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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김기덕 감독 추모, 감독들의 감독들
주성철 2017-09-15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감독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로버트 알드리치다. 하지만 이건 불가능한 꿈이고 샘 페킨파 정도라면, 잘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난 2007년 구로사와 기요시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 학교’라는 이름의 강연을 가졌다. 자신에게 영감을 준 감독을 이야기하며 의외로 로버트 알드리치를 가장 선두에 두면서 그보다 익숙한 이름인 샘 페킨파를 뒤에 뒀다. 또한 자신의 영화 <큐어>(1997)에 대해 “조너선 드미의 <양들의 침묵>(1991)을 보고 난 뒤 1시간 만에 써내려간 작품”이라고도 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올해 초 다시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 봉준호 감독과 대담을 가진 그는 <큐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인 리처드 플라이셔의 <보스턴 교살자>(1968)에 대해 긴 시간 얘기했다.

여기서 어떤 영화로부터의 영감이 진짜냐, 라는 걸 따져 물으려는 게 아니라 한편의 영화는 결국 한 감독의 ‘오마주의 몽타주’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이번호 특집은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감독들이 선배 감독들로부터 받은 영감을 고백하는 ‘감독들의 감독들’이다. 리처드 플라이셔, 루이스 마일스톤, 로버트 와이즈, 돈 시겔, 월터 힐, 존 휴스 같은 감독들로, 당대의 어떤 감독들이 그들로부터 받은 영향을 이야기하는지 꼼꼼히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따로 정리한 기사에 등장하는 막스 오퓔스, 오토 프레민저, 자크 드미, 앨프리드 히치콕, 존 포드, 구로사와 아키라,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잉마르 베리만, 존 카사베츠처럼 이른바 판테온에 오른 클래식 대가들의 명단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꼭 한번쯤 언급하고 다뤄보고 싶은 감독들이었다.

한국영화계를 돌아보자면 과거 한국영화 황금기의 대가들인 정창화, 신상옥, 김기영, 이만희, 유현목 감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후세에 영향을 끼친 이들로 이형표, 이성구, 최하원 감독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얼마 전 향년 83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기덕 감독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청춘영화의 대표작 <맨발의 청춘>(1964)을 비롯해 당시로선 특수효과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었던 <대괴수 용가리>(1967), 그리고 이만희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이나 신상옥의 <빨간 마후라>(1964)보다 앞서 만들어져 한국 전쟁영화의 전범이라 부를 만한 <오인의 해병>(1961)을 만들었다. 특히 B무비 혹은 장르영화의 전통이 빈약했던 당대에 <오인의 해병>이 얼마나 큰 대중적 쾌감을 줬냐면, 심지어 영화제목을 딴 날치기단까지 등장했다. 당시 모 신문 사회면에 따르면, 날치기와 들치기 소탕작전에 나선 치안당국이 한달 동안 전국에서 215개 조직과 8800여명을 검거했는데 ‘오인의 해병’이라는 솜씨 좋은 날치기단도 있었던 것. 당시 김기덕 감독은 <오인의 해병>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1961년 데뷔해서 1977년 은퇴하기까지 총 66편의 작품을 연출한 김기덕 감독은 다소 과소평가된 한국 장르영화의 탁월한 장인이었고,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그 공로를 인정하여 핸드프린팅 행사를 갖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오인의 해병> DVD 음성해설을 위해 그를 만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뭐랄까, 지금껏 만나본 ‘원로 영화인’ 중 요즘 말로 가장 ‘샤이’했다. 미진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아쉬움을 토로했고, 작은 역할의 배우라도 이름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인간적 ‘정’ (情) 때문인지, <오인의 해병>은 중심인물 모두에게 비슷한 비중의 플래시백을 시도한 거의 유례없는 영화였다. 그렇게 더 존경받고 평가 받아야 할 영화인이 세상을 떴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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