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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나문희, "옥분은 입체적이고, 아주 재밌고 훌륭한 사람"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17-09-12

나옥분은 동네의 파수꾼 역할을 자처하는 할머니다. 구청 민원 접수 외에 옥분이 열심인 일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영어 공부다. 옥분이 영어에 매달리는 이유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옥분을 연기한 나문희는 <아이 캔 스피크>가 “할머니가 될수록 할 일이 있어야 하고, 할머니가 돼서도 할 수 있는 것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주는 해방감과 ‘할 수 있다’는 다짐이 준 안도감을 느끼며 촬영에 임했다는 나문희는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고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나는 연기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아이 캔 스피크>는 한명의 관객으로서 굉장히 반갑고 고마운 영화였다.

=그 말이 너무 고맙다. (웃음)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악몽이란 표현도 약한 것 같다. 악몽보다 더한 기억이 항상 짓누르고 있을 텐데. 연기자로서 그 아픔을 사실에 가깝게 표현해줄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촬영이 끝나고도 굉장히 우울했다. 이렇게 작품만 해도 우울한데 그것을 현실로 겪은 할머니들은 어떨까. 할머니들이 살아 계실 때 일본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보상을 받아야 한다.

-오롯이 배우 나문희를 위한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땐 어땠나.

=‘아이 캔 스피크’라는 게 나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거잖나. 나는 평소에 순발력도 약하고 공부도 많이 하질 못했다. 그래서인지 말을 잘 못하는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에서 해방감이 느껴지고 너무 시원하니 좋더라. 정말 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촬영 전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기도 했나.

=할머니들을 만나진 않았다. 예전에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1996)을 할 때 내 나이에 맞는 인물을 연기하니까 그렇게 편하더라. 난 항상 설정배우였다. 서른살 때도 할머니 역을 하는 설정배우였기 때문에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게 그렇게 편한지 몰랐다. 이번에도 비슷한 경험이었다. 아주 내 나이에 맞는 역할이었고 내가 하고 싶었던 영어 공부도 하고, 모든 게 나하고 딱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할머니들을 만나진 않았다.

-나옥분은 입체적인 캐릭터다. 공무원들한테는 귀찮도록 민원을 넣는 존재지만 넓게 보면 의협심이 넘치는 인물이고, 민재(이제훈)에게 영어를 배울 때는 또 학구열 넘치는 소녀 같다.

=어떻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사람이 좋으려면 솔직하고 고지식한 면이 있어야 한다. 나쁜 걸 보면 나쁘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니까. 이 할머니는 사회가 좀더 바르게 되길 바란다. 그래서 온갖 것에 자신의 힘을 쏟는다. 그러다 자신이 좀더 큰일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과거를 알리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데 열성을 쏟는다. 아주 재밌고 훌륭한 할머니다.

-영어 대사들을 소화해야 했는데, 영어는 독학으로 하셨다고.

=우리 영감이 영어 선생이다. (웃음)

-부군께서 연기 선생님이 되어주셨나.

=스승의 날이면 아직도 영감한테 선물을 한다. 나의 남편이자 스승이고 고약한 사람이기도 하고. (웃음) 이 작품에서도 역시 남편이 영어 대사를 녹음해줘서 그걸 듣고 연습했다. 그리고 내가 1961년에 방송국 공채 성우로 입사했는데 그때 외화 더빙을 많이 해서인지 영어 듣기가 자연히 됐던 것 같다. 그래서 영어 발음이 이상하진 않다. (웃음)

-연설 장면을 찍기 위해 미국에도 다녀왔다. 해외 로케이션은 처음이라 들었다.

=마침 둘째딸이 미국에 살아서 촬영 전 딸네 집에 머물면서 영어 공부를 했다. 외출도 딱 하루만 하고 집에서 혼자 영어 대사만 외웠다. 그런데 막상 연단에 오르니 깜깜하더라. 그래도 오래 산 경험을 살려서 ‘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했더니 또 되더라. 이 역할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다. 관객도 배우가 뭔가 노력해서 해낸 걸 봐야지 한장의 푯값이 아깝지 않을 테니까 노력을 많이 했다.

-70대까지 지치지 않고 연기를 하고 있고 오랜 시간 배우로서 사랑받고 있다. 비결이 있다면.

=뭔 비결이 있겠나. 라디오에서 고전음악 들으면 힐링이 되고, 영감이 못되게 굴면 정신이 바짝 들고, 이 자리에 있는 게 제일 신이 나고 그런 거지. 행복한 순간이 많다. 그래서 뭘 하더라도 마음이 미워지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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