나인 ‘올림픽 극장’(Teatro Olimpico)에서 리플리의 아내가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마지막 장면은 비첸차의 고전적 아름다움에 정점을 찍는 순간일 것이다.

거장 팔라디오의 초년병 시절을 볼 수 있는 작품도 있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1954)인데, 전쟁 때문에 알리다 발리 가족이 피난간 곳이 비첸차 인근에 있는 ‘빌라 고디’(Villa Godi)이다. 장식적인 계단, 반원형 전면, 로지아, 넓은 정원 등 팔라디오 특유의 디자인이 돋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후반기 작품에 비해 단순한 편이다. 하지만 그런 단순함이 전쟁의 불안을 통제하는 평화로운 마음을 느끼게 할 것이다. ‘빌라 고디’ 장면은 비스콘티가 훗날 건축 거장으로 성장하는 ‘청년 팔라디오’에게 표현하는 예술적 헌정일 테다.

팔라디오가 이렇게 마음껏 실력을 발휘한 데는 안목을 가진 비첸차 시민들의 지지가 있었고, 또 상상력을 실현케 하는 귀족들의 실질적인 후원이 있어서였다. 팔라디오의 기록에 따르면 그 귀족들이 건축을 의뢰하며 가장 자주 한 말은 “(자신은) 지역을 아름답게 만들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책임’, 이것은 이탈리아식 ‘노블리스 오블리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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