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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얼론
2002-04-09

시사실/ 얼론

■ Story

13년 전인 11살 때 부모를 잃고 홀로 된 알렉스는 과거로부터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잠을 잘 수 있으며, 정기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기도 하다. 어느 날 앨리스라는 여자가 계단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베테랑 형사 한나(존 슈랍넬)와 엘리트 신참 젠(이사벨 브룩)이 그 사건을 맡는다. 다음 희생자인 사라(캐롤라인 카버)는 입 안에 음식이 가득 든 채 질식사한 시체로 발견된다. 알렉스는 다시 병원에서 친절하게 대해준 간호사 샬롯을 사랑하게 되지만, 샬롯은 거부한다. 분노한 알렉스의 공격을 받은 샬롯은 도망치다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만다. 경찰은 샬롯을 미끼로 범인을 잡으려 하고, 소식을 들은 알렉스는 다시 그녀를 찾아간다.

■ Review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남들과 달랐다. 세계를 남들처럼 보지 않았다…. 내가 사랑한 것은 모두 나 홀로 사랑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얼론>

“어려서부터 ‘홀로’ 있기를 좋아했다”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얼론>은 에드거 앨런 포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심리스릴러다. 굵은 듯 가녀린,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로 ‘혼자이기’를 좋아했다고 말하는 내밀한 고백은 그러나 곧 거짓 진술, 아니 복선임이 드러난다. 카메라는 살인자인 알렉스의 시점으로 그의 일상과 심리상태를 노출한다. 매일매일의 수면시간을 기록하고 볼펜을 반듯하게 올려놓는 손, 일회용 칫솔의 포장지를 뜯는 손, 사용한 세면대를 직각으로 꼼꼼히 닦아내는 손 등은 몽환적인 화면과 뒤섞이면서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는 알렉스의 내면을 현란하게 알린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얼론>은 초반에 알렉스의 불안정한 내면을 세밀하게 스케치하는 데는 정성을 쏟지만 정작 스릴러로서 사건의 전개와 디테일에는 무관심하다. 초반에 신선했던 알렉스의 시점에 익숙해지면 더이상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다. 고참과 신참 형사 사이의 미묘한 긴장관계도 사건도 겉돈다. 사건이 진행되는 도중에 아무런 복선도 없어 ‘히든 카드’인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도 놀랍다기보다 난데없다. 긴박한 대목에서도 영화는 맥이 빠진다. 샬롯이 입원한 병원에 알렉스를 잡기 위한 덫을 놓은 경찰은 총은커녕 경찰봉 하나 없이 잠복하고 있다가 무방비상태로 당하고 만다.

외로움과 집착에 관한 세련된 스릴러가 될 수도 있었을 <얼론>은 패기에 찬 아이디어를 스크린에 구현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1인칭 시점, 뜻밖의 범인이라는 아이디어에만 의존해서 심리스릴러의 긴장을 끌어가기엔 90분도 너무 긴 시간이었을까. 위정훈 osc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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