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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AN의 영화인들①]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 “영화만 찍다가 죽고 싶다”
김현수 사진 백종헌 2017-07-24

BIFAN 특별전 ‘판타스틱영화의 거장’에 초청된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

광기와 욕망, 호러와 블랙코미디, 멜로와 스릴러가 뒤섞여 기괴한 장르적 에너지를 뿜어내는 영화를 만들어온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이 BIFAN 특별전 참석차, 부천을 방문했다. 비디오 대여점 시절부터 소수의 컬트팬들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았던 <액션 무탕트>(1993), <야수의 날>(1995) 등의 장르영화를 꾸준히 만들던 그는 2010년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일관되게 지독한 작품 세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특정 장르를 넘어 영화 매체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쏟아낸 그와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초기 단편인 <칵테일 살인마>(1991)와 이를 모티브 삼아 만든 대표작 <야수의 날>, 2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야수의 후예>(2016)가 함께 묶여 상영한다. 감독 본인에게도 <야수의 날>이 갖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야수의 날>은 많은 기쁨과 성공을 가져다준 영화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유머가 나의 작품관을 규정해준 측면도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야수의 날>에만 얽매여 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른 좋은 영화도 많이 만들었으니까. (웃음)

-기괴한 SF 액션을 표방하는 데뷔작 <액션 무탕트>와 적그리스도의 출몰을 다룬 두 번째 연출작 <야수의 날> 사이의 소재 변화가 크다.

=판타지물을 워낙 좋아하고 악마에 흥미가 많았다. 스페인의 데우스토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도서관에서 악마론에 관한 책을 많이 접했다. 신학 수업도 즐겨 들었는데 당시 교수님이 <야수의 날> 주인공 신부의 캐릭터에 영향을 끼쳤다.

-호러와 오컬트, 블랙코미디 등 장르영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내가 처음으로 본 영화가 <킹콩>(1933)이었고, 두 번째로 본 영화가 <고지라>(1954)였다. 언젠가 꼭 몬스터영화를 만들고 싶을 정도로 이 영화들을 좋아한다. 처음 사 본 잡지는 호러영화 잡지였다. 그 잡지에서 기괴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토드 브라우닝 감독의 <프릭스>(1932) 스틸컷을 보고 충격에 사로잡혔던 기억도 있다. 그때부터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 가지 장르 속성에 정통한 영화보다는 매번 변주하면서 규정짓기 어려운 영화를 만든다.

=영화마다 장르적 의도를 갖고 출발하지 않는다. 먼저 스토리텔링을 고민하고 그에 맞는 의도로 영화를 찍으려 한다. 요즘 관객은 성숙하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아도 충분히 받아들일 줄 안다.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선배들의 영향도 받은 것 같다.

-<야수의 날>과 최근작 <더 바>(2016)의 마지막 장면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온갖 사건 사고를 겪은 사람들이 다시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에서 <야수의 날>은 구원의 역설적 풍자를, <더 바>는 쓸쓸한 시스템의 비관을 보여주는 것 같다.

=듣고 보니 하비에르 바르뎀 주연의 <프레디타>(1997)의 결말도 비슷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정체되어 있는 걸 좋아한다. 성장의 여지는 둘째 치고 그가 온갖 역경 속에서도 세계관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를 좋아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지 않는 상태를 결말에 담으려고 했다.

-음료수 미린다 때문에 사건이 벌어지는 <칵테일 살인마>와 영국산 음료수 슈웹스 간판에서 액션이 벌어지는 <야수의 날>을 이어서 보니, 음료수에 대한 흥미로운 디테일이 보이더라. 재미있는 농담인가.

=내 개인 취향이다. (웃음) 스페인에서는 햄치즈 샌드위치와 미린다 음료수를 마시는 행위는 행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제는 미린다를 구하기도 어려워 이집트 같은 나라에서만 인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피라미드처럼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런 디테일 자체가 내 작가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중요한 요소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은근슬쩍 집어넣거나 혹은 정말 사소해서 하찮아 보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즐긴다.

-스페인 장르영화가 한국에도 지속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최근 주목하는 후배 감독들이 있다면.

=나초 비가론도 감독의 <콜로설>(2016)은 내가 좋아하는 몬스터가 등장하는 영화라 추천하고 싶다. 내가 어릴 때부터 함께 작업해온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의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이 오랜만에 내놓은 최면술사 이야기 <아브라카다브라>나 에두아르도 카사노바 감독의 <스킨스>가 한국에도 소개되면 좋겠다. 특히 <스킨스>는 정말 미친 영화다. (웃음) <프릭스>처럼 제대로 된 외모의 등장인물이 한명도 없다. 그것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길 영화다.

-<800블렛>(2002)의 대사 “인생을 살다가 뭔가 잘 안 풀리더라도 그 상황을 그냥 즐겨라”처럼 지향하는 삶의 태도가 있다면.

=<800블렛>은 평생 영화만 바라보며 살던 영화인들에 관한 찬사다. 모든 영화인들이 영화 안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 같다. 나는 24시간 영화만 생각한다. 지금도 주변 모든 것이 시퀀스와 캐릭터로 보인다. 나 역시 영화만 찍다가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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