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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카르티에 재단의 <하이라이트> 전시 현장 스케치

<하이라이트>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서울시립미술관에 모였다. 한국에서는 박찬욱, 박찬경 외에 이불, 선우훈 작가 등이 함께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명품 브랜드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의 소장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 전시를 서소문 본관에서 5월 30일부터 개최했다. 전시에는 전세계 25명 작가의 작품 10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1984년 설립된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은 프랑스에서 기업 메세나의 혁신적인 모델로 꼽힌다. 이번 전시는 한국 작가들과 협업이 도드라진다. ‘파킹찬스’(PARKing CHANc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박찬욱, 박찬경 형제 감독을 비롯해 이불, 선우훈 등이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 기획한 작품을 선보인다. 파킹찬스는 <격세지감>이라는 제목의 3D 설치작품을 제작하여 최초로 공개했다. 김나희 문화평론가가 이번 전시에 대한 리포트와 함께 박찬욱, 박찬경 감독과 긴 인터뷰를 가졌다. 그리고 파킹찬스가 연출한 작품들의 목록도 덧붙였다. 전시는 8월 15일까지 이어진다. 한편 박찬경 감독은 이 전시와 함께 오는 6월 25일부터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5년 만에 ‘안녕’이라는 이름의 개인전도 갖는다.

파리의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은 몽파르나스 부근 라스파일 대로에 장 누벨이 설계한 아담한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1994년에 개관한 이 공간에서 하나씩 차례로 선보인 전시 중 주요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서울시립미술관 전체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해 선보이는 특별한 전시인 만큼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 역시 모두 서울에 모였다.

<수학, 아름다운 그곳>으로 수학자들을 인터뷰해 수학이 인류에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수학자들의 진심어린 고백을 화면에 담아낸 작가 장 미셸 알베롤라는 “몇해가 지난 뒤 지구 반대편에서 작품들과 다시 한번 마주하는 기분이 묘하다. 여러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교류하고 소통하는 기회가 되었다”며 서울에서의 <하이라이트> 전시를 만족스러워했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벌컨상 심사위원장 일정을 마치고 숨가쁘게 날아온 사운드 엔지니어이자 영화 제작자인 클로딘 누가레는 박찬욱 감독을 만나 “우리가 같은 마음으로 칸에서 영화를 보고 같은 작품에 상을 준 셈인데, 칸에서는 못 만났지만 이렇게 서울까지 날아와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라면서 반가움을 표했다.

축사를 전달하기 위해 자리한 파비앙 페논 프랑스 대사는 “한·불 수교 130주년에 이어 이렇게 양국의 문화를 이어주는 전시가 열려 기쁘다.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적 교류에 프랑스 정부도 진심으로 기쁜 마음을 담아 응원하고 있다. 양국 정부 주도로 이루어졌던 한·불 수교 130주년 행사와 일개 기업인 카르티에의 전시를 대함에 있어 그 마음가짐이 다르다거나 하지 않는다”고 방점을 찍었다. 최효준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프랑스의 보석 브랜드인 카르티에에서 이렇게 사회공헌적인 성격을 유지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후원과 재단운영을 30년 넘게 해왔다는 점이 놀랍다. 공공 미술관인 서울시립미술관이 추구하는 지점, 모두에게 열려 있는 무료 전시에도 쉽게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고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직 한국에서는 기업의 문화재단 운영 역사가 짧아 이만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다. 부대행사로 열리는 에르베 관장과의 대담을 통해 앞으로 우리 기업과 예술재단에서도 벤치마킹할 부분이 있다면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오랜 준비에 걸맞은 결과물에 흡족함을 표했다.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의 관장인 에르베 샹데스 역시 들뜬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서울과 파리를 자주 오가며 준비한 전시가 큰 환영을 받게 되어 기쁘다. 한자리에서 지난 주요 컬렉션을 한꺼번에 본다는 점에서 마치 올스타전 같기도 하고, 1984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해온 우리 재단의 활동이 옳은 방향이었다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위도가 같지만 유라시아 대륙의 이쪽과 저쪽에 자리한 서울과 파리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한 도시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수년간 이유 없이 지원사업에서 배제당했던 예술가에게,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눈부신 찬사를 쏟아냈다. 한참을 두 언어 사이에 놓였다가 현실로 돌아오고 난 뒤 정체 모를 모호한 감정에 휩싸였다. 기쁘면서도 서글펐고, 씁쓸하면서도 안도감이 들었다. <격세지감> 속 모자를 건넨 오경필 중사의 마음도 이렇게 여러 갈래였을까 헤아릴 수 있을 만큼, 그 자체로 영화적인 경험을 선사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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