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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앙갚음
노순택(사진작가) 2017-06-21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게 결국 돈이라는 말은 어디까지 맞고 어디에서 틀릴까.

돈이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말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부자도 결국 죽는다. 돈으로 산 사람마저 죽일 수 있다는 말은 모두 맞다. 빈털터리는 쉽게 죽는다. 힘센 자들은 이 사실을 예감한다. 약한 자들은, 절감한다.

10년에 걸친 해군기지건설 강행으로 마을공동체 파괴를 겪은 제주 강정마을에 34억5천만원 구상권이 청구됐다. 주민과 평화운동가들의 방해로 공사가 지연됐다는 이유다. 700여명의 연행, 60여명의 투옥, 4억여원의 벌금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국가는 돈 폭탄을 던졌다. 2009년 하루아침에 일터를 정리당한 쌍용차 노동자들의 저항은 거셌다. 경찰은 테이저건을 쏘는 등 강경진압으로 일관했다. 충돌로 발생한 장비파손 등을 근거로 국가는 해고노동자들에게 16억7천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임금과 퇴직금, 부동산이 가압류됐다. 94명 구속, 300여명 형사처벌, 28명의 희생자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날벼락이 내렸다.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꿈꾸며 평화로운 연대운동의 지평을 열었던 ‘희망버스’ 관계자들은 지금도 재판에 불려다니며 형사책임과 손해배상의 짐을 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1년을 맞아 우리 사회의 침몰과 진실의 실종을 경고했던 추모집회 관계자들에게 국가는 7800만원 배상을 청구했다. 경찰 40명도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1200만원을 청구했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관계자에게 청구된 5억2천만원 손해배상에 대해 법원은 이유 없음을 판결했지만, 국가는 수긍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살인적인 야간노동을 멈춰달라며 시작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파업을 진압하며 발생한 손해에 대해 경찰은 1억1천만원을 청구했다.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고 용역깡패의 만행을 사주한 사장이 법정구속됐지만, 국가는 뻔뻔했다. 이것은 앙갚음이다. 살고 싶다고 외친 이들의 성대마저 제거하려는 2차 시술. 넘어진 이를 짓밟고, 손 내민 이의 손모가지마저 부러뜨리는 치졸한 앙갚음. 돈 앞에 장사 없다는 천민자본국가의 오만. 돈으로 사람을 말려 죽일 수 있다는 건 지금 사실이다. 틀려야 하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