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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해고의 회고
노순택(사진작가) 2017-09-20

자식을 키우는 심정은 누구나 같겠지만, 누구나 같을 수는 없다. 아이들은 그저 ‘통칭’할 수 있는 동일성의 무리가 아니라, 이루 간파하기 어려운 개별자들이다.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형제자매조차도 다르다. 너무 다르다. 4남매로 클 때는 몰랐는데, 아이들을 18년째 키우면서 그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부모를 바라보는 심정은 누구나 같겠지만, 누구나 같을 수는 없다. 부모 또한 그 집단성만으로 호명될 수 없다. 개별자인 자식이 개별자인 부모를 바라보는 마음의 조합은 삼라만상만큼이나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수십년째 ‘자식노릇’하며, 곁의 친구들을 지켜보며 절감하고 있다.

사람이므로 심성이라는 게 있을 것이다. 심성은 부모자식 관계에 형식미를 부여한다. 인내가 있다. 어쩌면 이 관계는 인내로 시작해 인내로 끝나는지 모른다. 허나 심성의 발현도 끈질긴 인내도 물적 토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처한 환경은 이 관계의 낭만을 현실로 끌어 올린다/내린다.

몇년 전이었을까. 해고노동자들이 한뎃잠 자며 복직농성을 벌이던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독립영화감독 한영희와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우리집 큰아이의 나이를 물었고, 내게 상의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해고자의 자녀에 관한 영화를 계획하고 있었다. 경우는 다르겠지만, ‘이런 현장’에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에 대해, ‘이런 현장 속의 아빠’를 보는 아이들의 시선에 대해 우린 깊지 않은 생각을 나눴다. 그 뒤로도 여러 번 마주치며 나는 그의 영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지 궁금했다.

시사회 초대장을 준 이는 한영희가 아니라, 뜻밖에도 해고자 김정욱이었다. 새벽 4시, 큰아이와 함께 오라는 당부와 함께 그는 나를 영화로 초대했다. 문득 김정욱이 굴뚝농성을 감행했던 2014년 겨울, 친구들과 <굴뚝신문>을 만들며 1면에 넣을 두 고공농성자 자녀의 그림을 놓고 새벽까지 갑론을박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영희의 영화 <안녕 히어로>는 김정욱이 아니라, 또 다른 해고자 김정운과 아들 현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 같은 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현실을 영화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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