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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힘쎈여자 도봉순> 폭력을 묘사할 때 경계해야 할 것들

폭력영화를 즐겨보고 잔혹한 장면도 개의치 않는 편이지만, 상황을 조망하고 판단하는 윤리적 주체로 남아 있을 수 있는 동안만 그렇다. 수위가 훨씬 낮고 일정한 양식이 반복되는 TV드라마의 폭력 정도야 아무렇지 않았는데, 최근엔 도무지 못 견디겠다 싶은 장면과 자주 맞닥뜨린다. JTBC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모계로 이어지는 괴력을 지닌 주인공 봉순(박보영)이 9살 무렵 유괴당했던 사건의 회상 역시 그랬다.

자동차 뒷문을 발로 차서 탈출한 어린 봉순이 동생과 함께 어둑한 도로를 달리고, 유괴범은 아이들을 차로 받아버리려고 질주한다. 나는 봉순이 달리는 버스를 세우고 사람을 퉁퉁 날려버릴 정도의 힘을 지닌 것을 이미 알고 있고, 회상 바깥에서 현재 시점의 봉순과 동생은 안전하다. 그렇게 ‘안전’하다는 전제하에, 봉순이 맨손으로 달려오는 차를 막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도망치는 아이들과 질주하는 자동차, 유괴범의 악랄한 표정이 교차편집으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아이들이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안도도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이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연출이 마련한 고약한 폭력에 연루되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가 약자가 처한 폭력을 재연할 때, 해당 상황들은 현실의 고발이나 주인공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목적하에 저항이 어렵거나 동등한 힘의 위치에 놓이지 않은 대상을 착취하지 않기 위해서 폭력의 묘사에는 제한이 따른다. 이를테면 위의 장면은 ‘결과적으로 구해졌으니 괜찮다’는 변명으로 제한을 깨는 부도덕한 연출이다. 누군가를 구하는 것을 명분으로 삼은 서사가 넘쳐날수록,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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