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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 포클레인을 몰고 동료와 지휘관들을 찾아 나선다

2000년경, 포클레인 기사 강일(엄태웅)은 땅을 파던 중 유골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다. 그는 20년 전 공수부대원으로 광주에 투입되었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다. 이 사건은 그로 하여금 포클레인을 몰고 동료와 지휘관들을 찾아 나서게 만든다. <포크레인>은 김기덕 감독이 연전에 시나리오를 써두고 영화화할 시점을 가늠했던 작품이다. 중고 포클레인을 먼저 구입해둘 정도로 작품에 애착을 쏟던 김기덕은 제작으로 물러서며 <붉은 가족>(2013)의 이주형 감독에게 메가폰을 넘겼다. 전작 <붉은 가족>에서 웃음의 날로 분단의 현실을 예리하게 파헤친 이주형은 <포크레인>을 질문의 영화로 완성했다. 전체 구조에서 김기덕의 <일대일>(2014)을 따른 가운데, <포크레인>은 환상성과 현실의 결합을 시도한다. 자칫 영화가 비현실적으로 빠질 우려가 있지만 <포크레인>이 거둔 성과는 반대다. 환상성은 ‘어떻게 포크레인이 공간을 넘나들고 주인공이 모든 인물과 접촉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한 장치일 뿐, 영화는 한시도 수십년 전 한국의 현실과 거리를 두지 않는다. 당연히 주제에 접근하다 돌아가는 법도 없다. 두 포클레인의 대결이 유일한 은유적 표현 같지만, 그것조차 큰 것에 의해 작은 것의 모가지가 잘려나가는 현실 자체에 다름 아니다. <포크레인>은 (몇번의 플래시백 외에) 한번도 광주의 현장에 들어가지 않은 채 폭력과 광기와 죽음의 주제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포클레인이 파내려간 기억의 끝에서 영화는 어떤 숭고함까지 구한다. 이건 어쩌면, 그날 죽었던 남자가 떠난 죽음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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