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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형의 <라라랜드> 일요일에 만나요

감독 데이미언 셔젤 / 출연 라이언 고슬링, 에마 스톤 / 제작연도 2016년

모든 것의 시작은 <캐롤>(2015)이었다. 개봉한 평일 이른 시간부터 매진 행렬을 이어가더니 관객으로부터 ‘캐롤마당’이란 별칭까지 얻었고, 몇주가 지나도 그 열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적은 수의 좌석을 가진 극장 중 하나일 이곳(KT&G 상상마당)에서 일하며 줄곧 해온 생각이 있다. 영화 한편의 개봉을 결정한 순간, 가능한 한 그 영화가 가장 오래 상영된 극장으로 남고 싶다는 다짐이었다. 그것이 극장이 영화와 관객에게 보낼 수 있는 최선의 예의이자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여전히 뜨겁기만 한 <캐롤>의 마지막은 언제가 되어야 하지?’란 생각이 들었을 때 달력을 넘겨 크리스마스를 확인했다. 2016년의 크리스마스는 일요일이었고, 그 해의 남은 일요일 저녁마다 이 극장에선 매일 <캐롤>이 상영되었다.

사실 일요일 저녁은 그런 시간이었다. 지나가는 주말이 아쉽기만 한, 그래서 약속을 잡기도, 일부러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기도 어려운 시간 말이다. 매주 극장의 상영시간표를 짤 때마다 일요일 저녁은 뭔가 숨겨진 비밀 트랙처럼 여겨졌다. 상대적으로 관객이 많이 찾는 시간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특별하게 오래도록 소개하고 싶었던 작품들을 편성하곤 했었다. 하모니 코린의 <스프링 브레이커스>(2012)나, 미아 한센 러브의 <에덴>(2014) 같은 (어쩐지 일요일 저녁의 쓸쓸함을 닮기도 한) 작품들이 오래도록 이곳의 일요일 저녁을 지켰던 멤버들이다.

과연 <캐롤> 같은 영화가 또 찾아올까? 1년여의 긴 시간 동안 매주, 특정한 시간에 관객이 일부러 극장을 찾아줄 그런 영화가 또 있을까? 그때 <라라랜드>가 왔다. 이미 좋은 울림통을 가진 극장이었지만, 때마침 사운드 장비와 스크린 교체 공사까지 하게 되어 전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와 화면을 뽐낼 수 있었다. 관객은 <라라랜드>를 관람하기에 최적화된 극장이라며 홍보를 자처해주었고, 어느새 이곳은 ‘라라마당’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캐롤>의 마지막이 크리스마스였다면, 사계절이 담긴 <라라랜드>는 꼬박 1년을 상영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 그리고 다시 겨울이 왔을 때, 계절마다 보게 될 <라라랜드>의 감상은 무척 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12월 7일은 <라라랜드>의 개봉일이자 종영일이 되었다.

개봉한 지 8개월이 되어가는 지금도 관객으로 가득 찬 극장에 앉아 <라라랜드> 보는 걸 좋아하지만(싱얼롱 타임을 시도했던 날, 관객과 함께 엔딩크레딧의 허밍을 수줍게 떼창(?)하던 순간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다), 때론 <라라랜드>가 상영되고 있는 극장 밖에 가만히 앉아 새어나오는 소리만 듣고 있을 때도 있다. 모두가 <라라랜드>로 입장한 일요일 저녁의 텅 빈 극장 로비에 앉아 있으면 문턱을 넘은 소리들이 조용하게 떠돈다. 다른 세계와 시간에서 도달해온 소리처럼 들린다. 군무가 시작됐군, 경적을 울렸군, 오디션을 보는군, 노래가 시작되겠군… 그렇게 가만히 앉아 흘러가는 영화의 시간들을, 또 나의 시간들을 짐작해보곤 한다. 일요일 저녁은 그런 시간이기도 하니까. 세바스찬과 미아는 이제 막 여름을 통과하고 있다.

김신형 KT&G 상상마당 영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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