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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유감
2002-04-10

심재명/ 명필름 대표 shim@myungfilm.com

얼마 전 <복수는 나의 것> 기자시사회에 갔었다.

톱스타들도 떼로 오고, 온갖 매체의 카메라들이 동원되고, 여기저기 아는 이들이 보이는, 그러니까 충무로에서 기대해온 영화의 첫 공개시사회의 분위기였다.

여기저기 눈인사가 오가고, 무대 인사가 있고, 불이 꺼지고 두 시간이 좀 지났다. 불이 켜졌다. 나는 빨리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토할 것 같아서였다. 영화를 보고 토하고 싶은 심정이 드는 건, 84년쯤 외국어대 대강당에서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코>를 본 뒤 두번째이다. 토하고 싶다고 했다고 <복수는 나의 것> 관계자 여러분, 혹시 오해하지 마시라. 혐오나 경멸의 뜻은 절대 아니다. 어쨌든, 토기를 느꼈으나 아는 사람들 눈빛과 마주치면서 이빨을 악물어야 했다. 스타들의 옆모습도 훔쳐봐야 하고, 지인들도 챙겨야 했고, 수인사도 나눠야 했으니…. 결국 그걸로 감정의 배설도 제대로 못하고 <복수는 나의 것>을 본 셈이 되었다.

<집으로…> 일반시사회에 갔다. 기자시사회 때 가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다 개봉일까지 버티기 힘들어 결국 또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말았다. <집으로…>를 몹시 보고 싶어 하시는 엄마와, 동반 외출을 권할 겸 아버지까지 모시고 갔다.

극장으로 들어가 앉으니 여기에서도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 얼굴이 보인다. 내 앞자리는 아는 스탭들이, 저 뒷자리엔 아는 영화사 분들이. 앞자리 스탭분들에게 부모님을 소개시키고 아는 사람의 오프닝멘트를 듣자니 영화가 시작되었다. 얼마 뒤 옆자리 엄마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를 힐끔거리며 보다가, 앞자리 아는 처녀 스탭이 연신 티슈를 눈가로 가져가는 걸 훔쳐보다가 종종 영화를 놓치곤 했다. 몇달 전 시나리오를 보면서 찔끔거렸던 기억이 있는데, 내 눈가는 점점 민숭민숭해져갔다. 엄마 옆에 앉은 아버지는 아까 극장 입구에서 선물로 준 색깔 사탕을 쩝쩝거리며 드신다.

갑자기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꼬마와 할머니의 티격태격, 알콩달콩 이야기보다 아버지의 쩝쩝거리는 소리, 엄마의 훌쩍거리는 소리에 더 가슴이 아파졌다. 갑자기 더 늙어버린 내 부모의 옆모습이. 어느덧 영화가 끝났다. 아이고, 어쩜 그리 내 얘기 같냐? 내 엄마는 영화 속 꼬마처럼 안방 벽에다 ‘할머니 봐보!’라고 낙서를 휘갈기는 만 5돌 지난 외손녀를 거두는 본인의 처지와 완벽하게 100% 감정이입, 또는 동화된 것 같다. 에잇! 나는 며칠 사이로 기대작 두편을 이렇게 날려버리다니 하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시사회장은 절대 찾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아도, 참고 참았다가 돈 내고, 외롭지만 혼자 마지막 회를 찾아보리라. 그래야 온전히 두 시간 남짓 동안 그 영화는 내 것이 되고, 자막이 올라가고 불이 켜질 때 순도 100%의 내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 충무로 관계자 여러분들, 첫 공개시사회 때 시사회장 가지 마세요. 직접 초대받지 않았으면 가지 마세요. 괜히 좌석 넘쳐서, 시사회 진행자 고생시키지 말고, 참아주세요. 어수선하지 않고, 차분한 기대로만 은근히 뜨거운 시사회장 분위기 조성을 위해. 그리고, 영화인이지만, 또한 관객의 즐거움을 관객의 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런데 나처럼 아는 이들 쳐다보고, 훔쳐보고,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수선하게 정신 사나운 사람은 없다고요? 그렇다면, 할말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