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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씨네21> 이 꼽은 영화 속 최고의 여성 액션 캐릭터/배우 50 ③
정지혜 2017-06-19

샐마 헤이엑 <황혼에서 새벽까지>, 서기 <자객 섭은낭>, 구리야마 지아키 <배틀 로얄>, 샤론 스톤 <퀵 앤 데드>, 루니 마라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지나 카라노 <헤이와이어>, 틸다 스윈튼 <콘스탄틴>, 힐러리 스왱크 <밀리언 달러 베이비>, 카야 스코델라리오 <메이즈 러너>,

이 장면! “너의 피를 빨지는 않겠다. 대신 넌 나의 노예, 넌 내 발판이야!” 세스를 제 발 아래 때려눕힌 산타니코가 주인으로 군림하려 한다. 물론 절대 기죽지 않는 세스는 유머 어린 말로 맞받아치겠지만.

샐마 헤이엑 <황혼에서 새벽까지>

Salma Hayek, 1966~ /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 1996

“지옥의 여신이자 악마의 화신”이라는 말과 함께 산타니코 팬드모니움이 육감적인 육신에 거대한 뱀을 두르고 모습을 드러낸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운영되는 클럽 ‘티티 트위스터’의 매혹의 댄서, 아니 치명적인 뱀파이어다. 넋을 놓고 자신을 바라보던 리차드(쿠엔틴 타란티노)에게 발끝으로, 입으로 술을 퍼넣어주더니 일순간 뱀파이어로 돌변해 그를 물어뜯는다. 리차드의 형인 세스(조지 클루니)에게는 시원한 강펀치를 날려준다. 샐마 헤이엑은 <데스페라도>(1995),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1999),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2003) 등 서부 액션물에 등장한 적은 많지만 제대로 된 액션이라면 <밴디다스>(2006)를 빼놓을 수 없다. 절친인 페넬로페 크루즈와 함께 카우보이 모자를 쓴 채 가슴골을 훤히 드러내고는 말에 오르고, 총칼 못지않게 육탄전에 최적화된 코믹 액션극을 선보였다.

서기 <자객 섭은낭>

舒淇, 1976~ / 감독 허우샤오시엔, 2015

이 장면! 고요한 자작나무 숲속에서 사람도, 자연도 말이 없다. 들리는 것은 오직 섭은낭과 전계안(장첸)의 호위무관 사이에서 칼의 합을 겨루며 내는 바람 소리뿐. 승리한 섭은낭은 그저 돌아서 걸어가고, 패자는 말없이 제 갈 길을 간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 섭은낭은 단 한번의 칼로 표적을 베어버린다. 자객으로서 완전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컬러로 전환된 이후에는 오히려 이러한 방식의 완성은 없다. 섭은낭이 보여주는 무(武)의 도(道)는 누군가를 죽이는 게 아닌 살아 있게 하는, 살아 있는 걸 지켜내는 무(武)다. 말이 없는 섭은낭을 통해 서기는 정중동의 미학을 절제된 동작과 시선으로 표현한다. 다작 배우답게 때론 말괄량이로, 때론 퇴폐적 사랑의 여인으로 보였다가 이내 외유내강의 얼굴을 표현해왔다. <신투차세대>(2000)의 비밀스러운 여인 준, <절색신투>(2001)의 칠공주를 이끌던 도둑 캣, <버추얼 웨폰>(2002)의 암살자 린, 지질한 한국의 조폭 사내들을 칼과 맨손으로 접수한 <조폭마누라3>(2006)의 아령. 뤽 베송이 제작한 액션영화 <트랜스포터>(2002)로 할리우드 액션물까지 경험한 그녀다.

구리야마 지아키 <배틀 로얄>

Kuriyama Chiaki, 1984~ / 감독 후카사쿠 긴지, 2000

이 장면! “상대해주겠어, 나의 전 존재를 걸고 너를 부정해주겠어!” 자신에게 성적 모욕을 안기는 남자 16번에게 다카코가 달려들어 그의 남근을, 몸을 짓눌러놓는다.

엄청난 실업률과 학교 붕괴. 일본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서바이벌 학원물 <배틀 로얄>. 무인도에서 생존 게임을 이어가던 학생들 중 여자 13번 치구사 다카코는 어쩌면 이 지옥도에서 가장 ‘안온한’ 죽음을 맞은 게 아닐까. 좋아하던 남학생 히로키에게 솔직한 고백, “난 히로키 앞에서 영원히 뛸 거야”를 전하고 “그럼 난 뒷모습을 지켜봐줄게”라는 히로키의 대답을 듣는다. 그런 그녀가 히로키의 어깨에 기댄 채 죽음을 맞게 될 때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 창백해 보이는 피부 탓인지 귀기어린 인상이다. <킬 빌>에서 철퇴를 줄에 엮어 휙휙 휘두르며 브라이드를 매섭게 몰아세우던 닌자 고고 유바리는 강렬하다. 말 그대로 피눈물을 흘리며 최후를 맞지 않는가. <비밀첩보요원 에리카>(2003)의 비밀첩보요원도 꽤 그럴듯하다.

샤론 스톤 <퀵 앤 데드>

Sharon Stone, 1958~ / 감독 샘 레이미, 1995

이 장면! 죽은 자가 살아 돌아왔다. 총을 맞고 대결에서 패한 엘런이 불구덩이 속에서 걸어나온다. 내딛는 걸음마다 부츠 뒤축에 박힌 징이 묵직한 소리를 낸다. 아버지의 복수의 대상을 지체없이 날려버리고 하는 말, “마을에 정의가 다시 세워졌어”.

먼지바람 사이로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담배를 문 엘런이 말을 타고 등장한다. 허리춤엔 총까지 찼다. 마을을 지배하는 존 헤롯(진 해크먼)을 향한 복수심으로 가득 찬 그녀는 때를 노린다. 존이 주최하는 총 쏘기 대결이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상대를 누가 먼저 쏠 것인가. 주춤할 새 없는 일촉즉발이다. 이에 앞서 샤론 스톤은 SF물 <토탈 리콜>(1990)을 통해 액션을 선보인 바 있다. 퀘이드(아놀드 슈워제네거)에게 주입된 타인의 기억을 조종하는 반란군의 본부에서 퀘이드의 아내 멜리나와 제대로 붙는 로리 역이다. 상대를 들쳐메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육탄전이다. <원초적 본능>(1992)의 캐서린은 말할 것도 없고 <캣우먼>(2004)의 ‘악녀’도 육감적이다.

루니 마라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Rooney Mara, 1985~ / 감독 데이비드 핀처, 2011

이 장면! 소매치기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던 리스베트의 가방을 낚아챈다. 리스베트는 곧장 그를 잡아 때려눕히고 가방을 찾아 하행의 에스컬레이터로 슬라이딩한다. 물론, 지하철까지 골인이다. 모든 게 완벽하다.

“난 어린애가 아니에요. 10살부터 혼자 살아왔어요.” 천부적인 해커 리스베트는 제 스스로를 강인하다고 방어하고 웅변해야 했다. 펑크록 스타일의 차림새에 검디검은 머리색, 피어싱과 용 문신까지. 딱 봐도 범상치 않다. 루니 마라는 리스베트를 “이율배반적인 캐릭터” , “너무 많은 걸 경험해 조숙한 듯 보이나 내면에는 연약하고 상처 입어 성장하지 못한 부분이있”다며 사랑으로 보듬는다. 때리고 부수는 액션의 합으로서가 아니라 미카엘(대니얼 크레이그)과 주고받는 성적 긴장과 둘 사이의 공조에 의한 추리의 묘가 리스베트에게서 스릴러적 분위기를 만든다.

지나 카라노 <헤이와이어>

Gina Joy Carano, 1982~ /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2011

이 장면! 비겁하게 뜨거운 커피를 말로리의 얼굴에 획 끼얹고 공격에 나선 옛 동료 아론(채닝 테이텀). 틈을 노렸지만 역시 말로리의 압승이다. 격투기장에서 볼 법한, 다리 사이로 상대를 끼워넣고 비틀어버리고 상대의 총을 빼앗아 총머리로 아론을 후려갈긴다. 긴장감을 불어넣겠다며 컷을 나눠가는 꼼수 대신 풀숏으로 말로리의 액션을 고스란히 담아낸 게 결정적이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 생동하는 액션이다.

실제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인 지나 카라노. <헤이와이어>에서 고도로 훈련된 미국쪽 첩보요원 말로리 케인이 돼 완벽한 액션을 보여준다. 힘과 스피드 다 있다. 말로리가 부부 행세를 하며 임무 수행 중인 첩보원 폴(마이클 파스빈더)과 맞붙은 호텔방 난투극은 기막히다. 어느새 공격의 주도권은 말로리에게 기울어 폴을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제압하고 끝을 본다. 마이클 파스빈더뿐 아니라 마이클 더글러스, 이완 맥그리거, 채닝 테이텀,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말로리의 액션 앞에서 제압당하거나 그녀의 관심 밖 인물들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고 전력 질주해 가공할 무술을 보이는 진짜 액션이다. <데드풀>(2016)에서 에이잭스의 오른팔인 악당 엔젤 더스트로 분했을 때 역시 연기인지 실제 이종격투기 경기 중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액션을 선보였다. 진짜 액션을 선보이는 몇 안 되는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다.

틸다 스윈튼 <콘스탄틴>

Tilda Swinton, 1960~ / 감독 프랜시스 로렌스, 2005

이 장면! 가브리엘은 콘스탄틴(키아누 리브스)을 제 발 아래 눕혀두고 주의 죄 사함에 대해 말한다. 회개만 한다면, 우주 만물 중 인간만이 그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의문이다. 가브리엘은 인간은 공포 앞에서 선한 본성이 나온다며 콘스탄틴에게 고통을 줘보기로 한다.

틸다 스윈튼은 특정 성별을 가늠하려는 시도 자체를 무용하게 만드는 아우라가 있다. 이계가 있다면 그곳에서 오지 않았을까 싶은 영적인 매력이다. 180cm에 육박하는 큰 키에 특유의 피부톤이 만들어내는 육신의 매력이 한몫한다. <콘스탄틴>의 신이 보낸 지상의 문지기,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천사장 가브리엘도 그런 이미지의 현현이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신하는 <올란도>(1992)의 올란도,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2005)의 하얀 마녀,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의 뱀파이어까지 이어진다. 틸다 스윈튼의 나신은 종종 대자연의 일부처럼 보이거나 인간의 원시성을 떠올리게 하는데 <비치>(2000), <아이 엠 러브>(2009), <비거 스플래쉬>(2015)를 보면 수긍할 것이다.

힐러리 스왱크 <밀리언 달러 베이비>

Hilary Swank, 1974~ /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2004

이 장면! 링 위에 올라 승리를 거두는 매기도 인상적이지만 텅 빈 체육관에서 홀로 연습을 거듭하는 매기가 더 오래 기억된다. 기존에 알고 있던 복싱에 관한 모든 걸 뼛속부터 잊으려는 듯, 매기는 한발 한발 새롭게 내딛는다.

손님들이 남긴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웨이트리스 매기. 그녀의 꿈은 복싱 챔피언 결정전에 나가는 것이다.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동정이나 호의가 아니라 자신의 트레이너가 돼주길” 원한다. 매기는 여자니까, 나이가 많으니까 따위로는 멈추지 않는다. 16살에 가난을 뒤로하고 할리우드로 간 힐러리 스왱크와 겹쳐 보인다. 수영 선수로 주니어 올림픽에 나갈 정도였던 스왱크는 석달간 하루 네 시간 반씩 훈련하며 매기를 만들었다. 근성과 저력의 잽의 매기로 스왱크는 2005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가라테 키드>(1994)에서 놀라운 스피드와 가라테 실력을 보였고, <소년은 울지 않는다>(1999)에선 남장 여자였으며, 서부극 <더 홈즈맨>(2014)에서 정신이상의 여인들을 이송하는 여성의 강인함을 그렸다.

카야 스코델라리오 <메이즈 러너>

Kaya Scodelario, 1992~ / 감독 웨스 볼, 2014

이 장면! 트리사가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와 처음 만나는 장면. 모든 기억이 삭제된 상태라 겁을 잔뜩 집어먹은 트리사는 달랑 칼 하나를 들고 토마스를 향해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동시에 “꿈속에서도 계속 너를 불렀다”는 트리사의 말은 토마스와 미로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기억을 잃고 정체불명의 미로에 갇힌 소년들 앞에 나타난 소녀 트리사. 그녀 역시 기억을 잃긴 마찬가지지만 용기만은 잃지 않은 듯 보인다. 소년들과 합심해 괴물 그리버와 싸워나가면서 미로의 지도를 파악해가기 시작한다. 영어덜트 소설 원작 SF물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여성 캐릭터를 꿰찬 이후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2017)에도 합류한다. 미신과 신화가 아닌 오직 과학적 근거에만 기대 사고하는 카리나 스미스로 등장해 이 오래된 시리즈의 모험을 이끈다. 학교를 배경으로 10대의 사랑과 혼돈을 그린 영국 드라마 <스킨스> 시리즈를 통해 캐릭터에 대한 두터운 팬층이 생길 만큼 존재감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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