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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원탁의 대통령, 원탁의 프로그래머
주성철 2017-05-26

“지금 저더러 여기 앉으라는 얘기인가요?” 안톤 후쿠아의 <킹 아더>(2004)에서 아서 왕(클라이브 오언)과 원탁의 기사들을 찾아온 로마제국의 대사는 짐짓 놀라는 척한다. 그들 사마시아족에 비하면 신적인 존재나 다름없는 대로마제국에서 온 자신이 그들과 함께 원탁에 빙 둘러앉는 게 영 못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아서 왕은 “신의 아들이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죠”라며 언제나 원탁에 앉아 얘기한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10년 전에 만들어진 제리 주커의 또 다른 ‘아서 왕’ 영화 <카멜롯의 전설>(1995)에서도 아서 왕(숀 코너리)은 탁월한 검술 실력을 지닌 랜슬롯(리처드 기어)을 원탁의 기사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로를 섬기면서 우리는 자유를 얻죠. 이 원탁은 위아래가 없는 평등한 곳이자, 바로 카멜롯의 정신”이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원탁을 끄집어낼 때, 김무성 전 대표가 ‘노 룩 패스’ 신공을 선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마침 가이 리치의 <킹 아서: 제왕의 검>(2017)도 개봉했기에 바로 그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제나 쥐도 새도 모르게 마감하는 ‘노 룩 마감’의 달인 송경원 기자가 이번호에 진행한, <노무현입니다>의 이창재 감독과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원국 작가의 대담을 보면서 다시 또 노무현이 떠올랐다. 하지만 과거 얘기만 할 수는 없는 법. 두달 전, 당시 대선 후보 문재인을 인터뷰했던 김성훈 기자가 중심이 되어 ‘문재인 대통령 시대의 문화정책’에 대한 특집을 꾸렸다. 시급한 문화부문 개혁을 비롯해 일자리 창출, 독립영화 지원사업, 대기업의 투자·상영 분리 등의 현안에 대해 꼼꼼히 짚어봤다. 앞으로 ‘원탁의 대통령’이 펼쳐갈 정책들을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려 한다. 기사를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에 맞춰 봉하마을로 떠나던 바쁜 날에 시간을 내어준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씨네21>과 지난 7개월 동안 모태펀드 블랙리스트를 취재한 김종대 정의당 의원, 지난 정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를 떠나야 했던 최규학 전 기획조정실장에게 특별히 감사를 전한다.

한편, 같은 특집으로 시간을 내어준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는 시민문화연대’ 공동대표이자 전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이었던 오석근 감독에게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그는 인터뷰에서도 밝혔다시피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뜬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의 40년 절친이기도 하다. 장영엽 기자의 추모 기사에서도 알 수 있지만, 지난주 영화계는 그 소식으로 한없이 우울했다. 그의 한참 아래 대학 영화동아리 후배였던 나는 그에 대한 여러 전설과도 같은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는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바로 그가 만든 사제 영화교과서(!)였다. 변변한 영화개론서 하나 없고 개인용 컴퓨터도 보기 힘들었던 1980년대였기에, 몽타주니 미장센이니 하는 영화용어와 개념들을 손으로 직접 써서 정리한 프린트물을 제작해 영화수업 교재로 썼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위해 온화한 얼굴 뒤로 뜨거운 열정을 숨기고 살던 사람, 국내 모든 영화제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공백 없이 프로그래머로 일한 사람, 한참 후배이기에 편하게 말씀 놓으시라는 부탁에도 끝까지 사람 좋은 얼굴로 존대하던 사람, 그처럼 또 한명의 ‘원탁의 프로그래머’가 바로 그였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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