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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고사동 통신
김혜리 2017-05-17

<나의 자전거에 대하여>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박동현 감독의 <나의 자전거에 대하여>는 세 단락으로 나뉜다. 광주항쟁의 기억을 되짚은 두 번째 장은 감독의 전작 <기이한 춤: 기무>(2010)처럼 풍경과 명상을 결합한다. ‘폐가’가 된 광주국군통합병원을 소요하며 카메라(촬영 박홍열)가 이곳저곳에 시선을 던지는 동안, 사운드트랙은 한 할머니가 회고하는 1980년 5월을 들려준다. 그녀는 혈연 없는 청년들을 도우러 병원으로 찾아가 손상된 시신을 수습하고 씻었다. “보초 서던 군인이 막았어. 병원에 아들이 있어 보러가야 한다고 매달렸더니 돌아서 집들을 타넘어 가라고 했어. 첫 번째 집 담을 넘다 주인에게 한소리 들었어. 아들이 저기 있다고 했더니 받침대를 놓아줬어. 두 번째 집에서는 대문을 열어주었고, 세 번째 집은….” 시냇물처럼 담담히 굽이치는 그녀의 진술을 듣는 관객에게 보이는 광경은 더이상 병원의 깨진 유리창과 갈라진 콘크리트가 아니다.

04/29

16 : 00 용산역을 떠난 지 1시간40분 만에 전주에 도착했다. 여행이 너무 짧아 머쓱했고 내리자마자 여름이라 어색했다. 매미가 울기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 택시 타는 줄이 줄어드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로마법’을 모르는 타지 사람으로서 “짐은 앞에 실을까요? 트렁크에 실을까요?”라고 택시 기사님께 공손히 또박또박 여쭸더니 “아, 마음대로 허요!” 하는 호방한 답이 돌아왔다. 서울에서 똑같은 대답을 들었다면 퉁명스럽기도 해라 주눅 들었겠지만 여기서는 상관 말고 손님 좋을 대로 하라는 친절한 일축임을 대뜸 알아차렸다. 예전 여행에서 익혔던 ‘전라어’에 대한 감이 슬슬 살아났다. 면박 주는 듯하면서도 늘어지는 말꼬리에 익살이 실리는 시야가 넉넉한 말투. 축제의 주말답게 교차로를 지나는 데에 한참 걸렸다. 에어컨 옆에 꽂혀 있는 지휘봉 모양 막대에 눈길이 갔다. 모양이 신령스러운 것이 덕유산 국립공원 기념품인가 짐작하며 여쭤봤더니 “거 참, 이거 참” 한참을 쑥스럽게 입맛 다시는 주저 끝에 해리 포터 마법 지팡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애들이 여행 갔다가 사온 선물”이라는데 “이것이 원래 벼락 맞은 딱총나무여”라고 부연하시는 걸 보니 분명 책도 읽으신 눈치다. 아쉽게도 길이 뚫려 마법 지팡이에 대한 수다는 포기해야만 했다.

17 : 30 짐을 내려두고, 길어진 해를 다행스러워하며 고사동 영화의 거리로 나섰다. 헤매려고 일부러 계획을 세워도 헤매기 어려울 단순한 경로를 이탈하는 바람에, <나의 자전거에 대하여>의 상영관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내가 어릴 때는 어른들이 전쟁 이야기를 자주 했다. 한국전쟁, 베트남전, 2차대전 등등 텔레비전과 극장에서는 전쟁영화를 많이 틀었고 군인이 늘 영웅이었다”라는 서두의 내레이션은, 감독과 내가 동세대임을 알려주었다. 과연 그랬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전쟁의 이미지와 서사는 성장기 내내 일상의 일부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합창하며 고무줄을 넘었고 수업 시간에 지명되면 그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철사 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로”라는 가사의 트로트를 구성지게 부르기도 했다. 무찌르는 적군의 정체에 대해, 철사로 결박당한 손목의 통증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이. 하지만 이상하게도 부모나 어른들로부터 간혹 듣는 전쟁 체험담은 세부를 결여한 채 두루뭉술했다. 지독하게 배고프고 힘겨웠고, 궁극적으로 그 모든 수난은 사악한 적 때문이었다, 정도였다. 어른들도 당시 너무 어렸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기억하기 버거운 경험이라 서둘러 지워졌을지도 모른다.

<나의 자전거에 대하여>는 한국 사회를 옥죄어온 폭력의 역사를 3부 구성으로 돌아보는 에세이필름이다. 박동현 감독은 한국전쟁, 광주항쟁에서 자행된 민간학살을 미국 의회 아카이브 영상과 생존자 증언으로 회고하고, 3부에서는 유구한 폭력의 지류를 본인이 성장하며 체험한 억압에서 찾으려고 한다. 탈색되고 흠집난 미군의 전쟁 기록 필름 위로, 구덩이에 파묻힌 시체 더미에서 가족을 끝내 분별하지 못했던 이의 증언이 흐른다. 퇴락한 광주 국군통합병원의 내부를 카메라와 함께 서성이는 동안 시민군에도 경찰에도 밥을 지어 먹였던 시민이 회상한다. 왕빙 감독의 <중국 여인의 연대기>(2007)가 그랬듯, 효율적인 ‘스토리’로 재단되지 않은 구구절절한 진술에서는 희로애락마저 씻겨나가 있다. 마치 무수히 두들겨 빤 광목천의 두루마리 같다. 1, 2부의 화자들이 모두 여성임은 우연이 아니다.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박동현 감독은 성별을 한정할 의도는 없었으나 증언을 찾아듣는 동안 남성들의 회상은 자신이 당시 무엇을 했고 어떤 피해를 당했는가에 집중되는 반면 여성들의 그것에는 타인과 주변에 일어난 일에 대한 관찰이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분명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전거에 대하여>는 3부에서 실패한다. 한국 현대사와 감독의 개인사를 연결하려는 노력이 요령부득이기 때문이다. 3부의 소재인 어른에게 속아 자전거를 도둑맞거나 교사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받은 감독의 기억은 역사적 폭력이라기보다 세상의 부조리를 직면하는 보편적 성장 서사에 가깝다. 그러다보니 구조를 정당화하기 위해 의미를 부여하는 설명자막(intertitle)이 구구해진다.

19 : 00 동네 공터에서 절룩거리며 혼자 사는 백구의 사연을 탐문하는 행위로 시작하는 김보람 감독의 <개의 역사>는 <나의 자전거에 대하여>보다 훨씬 미숙한 장편이다. 하지만 영화를 장편으로 성립시키는 개념 혹은 질문이 허약하다는 단점은 근본적으로 비슷하다. 모든 주민이 알고 있지만 누구의 책임도 아닌 개 한 마리는, 지역 스케치의 절묘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가능성은 가능성으로 끝난다. 이웃 아저씨에게 “아가씨”라고 불리는 젊은 여성감독의 카메라는 아무한테도 권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약점처럼 보이지만 거꾸로 착안하면 강점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감독은 온화하지만 끈질기게 이웃과 대화를 시도하고 그렇게 얻은 결과물 중에는 반짝이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흩어져버린다. 디지털 시대에는 문학적 내레이션을 쓰고 영상을 편집할 수 있다면 다큐멘터리나 에세이 필름의 기본 외형을 갖추기 쉬워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런 까닭에 관객은 이 영화가 존재하는 불가피한 이유를 찾게 된다. 그것은 통찰이거나 질문이다. 확고한 사전 기획 의도나 주제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시나리오가 없으므로 다큐멘터리는 도중에 생성되는 영화다. 통찰과 질문은 미리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취재하고 결과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발견되고 진화해야 한다. 관객이 계속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하는 힘은 정답이 아니라 목적지가 있는 여정에 동행하고 있다는 감각이다.

04/30

13 : 00 검증된 이력, 기획을 지닌 3인의 감독에게 영화제가 제작비를 지원해 완성된 장편을 매년 최초 공개하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해외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의 중요 관심사다. 올해는 세편 모두 한국 감독 작품으로, 극영화 <시인의 사랑>과 <초행>,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가 월드 프리미어를 가졌다. <시인의 사랑>은, 투박하게 소개하자면 <베니스의 죽음>을 만화체로 제주도에 옮겨놓은 것 같은 줄거리의 희비극이다. 토박이로 설정된 인물들이 사투리를 쓰지 않는 <시인의 사랑>은, 오멸 감독의 제주영화와는 궤를 달리하지만, 그렇다고 제주에 관광 삼아 잠깐 머물다가는 영화도 아니다. <시인의 사랑>에서 제주는 여행지가 아니라 주소지다. 마흔줄에 접어든 무던한 성격의 시인 현택기(양익준)는 생활력 강한 아내(전혜진)와 평탄히 살아가지만 이중의 스트레스 아래에 있다. 하나는 자기가 쓰는 시에 절실함이 없다는 예술적 고민이고, 나머지는 시인이라는 직업을 한량 내지 사내답지 못함의 다른 말로 여기는 주변의 인식이다. 후자에는 만성이 됐지만 그는 종종 문학과 생활의 괴리에 한숨 짓는다. 오줌 마렵다고 뛰쳐나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너의 마음에서 헤엄치던 날이 있었지”라고 뇌까리는 식이다. 시인의 회의는, 임신을 원하는 아내에 떠밀려 시작한 인공수정 시도를 겪으며 깊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에 오픈한 도넛 가게에서 일하는 아름다운 소년(정가람)에 눈길이 머문 순간 택기는 시와 삶을 일치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달콤한 흥분에 휩싸여 호머 심슨처럼 도넛을 폭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시인의 사랑>의 이슈는 중년에 각성한 성 정체성이 아니라 범속한 현실과 초월적인 이상의 대립에 초점을 맞춘다. “당신 게이였어?”라는 질문에 택기는 “바이겠지”라고 주섬주섬 우물쭈물 정정한다. 극중에서 ‘커밍아웃’이라는 단어는 통상적 의미 외에 정신적으로 문학 소년에 머물러 있던 택기가 정념으로부터 시를 짓게 됐을 때도 등장한다. 이 멜로드라마에서 아내는 진정한 사랑을 훼방놓는 세속의 굴레로 단순화되기 십상인 캐릭터지만 전혜진의 해석은 이 인물을 언어가 아닌 행동으로 사랑하는 법에 통달한 성숙한 여인으로 그린다. 반면 소년의 동선과 감정선은 택기의 방황을 위해 편의적으로 설계된 인상이다. 톤의 측면에서 비극과 코미디의 불균질한 융합은 <시인의 사랑>의 단점이다. 동시에 결과를 떠나 이 영화에 내가 호감을 품는 대목도 어느 한쪽의 정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감독의 고집에 기인한다. 나는 이 영화가 시를 물정 모르는 이의 도락, 우스갯거리로 삼지 않는 점이 좋았다. 감독은 영화 내내 깔리는 현택기의 쑥스러운 문어체 내레이션과 그 언어들로 구성된 그가 보는 세상을 진심으로 존중한다.

21 : 30 영화제에서 동물 학대 장면을 포함한 영화를 고르고야 마는 나의 징한 징크스는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원더즈>(The Wonders, 2014)로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알리스 로르바셔의 초기작 <천상의 육체>을 보러 갔다가 자루에 든 아기 고양이들이 겪는 난데없는 재앙에 진저리를 쳐야 했다. 마음을 달래려는 사리사욕으로 고른 반창고는 멕시코영화 <다른 모든 것들>(Todo Lo Demas). 생활에 환멸을 느낀 공무원이 수영장에서 돌파구를 찾는다는 시놉시스에 혹했다. 수영장은 무취미한 내게도 몇 안 되는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평소와 다른 중력과 물질에 둘러싸여 매번의 날숨과 들숨을 생생히 의식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는 큰 위안과 해방감이 있다. <다른 모든 것들>의 주인공 도나 플로르(아드리아나 바라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을 안 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듯한” 공무원의 부정적 스테레오타입이다. 한국으로 치면 주민증 갱신 업무를 담당하는 35년차 공무원 도나는 민원인의 서류를 검토해 접수 불가한 이유를 짚어내는 업무로 하루를 보낸다. (졸음 많은 관객에겐 불운하게도) 나탈리아 알마다 감독은 관객이 인물의 단조롭고 반복적인 일상을 직접 체감하도록 도돌이표 시나리오를 썼다. 도나는 매일 만원 전철을 타고 청소부만 출근한 이른 시각 사무실에 도착해 종일 시민들에게 욕을 먹은 다음 귀가해서 고양이를 쓰다듬고 그날 처리한 일에 관해 장부를 쓴다. 요컨대 도나에게는 생활이 없다. 어디 사는 누구의 서류를 반려했다는 기록만이 그녀가 존재했다는 증명이다. 영화가 3/4 지점에 이르렀을 즈음 <토니 에드만>의 아버지 빈프리드가 그랬듯이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상대인 반려동물을 잃은 도나는 비로소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수영장에 등록한다(그렇다. 다시 고양이가 변을 당한 것이다). 심지어 나의 긴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수영장에 발가락도 넣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인물 안에 축적된 무기력의 중량을 표현하기로 결정하고 만다(난 대체 왜 이 영화를 봤단 말인가!).

다큐멘터리가 고향인 나탈리아 알마다 감독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게 영감을 받아 <다른 모든 것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마 관료 전범의 예를 통해 주체적 사고와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그러나 매우 근면성실한 개인을 양산하는 관료제의 폭력성을 지적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같은 책이 영감이었나 보다. 물론 이 영화의 도나는 누구도 죽이지 않는다.

관료주의와 수세적 삶의 태도로 최대의 피해를 보는 인물은 주민증 발급을 거절당하는 민원인들이 아니라 본인이다. 결국 이 영화는 내게도 불편한 물음을 던졌다. 나는 꼬박꼬박 영화의 출납부를 쓰는 데에 게으르게 자족하고 있는 것 아닐까? 글을 통해 영화에 요구하는 능동성과 용기를, 나는 얼마나 유지하고 있나?

<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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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만나기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중 한편인 <철원기행>의 김대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초행>은 6년간 사귄 수현(조현철)과 지영(김새벽)이 둘의 동거 사실을 모르는 양가 부모를 차례로 방문하는 이야기다. 조건은 달라도 한국의 모든 커플이 경험할 법한 흔한 통과의례를 따라가는 <초행>의 눈은 흔치 않게 예민하다. 이들의 여정은 세상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였던 연인이, 그를 닮았지만 ‘평범한’ 일족의 구성원이었음을 확인하는 절차다. 또한 파트너의 가족을 만났을 때 본인의 부모 앞에서는 저항했던 관습에 타협하는 희생의 체험이다. 함께 산책을 나가도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도 이들의 공간에는 수시로 블록이 발생한다. 들리지만 모른 척하는 투명한 벽이 이리저리 세워지고 여자의 아버지와 남자, 남자의 어머니와 여자 사이에는 미묘한 일시적 연대가 맺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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