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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양경모의 <안녕, 용문객잔> 극장의 공기
양경모(영화감독) 2017-06-28

극장의 공기

감독 차이밍량 / 출연 이강생, 양귀매 / 제작연도 2003년

영화보다 영화관이 더 좋았던 유년 시절, 집 근처에 극장 하나가 문을 열었다. 두개의 영화관이 함께 있었고 주변에 놀이공원, 스케이트장, 볼링장, 음식점도 있었다. 옛날식 단관 극장이 대세였던 당시로서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극장이 문을 열자 사람들은 매표소 앞에 길게 줄을 섰고 ‘매진’이라는 붉은 글씨는 인기와 위세를 과시했다.

그로부터 20년 뒤. 어느새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대세다. 유년 시절에 인기를 끈 최신식 극장 역시 노후한 시설 때문에 폐관을 준비했다. 그곳이 문을 닫기 직전, 나는 한동안 가지 않았던 추억의 영화관을 찾았다. 예전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었고 극장엔 사람이 없어 직원을 찾아 영업 여부를 물어야 했다. 표를 끊고 극장에 들어가자 예전 그대로인 상영관이 보였다. 손잡이가 달린 푹신한 미닫이문, 의자 등받이에 씌워진 하얀 시트, 목을 잔뜩 추어올려서 봐야만 하는 커다란 스크린. 텅 빈 극장의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공기가 내 몸에 와닿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을 봤다. 영화가 변하고 있다는 것, 세상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나는 이 영화를 꺼내본다. 단관 영화관이 사라지고, 멀티플렉스가 생기고, 영화 매체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가고, 작품의 플랫폼이 IPTV로 옮겨가는 지금까지 ‘영화’와 ‘영화 보기’는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길고 지난한 시간에 비해서 개봉과 소비 과정은 엄청나게 짧아졌다. 빠른 예매와 짧은 기다림, 리모컨으로 쉽게 선택하는 IPTV 속 영화, 거기서 재생산되는 짧은 클립과 패러디 영상들. 비단 영화만 그럴까. 우리 삶도 비슷하다. 인생에서 긴 시간을 들여 응시하는 습관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안녕, 용문객잔>은 복화극장이라는 영화관의 폐관 전 마지막 두 시간을 느릿느릿 쫓아간다. 그곳에서 상영하는 작품은 호금전의 무협영화 <용문객잔>(1967). 옛날 영화의 마지막 상영관에는 별것 아닌 듯 특별한 풍경이 자리한다. 땅콩을 까먹는 신경질적인 소리, 파트너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게이, 그리고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러온 노배우의 쓸쓸함과 영사실로 향하는 여인의 느릿느릿한 발걸음. 어울리지 않는 풍경들은 낡은 극장에서 절묘하게 합쳐진다. 그리고 그 향기는 관객을 깊은 상념으로 인도한다.

내가 폐관 직전 찾은 그날의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극장의 공기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안녕, 용문객잔>은 그런 순간을 절묘하게 담아낸다. 사람과 공간이 얽혀 있는 틈에서 살며시 돌출된 감흥이 내 몸에 와닿는 순간. 그 절묘한 온도를 표현해내는 것이야말로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매력이 아닐까?

영화를 만드는 방식과 상영 플랫폼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지금, ‘내 인생의 영화’라는 화두 앞에서 나는 <안녕, 용문객잔>을 떠올렸다. 이 영화를 ‘인생 최고의 영화’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좋은 질문과 상념을 던져 준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잊혀져가는 것들 틈에서 차분히 사물과 공간을 응시하는 과정은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을 새롭게 향유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 <안녕, 용문객잔>은 매우 특별한 작품으로 나의 책장 한편에 계속 자리잡을 것 같다.

양경모 영화감독. 단편 <일출>(2015)로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으며, 작업대출을 소재로 한 하이스트 무비 <원라인>(2017)으로 장편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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