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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씨네21> 이 꼽은 영화 속 최고의 여성 액션 캐릭터/배우 50 ⑤
장영엽 2017-06-19

소피아 부텔라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샤를리즈 테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린다 해밀턴 <터미네이터> 시리즈, 미셸 파이퍼 <배트맨2>, 할리 베리 <캣우먼>, 레베카 퍼거슨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지나 롤랜즈 <글로리아>, 스칼렛 요한슨 <어벤져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제니퍼 로렌스 <헝거게임> 시리즈, 멜라니 로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이 장면! 에그시(태론 에거턴)와의 마지막 대결에서 가젤은 브레이크 댄스에 가까운 한발 스핀을 선보인다. 가젤이 다리에 장착한 블레이드가 미러볼처럼 반짝이는 순간, 목숨을 건 결투는 휘황찬란한 피의 파티로 변모한다. 10대 시절 브레이크 댄스팀 ‘배가본드 크루’ 멤버였던 소피아 부텔라의 장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소피아 부텔라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Sofia Boutella, 1982~ / 감독 매튜 본, 2015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가젤은 윌리엄 아이리시의 소설 <환상의 여인>의 주황색 모자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이다. 양쪽 다리에 칼날이 달린 의족을 장착한 그녀는 적들에 맞서 현란한 사격 솜씨를 선보이던 ‘킹스맨’을 블레이드로 두 동강내며(문자 그대로다!) 등장한다. 그처럼 단호하고 깔끔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가젤은 빅맥을 사랑하며 어딘가 허술한 이 영화의 메인 빌런 발렌틴(새뮤얼 L. 잭슨)에 무게감을 실어주는 존재였다. 미국의 위대한 춤꾼이자 배우였던 프레드 아스테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프랑스 국가대표 리듬체조 선수였던 소피아 부텔라는 특유의 리듬감 넘치는 액션으로 가젤을 연기한다. <스타트렉 비욘드>(2016)의 외계인 제이라, <미이라>(2017)의 아마네트 등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와 활력의 액션을 모두 소화 가능하다는 게 그녀의 장점이다.

샤를리즈 테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Charlize Theron, 1975~ / 감독 조지 밀러, 2015

이 장면! 퓨리오사의 캐릭터를 단번에 알 수 있는 맥스(톰 하디)와의 대결 장면. 살점이 덜렁거리는 왼팔을 휘두르며, 퓨리오사는 온몸을 던져 이방인 맥스를 공격한다. 때리고, 맞고, 내리찍고, 구르는, 그야말로 처절한 개싸움의 순간이다.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겉모습과 날카로운 눈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퓨리오사는 조지 밀러가 창조해낸 디스토피아의 지옥 같은 풍경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안락하지만 강제적인 복종을 거부하고,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안식처를 건설하기 위해 사막을 횡단하는 그녀의 모습은 새로운 시대의 페미니즘 액션 히어로의 탄생을 알렸다. 액션 캐릭터로서의 퓨리오사가 매력적인건 이 영화에 등장하는 그 어떤 무리들과도 완전한 연대를 맺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쉽게 동정하지도, 누군가에게 쉽게 의지하지도 않은 채 오직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는 퓨리오사의 생존전략은 그녀가 구사하는 서바이벌 스타일의 액션에도 반영되어 있다. 샤를리즈 테론은 이 영화 이전부터 유능한 액션 스타였다. 리듬체조에 가까운 <이온 플럭스>(2005)의 우아한 액션부터 우월한 신체 조건을 활용한 <아토믹 블론드>(2017)의 격렬한 맨몸 격투까지 소화할 수 있는 액션의 스펙트럼 또한 넓다. 출연하는 액션영화마다 여자배우들을 겨냥한 불필요한 노출을 신랄하게 지적하는 샤를리즈 테론이라 하니, 그녀의 캐스팅은 현장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한 처사다.

린다 해밀턴 <터미네이터> 시리즈

Linda Hamilton, 1956~

이 장면! <터미네이터2>에서 사라 코너의 정신병원 탈출 시퀀스는 이 시리즈의 백미다. 린다 해밀턴이 2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은 이 대목은 1편과 2편의 시간 사이, 사라 코너가 경험했을 고통스러운 수련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생각해보면 영화사를 통틀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사라 코너만큼 기구한 운명을 지닌 여성 캐릭터도 드물 것이다. 미래 인류의 지도자가 될 운명의 아들을 낳아야 하는 여자. 그 아이의 잉태를 위해 48시간 뒤 죽을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 너무 빨리 미래를 경험한 죄로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누구도 믿지 않는 파국을 대비하는 여자. 하지만 <터미네이터> <터미네이터2>는 사라 코너가 단순히 누군가의 어머니에 머물 인물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각인해줬다. 그녀는 1980년대 미국 대중문화에 혜성처럼 나타난 강인한 여전사였다. 바이크를 타고 식당으로 출근하던 평범한 웨이트리스가 시리즈를 거듭하며 저항군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가는 성장담은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서사에서 가장 뭉클한 지점이기도 하다.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부터 미국 TV시리즈 <사라 코너 연대기>까지, 다양한 배우들이 사라 코너를 거쳐갔지만 역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는 1, 2편에 출연한 린다 해밀턴이다. 검은 선글라스에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가 드러나는 민소매 셔츠를 입고 기관총을 든 그녀의 모습은 후대의 여전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제임스 카메론은 사라 코너 역에 “현실과 영화에서 두루 강인한 여성”을 찾고 있던 도중 린다 해밀턴을 캐스팅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처럼 린다 해밀턴은 혹독한 훈련으로 단련된 육체와 내면의 단단함을 동시에 지닌, 아주 특별한 여전사였다.

미셸 파이퍼 <배트맨2>

Michelle Pfeiffer, 1958~ / 감독 팀 버튼, 1992

이 장면! “목숨이 두개 남았네요. 하나는 다음 크리스마스에 쓰는 게 좋겠어요. 그런데, 지금 키스하는 거 어때요, 산타클로스씨?” 자신을 죽인 슈렉의 입에 발전기를 물린 뒤, 무너지는 건물에서 그에게 키스하며 캣우먼은 사라져간다. 안티 히어로의 비장한 최후.

“안녕, 거기.”(Hello There) 천진난만한 비서 셀리나 카일의 창가를 밝히던 이 네온사인은 캣우먼의 탄생과 함께 “여기가 지옥”(Hell Here)으로 바뀐다. 지루한 천사는 사라지고 매혹적인 악마가 등판하는 순간이다. 팀 버튼의 <배트맨2>에 등장하는 캣우먼은 달콤한 악몽 같은 여성 캐릭터다. 부드럽게 접근해 상대방의 가슴팍에 날카로운 발톱을 박아넣는 그녀는 복수의 감정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는 인물이다. 회사 기밀을 알아버렸다는 이유로 사장 슈렉에 의해 고담시의 고층빌딩에서 내동댕이쳐진 셀리나는 길고양이들에게 발견돼 아홉개의 목숨을 얻고 다시 태어난다. 본래 팀 버튼이 아네트 베닝을 염두에 뒀던 이 역할은 그녀의 임신으로 미셸 파이퍼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파이퍼는 캣우먼에 최적의 선택이었다(무엇보다 그녀보다 고양이답게 생긴 배우를 찾기란 정말이지 어렵다는 점을 받아들이자). 셀리나 시절의 엉뚱함과 한번의 죽음 이후 생겨난 분노가 뒤섞여 미셸 파이퍼가 연기하는 캣우먼은 독특한 광기의 캐릭터가 되어버렸고 그녀의 액션은 고양이의 민첩함과 예측 불허의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다. 캣우먼은 배우 미셸 파이퍼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인상적인 방점으로 남을 캐릭터다. <순수의 시대>(1993)와 <업 클로즈 앤 퍼스널>(1996), <어느 멋진 날>(1996) 등 주로 인물간의 관계에 대한 드라마에 출연해왔던 미셸 파이퍼에게 캣우먼은 그녀의 날카로운 발톱 자국만큼이나 깊은 흔적을 남겼을 거다.

할리 베리 <캣우먼>

Halle Berry, 1966~ / 감독 피토프, 2004

이 장면! “내가 바로 페이션스 필립스다.”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 샤론 스톤이 연기하는 <캣우먼>의 메인 빌런 로렐과 캣우먼의 마지막 대결은 격렬하다. 샤론 스톤의 얼굴이 새겨진 화장품 광고판을 뚫고 두 여자가 함께 뒹군다.

아카데미 역사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여배우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해도, 희대의 망작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할리 베리의 <캣우먼>은 아마 최악의 여성 액션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를 꼽을 때 반드시 언급될 만한 작품이다. 오죽하면 배우 자신이 그해 영미권 최악의 영화를 꼽는 골든라즈베리 어워드에 직접 출연해 “이렇게 X같은 영화에 나를 캐스팅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비아냥의 소감을 전했겠는가. 하지만 감독의 연출력은 탓해도 할리 베리의 액션 능력까지 비난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브라질 무술 카포에이라를 익히고 고양이의 습성을 연구해 자신만의 동작을 만들어가는 등 할리 베리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캣우먼의 첫 솔로영화에 무척이나 열심히 임했다. 미셸 파이퍼의 캣우먼에 비해 노출이 심한 의상과 하이힐을 신고 액션에 임했다는 점도 배우의 고단함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어쨌거나 자신의 커리어에 치명타를 날린 <캣우먼>을 찍은 뒤, 할리 베리는 <엑스맨> 시리즈의 스톰으로 액션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또다시 증명했다. 2002년작 <007 어나더 데이>에서는 본드걸 징크스로 출연하기도.

레베카 퍼거슨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Rebecca Ferguson, 1983~ / 감독 크리스토퍼 매쿼리, 2015

이 장면! 일사가 신디케이트 최고의 악당, 일명 ‘뼈 박사’로 불리는 야닉과 어둠 속에서 단검으로 대결하다가 일격을 가하는 장면에 주목하길. 그녀에겐 역시 고전적인 무기가 가장 잘 어울린다.

기품 있는 액션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크리스토퍼 매쿼리의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을 보면 된다. 스웨덴 배우 레베카 퍼거슨이 연기하는 일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과 품격을 잃지 않는 캐릭터다. 특히 그녀가 오페라 <투란도트>가 상연되는 무대 뒤편에서 한쪽 다리를 지렛대 삼아 플루트 모양의 총을 표적에게 겨누는 장면은 그야말로 숨막히게 아름답다. 흡사 스웨덴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을 떠올리게 하는 레베카 퍼거슨의 고전적인 매력은 최첨단 첩보 장비와 참신한 액션 시퀀스로 무장한 이 시리즈에 새로운 정서를 더한다. 물론 그녀가 연기하는 일사는 아슬아슬한 바이크 액션, 민첩함과 가벼운 체중을 활용한 맨몸 격투 등 고난이도의 액션에도 능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로맨스로 빠져버리지 않는 에단 헌트와 일사의 동지적 관계다. 에단 헌트에 필적할 만한 능력을 지닌 동료이자 전직 스파이로서의 비밀스러움을 간직한 일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첩보물이 선보여야 할 여성 캐릭터의 좋은 선례로 남을 만하다.

지나 롤랜즈 <글로리아>

Gena Rowlands, 1930~ / 감독 존 카사베츠, 1980

이 장면! 자신을 쫓아오던 아이를 피해 달아나던 글로리아는, 그 아이를 쫓아온 비열한 갱스터들을 보고 비로소 결심한다. 이 연약한 생명을 저들로부터 지켜내기로. 끝내주는 솜씨로 갱스터들에게 총을 난사한 뒤 그녀가 ‘택시!’를 외치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통쾌하다.

아이와 장부를 넘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글로리아는 6살 아이를 무참하게 살해하려는 갱스터들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총구를 겨눈다. 모성애 때문이 아니라 옳지 않은 일이기에. 존 카사베츠의 <글로리아>는 팜므파탈에서 벗어난 여성 액션 캐릭터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었다. 카사베츠는 본래 자신이 직접 쓴 <글로리아>의 시나리오를 영화사에 팔 예정이었지만, 미리 집에서 남편이 쓴 시나리오를 읽은 카사베츠의 아내 지나 롤랜즈가 그에게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을 것과 더불어 자신의 캐스팅을 강하게 권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섹시하고 터프하며 남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글로리아의 진취적인 여성상은 1980년대 당시 찾아보기 힘든 유형이었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기지와 본능으로 적들을 위협하는, 유능한 킬러로서 글로리아의 모습은 뤽 베송의 <레옹>(이건 누가 봐도 <글로리아>의 남성 버전이 아닌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잘 알지도 못하는 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글로리아의 상황을 모성애의 감정보다 일종의 동지적 관계로 해석한 지나 롤랜즈의 연기가 대단했던 작품이다. <영향 아래 있는 여자>(1974), <오프닝 나이트>(1977) 등 심리적 변화의 묘사가 중요한 카사베츠 영화의 페르소나로 활약했던 지나 롤랜즈에게 <글로리아>는 본격적으로 액션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장이었다.

스칼렛 요한슨 <어벤져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Scarlett Johansson, 1984~

이 장면! <어벤져스>에서 의자에 포박당한 채 공중을 날아다니며 적들을 일망타진하는 블랙 위도우의 모습은 그녀의 기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DC에 원더우먼이 있다면 마블엔 블랙 위도우가 있다. 토르, 아이언맨 같은 남성 슈퍼히어로 캐릭터에 비해 파워나 능력은 아쉬운 점이 있지만, 러시아 첩보기관에서의 오랜 수련으로 다져진 민첩함과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기술만큼은 그녀를 따라올 자가 없다. 어벤져스의 핵심 멤버인 블랙 위도우는 <아이언맨2>(2010)를 시작으로 <어벤져스>(2012),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등 다섯편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에 출연했다. 지형지물과 임기응변을 활용한 액션은 블랙 위도우의 핵심 기술이다. 사적인 감정을 품어서는 안 되는 혹독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애와 정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영웅으로 성장한 블랙 위도우에 관객은 열광했고, 그녀를 연기한 스칼렛 요한슨은 계획에 없던 <캡틴 아메리카> 솔로 무비 출연까지 확정지었다. 스칼렛 요한슨은 이외에도 수차례 액션영화의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권총 액션을 기반으로 초능력을 활용한 액션이 인상적이었던 <루시>(2014)의 루시,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살색 보디 슈트를 입고 와이어 액션을 선보인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의 메이저 요원 등이 있을 것이다. 국적을 가늠할 수 없는 개성 있는 액션 히어로들을 연기해왔던 요한슨은 오는 2018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다시 한번 블랙 위도우로 출연할 예정이다.

제니퍼 로렌스 <헝거게임> 시리즈

Jennifer Lawrence, 1990~

이 장면! <헝거게임: 더 파이널>에서, 캣니스는 드디어 아무런 장애물 없이 판엠의 대통령 스노우의 가슴팍을 겨냥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쏜 화살은 대통령이 아니라 모략가의 가슴팍에 꽂힌다. 캣니스는 어디에, 어떻게 힘을 써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소녀다.

불타는 소녀(The girl on fire). <헝거게임> 프랜차이즈의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은 진중한 하이틴 액션 히어로의 탄생을 알리는 인물이다. 수도 캐피톨의 지배를 받는 판엠에서 지옥 중의 지옥 ‘12구역’ 출신인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다른 구역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 딜레마에 처한다. 영어덜트 소설치고 지나치게 어두운 이 프랜차이즈의 잿빛 풍경에, 캣니스를 연기하는 제니퍼 로렌스는 ‘불타는 소녀’라는 캐릭터의 별명처럼 뜨거운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한번 활을 들면 겨냥하는 모든 것을 정확히 맞추는 솜씨를 지닌 캣니스는 급기야 12구역을 통제하는 스노우 대통령이 만든 대형 경기장 천장을 박살내고, 혁명의 아이콘으로 거듭난다. 제니퍼 로렌스는 한없이 리얼한 연기로 이 진중한 액션 히어로를 소화해낸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국제 무대에 널리 알린 <윈터스본>(2010)에서도 생존을 위한 액션을 선보이는가 하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 <엑스맨: 아포칼립스>(2016) 등에서는 돌연변이 미스틱으로 분해 양식화된 액션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보통 사람이 감내하기 힘든 수준의 시련이 주어지고 그 시련을 특유의 카리스마와 열정, 근성으로 돌파해내는 게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하는 대개의 인물들의 공통된 기질이다. 그런 그녀의 캐릭터를 반영하는 듯, 제니퍼 로렌스의 액션은 작품마다 별다른 꾸밈없이 담백하다는 인상을 준다.

멜라니 로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Melanie Laurent, 1983~ /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2009

이 장면! 대단원의 복수극을 앞두고 드레퓌스는 프레드릭의 총에 온몸이 벌집이 되어 죽어간다. 얼굴 근육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비명을 지르며. 총에 맞는 순간조차 아름답기만 하다면 그쪽이야말로 거짓이다. 타란티노는 드레퓌스의 최후를 슬로모션으로 공들여 보여주는데, 아마도 그건 지옥문에 다다른 이 결연한 테러리스트에 바치는 경의의 의미일 것이다.

가련하게 죽거나, 끔찍하게 살해당하거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의 죽음은 대개 이런 경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속 쇼산나 드레퓌스의 최후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프랑스 레지스탕스 단원으로 활동하며 오직 나치에 대한 복수만을 꿈꾸던 그녀는 자신이 운영하는 극장에서 고위급 나치 장교들을 몰살할 계획을 세운다. 죽은 줄 알았던 독일군 병사의 기습에 드레퓌스는 쓰러지지만, 그녀는 죽어서까지 극장 스크린에 혼령처럼 등장해 나치군을 마음껏 조롱한다. 핏빛 드레스를 입고 짧지만 강렬한 액션을 선보이며 고통 속에 죽어가는 멜라니 로랑의 모습은 레지스탕스 여전사의 계보에 인상적인 궤적으로 남는다. 이후 비밀 정보기관에 소속된 킬러로 출연한 <레퀴엠 포 어 킬러>(2011)와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2013)도 기억해둘 만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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