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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안개의 도시 페라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안개 속의 풍경’

비토리오 데시카의 <핀치 콘티니의 정원>. 페라라 유대인 청년들의 사랑을 그렸다.

페라라라는 도시를 알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덕분이다. 그의 고향이 페라라다. 안토니오니 영화 특유의 안개가 자욱한 풍경은 바로 이곳 페라라에서 싹튼 것이다. 안토니오니는 어릴 때부터 페라라의 안개 속에서 자랐다. 온몸을 싸고 감도는 솜털 같은 안개부터 폐부를 찌르는 겨울의 차가운 안개까지, 포 강(江) 유역의 대표도시 페라라는 늘 안개와 함께 기억됐다. 사람을 이유 없는 멜랑콜리 속으로 몰아넣는 안개는 안토니오니 영화의 돋보이는 매력이다. 그리스의 명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1988)도 안토니오니에게 빚졌을 것이다. 나에겐 그 안개의 매력에 이끌려 들어간 게 안토니오니의 영화였고, 페라라의 풍경이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외침>. 페라라 인근의 포 강 유역이 중요한 배경이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고향

페라라는 베네치아에서 남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내가 살던 볼로냐에선 북동쪽으로 30분 거리다). 르네상스 시절에는 에스테(Este) 집안 덕분에 최고의 도시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에스테 집안은 페라라에서 피렌체의 메디치 집안과 맞먹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에스테 집안의 후원 아래 르네상스 문학의 거장 루도비코 아리오스토는 걸작 서사시 <광란의 오를란도>를 남긴다. 페라라는 역사와 예술이 살아 있는 오래된 도시다. 안토니오니는 페라라의 이런 풍부한 예술적 배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는 9살 때 바이올린 콘서트를 할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평생 화가 활동을 병행했다. 그의 음악과 미술에도 안개 냄새가 난다. 안개처럼 희미하고 고독하다.

안토니오니가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로 이름을 알린 것은 <외침>(1957) 덕분이다. 이 작품으로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비평가상을 받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제목 <외침>(Il Grido)은 사실 에드바르트 뭉크의 그림 <절규>를 의미하는 것인데, 문맥을 찾지 못한 채 번역되어 지금도 그 제목을 그대로 쓰고 있다. <외침>은 뭉크의 그림 속 인물처럼 한 여인이 마지막에 ‘절규’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가 사랑했던 남자가 공장의 탑에서 투신자살하는 걸 보기 때문이다.

<외침>은 안토니오니 특유의 비관주의 테마가 압도적인 작품이다. 설탕공장의 기계공은 유부녀와 사랑에 빠졌고, 딸까지 뒀다. 그녀의 남편은 오스트레일리아로 일하러 갔는데, 8년째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막 도착한 전보는 남편이 현지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기계공은 이제 떳떳하게 부부로 살기를 원하는데, 여자는 죄책감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만 관계를 정리하자고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절망한 남자는 어린 딸을 데리고 정처 없는 방랑의 길에 오른다. 그가 딸을 데리고 방랑하는 곳이 바로 페라라와 그 주변이다.

<외침>은 안개에서 시작하여 안개로 끝나는 작품이다. 주역을 맡은 알리다 발리가 안개가 자욱한 강변을 걸어오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안개처럼 알 수 없고 외로운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란 강력한 표현법이다. 사실 남자는 여자를 잊을 수 없다. 잊기 위해 억지로 방랑에 나선 것인데, 그가 걷는 길엔 언제나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과거의 여인을 찾아간 포 강 주변은 비를 동반한 안개가 세상을 한치 앞도 못 보게 회색으로 색칠해놓는 식이다.

아마 <외침>을 본 관객이라면 안토니오니의 섬세한 감성이 어디서 잉태됐는지 충분히 짐작할 것이다. 그것은 고향 페라라의 안개인데, 이 ‘안개 속의 풍경’은 사실 안토니오니 영화의 전편에 등장하는 심리적 배경이다.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붉은 사막>(1964) 속 해변도시 라벤나의 안개, 경력 후반부의 작품인 <여성의 정체>(1982) 속 베네치아의 안개도 모두 고향 페라라의 안개에 뿌리를 둔 불안의 이미지일 테다.

안토니오니는 말년에 한번 더 페라라를 찾는다. 빔 벤더스가 조연출을 자처하여 만든 <구름 저편에>(1995)를 통해서다. 네개의 사랑 이야기로 구성된 이 작품의 첫 에피소드가 페라라에서 펼쳐진다. 엔지니어와 교사의 사랑인데, 이들이 처음 만나는 장소도 페라라 부근의 안개 낀 거리다. 축축한 공기를 배경으로, 사랑에 겁을 내는 젊은이의 여린 감각이 회색 안개 속으로 퍼져가는 이야기다. 흐리고 비 내리는 ‘습한’ 배경은 나머지 에피소드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한다. 장소는 페라라에 이어, 제노바 근처의 포르토피노, 프랑스 파리와 엑상프로방스로 이어진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는 폴 세잔에 대한 오마주를 담아 엑상프로방스에서 전개되는데, 여기선 안개와 더불어 안토니오니 특유의 소재인 비가 유난히 강조돼 있다. <구름 저편에>는 짙은 안개에서 시작하여, 끝없이 내리는 비로 종결되는 셈이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구름 저편에>. 페라라의 대성당인 성 조르지오가 뒤에 보인다.

페라라 유대인의 비극, <핀치 콘티니의 정원>

페라라는 베네치아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유대인 거주 지역이다. 두 도시의 유대인들은 중세부터 현재까지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베네치아의 유대인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유대인이라면, <베니스의 상인>은 읽기에 상당히 불편할 정도로 반유대주의 성격이 곳곳에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유대인들이 백인 시선의 대상으로 타자화돼 있는 게 가장 불편한 요소다.

페라라의 유대인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은 이 지역 출신 작가인 조르조 바사니의 소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이다. 조르조 바사니는 유대인이다. 바사니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가 비토리오 데시카의 <핀치 콘티니의 정원>(1970)이다. 페라라의 대부호인 핀치 콘티니 집안의 정원이 ‘사랑과 우정’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핀치 콘티니 집안도 유대인이다. 여기서의 유대인들은 차별받기보다는 페라라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표현돼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페라라가 곤경에 처했을 때, 특히 황제파와 교황파가 끝없는 전쟁을 펼칠 때, 페라라의 유대인들은 도시를 지켜내는 용사들이었다. 이들은 역사적 자긍심을 가질 만했다. 그런데 1938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부가 ‘반유대인법’을 실시하면서, 유대인들은 졸지에 도시에서 추방당하는 신세가 됐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선 파시스트의 행위가 우정의 배신일 테다. 그러면서 핀치 콘티니의 정원에도 비극이 엄습한다.

영화는 테니스 클럽에서 쫓겨난 유대인 청년들과 그들의 이탈리아 친구들이 함께 핀치 콘티니 집안의 정원에 있는 테니스 코트로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시작한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클럽 출입이 금지됐지만, 이들은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한다. 게다가 핀치 콘티니의 정원은 얼마나 넓고 아름다운가. 앞으로도 이 정원에서 테니스를 치면 될 것 같다. 함께 타는 자전거가 상징하는 우정, 청춘의 테니스, 그리고 청춘의 순수를 상징하는 흰색 테니스 유니폼은 이들에게 닥칠 비극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청년들은 모든 걸 잃을 운명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영화의 전반부 초여름의 맑은 날씨는 종결부 겨울의 습한 안개로 변하며, ‘핀치 콘티니의 정원’이 생명을 다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강제수용소행을 앞둔 핀치 콘티니 집안의 딸 미콜(도미니크 샌다)은 마지막으로 창밖을 통해 페라라 시내를 바라본다. 도시를 상징하는 중세풍의 에스테 성(Castello Estense), 성(聖) 조르지오 성당, 그리고 이곳 특유의 갈색 지붕들 위로 페라라의 짙은 안개가 마치 솜털처럼 내려앉는 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시네필들 사이에서 ‘베스트 피날레’의 하나로 칭송받는 장면이다. 도시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눈은 페라라와 마지막 이별을 하듯 애틋하고 간절하다. 아마 미콜과 ‘핀치 콘티니의 청년들’은 다시는 고향 페라라를 보지 못할 것이다. <핀치 콘티니의 정원>은 유대인 박해에 관한 직접적인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홀로코스트 테마’ 영화 가운데 대단히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는 페라라의 안개 낀 모습을 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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