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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감독이 말하는 <아이 캔 스피크> 제작기
김현석(영화감독) 2017-09-25

내가 애정하는…

<쎄시봉>(2015) 이후 한동안 중국영화를 준비하던 김현석 감독은 <아이 캔 스피크>의 공동 제작사인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로부터 시나리오를 전달받는다. 거절할 이유나 댈 셈으로 시나리오를 읽어내려갔다는 감독은 결국 올해 1월 <아이 캔 스피크>에 합류해 옥분(나문희)과 민재(이제훈)를 만난다. <아이 캔 스피크>는 구청의 민원왕 나옥분 할머니가 가슴 깊이 묻어뒀던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과정을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찡하게 그려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상업영화로서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는 데도 성공한다. 프리 프로덕션 과정부터 첫 기술시사를 마친 날까지, 8개월 동안 <아이 캔 스피크>와 더불어 살았던 김현석 감독이 영화만큼이나 담백한 필치로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과 현장의 대소사를 깨알같이 전해왔다. 지난주 인터뷰(1123호 씨네인터뷰 “배우들을 믿고, 그 장면의 진실함을 믿고 갔다”)를 가졌던 김현석 감독이 직접 작성한 <아이 캔 스피크> 제작기를 사진과 함께 싣는다.

프리 프로덕션·캐스팅 (1∼3월)

2017년 1월_ 명필름(공동 제작사)에 속았다. 미리 알았더라면 이 작품을 거절했을 이유가 몇개 있더라. 명필름 원망해서 뭐하나. 전후 사정 살피지 않은 내 탓이지. 좋게 생각하자. 편견 없이 시나리오만 보고 결정한 셈이니.

3월 21일_ 두달여 만에 시나리오를 세번 고쳤다. 옥분(나문희)과 시장 사람들에 비해 생기가 부족했던 민재(이제훈)와 구청 직원들 라인이 이제 자리잡힌 것 같다.

3월 22일_ 수요집회에 갔다. 25년 동안 1200회 넘게 열린 집회에 나는 처음 가본다. 부끄럽고, 죄송하다.

3월 27일_ 전체 리딩 겸 고사. 흡족하다. 특히 여배우들이 훌륭하다. 드라마 <도깨비>(2016)의 염혜란, <더 킹>(2016)의 김소진, <연애담>(2016)의 이상희,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2015)의 정연주, <우리들>(2015)의 최수인까지 근래 주목받는 여배우들을 ‘싹쓸이’했다. ‘어벤져스’ 캐스팅 운운하며 규모를 자랑하는 다른 영화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

국내 촬영(4∼6월)

4월 6~7일(3,4회차)_ 영화 전체에 배치돼 있는 민재 집 장면들만 몰아서 찍다보니 배우들이 감정 연결에 애먹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크랭크인 전에 연기 ‘로직’을 설계해놓고 촬영에 임한다고 제훈씨가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땐 말장난인 줄만 알았던 ‘로직’이 이렇듯 몰아찍기할 때 빛을 발하는구나.

4월 18일(10회차)_ 옥분의 주 공간 봉원시장. 옥분과 혜정(이상희)이 티격태격하는 장면. 상희씨가 나문희 선생님의 내공에 밀려 고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 예상이 빗나갔다. 분장차에서 선생님이 친히 상희씨를 단련(?)시킨 결과였다. 선생님은 유난히 상희씨를 챙겼다. 촬영 없는 날 선생님과 곰탕 먹고 산책까지 했다고 자랑질하는 상희씨를 노려보던 ‘진주댁’ (염)혜란씨의 살기어린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혜란씨는 세 작품째 함께하는 나문희 선생님과 따로 차 한잔 마셔본 적 없단다. ^^).

4월 30일(18회차)_ 3주에 걸친 부산 로케이션 촬영 마지막날. 우리끼리는 ‘노팅힐’ 신이라고 불렀던, 20년 동안 8천여건의 민원을 넣는 옥분 몽타주 신. 20년의 세월이 변하는 미술 세팅, 옥분의 의상과 분장 변화, 계절 변화를 위한 각종 특수효과, 트랜지션(장면전환) 느낌나게 하는 카메라워킹 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신을… 하루에 찍어야 했다. 몇달 후, 후반작업하면서 깨닫게 된다. 제대로 할 거 아니면 아니 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5월 4일(20회차)_ 금주 역의 김소진씨는 콜타임이 오후인데도 아침부터 와서 대선배들(나문희, 손숙)의 연기를 묵묵히 지켜본다. 금주가 옥분을 설득하는 장면, 나문희 선생님은 소진씨 연기에 ‘설득’되지 않았는지 예리한 조언을 건네신다. 이때 끼어드는 분장실장. “선생님, 소진씨 어제 백상예술대상 여우조연상 받았어요.” 나문희 샘, (머쓱해지며) “진작 얘기해주지. 연기 잘하는 친구한테 내가 괜한 오지랖을…!”

5월 9일(23회차)_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이 결정된 날. 공교롭게 두달 전 이 장소(이태원 바) 헌팅을 왔을 때 ‘그분’이 탄핵으로 물러났다. 그분 임기 동안 난 두편의 영화를 말아먹었다. 부디 새 대통령 취임하고 개봉하는 이 영화는 좋은 결과 있기를…. #청자켓옥분#귀여워

5월 14일(27회차)_ 구청은 로케이션 섭외 때문에 주말에만 촬영하는데, 배우들의 호흡이 워낙 좋아서 띄엄띄엄 찍는 공백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구청 3인방(박철민, 이지훈, 정연주)은 가만있어도 맹한 구석이 있는데, 한복까지 입혀놨더니 더 한심해 보인다. 내가 애정하는 캐릭터들.

5월 20~24일(30~34회차)_ 옥분 수선집/방을 양수리 스튜디오에서 찍다. 전작이 <마스터>(2016)였던 유억 촬영감독은 움직임 없는 대화 신들만 넘치는 세트 분량에 부담을 느꼈다. 사이드 투숏/OS/리버스 OS로 일관하는 콘티가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사이드 투숏 하나로 신을 끝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편집 때 유혹에 빠지지 않게 아예 OS(오버 더 숄더)숏을 찍지 말아버릴까 했을 정도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연기 잘하는 두 사람의 충돌과 케미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스튜디오 한켠에 만들어놓은 위안소 내부 세트에서 옥분의 회상 장면을 찍다. 거의 두달 전에 위안소 외부 장면을 찍었는데, ‘어린 옥분’ 최수인(2004년생)이 그사이에 조금 자란 듯하다. 연결이 튀는데 어떡하나 걱정하는 나에게 이하영 PD는 자기가 보기엔 절대 안 자랐다고 주장한다. 외부 장면 다시 찍자고 안 할 테니 솔직하게 얘기해보라고 했더니 즉답을 피한다.

6월 3일(41회차)_ 국내 촬영 마지막날. 미국 촬영에 가지 않은 2/3의 스탭들에겐 쫑촬영. 일찌감치 세팅해놓고 기념사진을 찍는 등 쫑 분위기 속에서 방심했다가 큰코 다쳤다. 무덤의 (소품) 잡초가 어설프게 심어져 있어 리허설 때 나문희 선생님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연기 리듬을 잃어버리신 것. 다행히 해 떨어지기 직전에 감을 찾으셔서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주셨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쫑이라고방심말자! #나문희샘존경합니다

미국 버지니아, 워싱턴 로케이션 촬영(6월 16∼27일)

미국 분량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지만, 촬영할 때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제작기를 쓰기 위해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는 이 순간마저 고통이다. 이 사진 한장이 모든 걸 얘기한다.

촬영감독과 촬영 퍼스트가 서로 등지고 찍는 기묘한 광경. 심지어 각각의 앵글에 담긴 두 장면은 다른 신이다.ㅜㅜ 함량 미달의 현지 프로덕션만 믿고 있을 수 없어서 미국 스탭들 없는 셈 치고 찍었다. 악으로 깡으로.

그 와중에 나문희, 이제훈, 김소진 세 배우의 눈부신 연기는 힘든 프로덕션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제훈씨가 단상 위의 나문희 선생님을 향해 ‘How are you?’ 대사를 쳐줄 때는 소름이 돋았다. 프로덕션은 엉망이었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촬영을 지원해준 버지니아 영상위원회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지 않다. 미국 현지 배우들은 아주 만족스러웠는데, 특히 미첼 할머니 역의 마티 테리는 나문희 샘이 긴장(?)할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포스트 프로덕션(7∼9월)

촬영 때 고생해서일까. 후반작업은 작업기간 빠듯한 것 말고는 꿀 같은 시간이었다. 처음 작업해보는 이동준 음악감독, 명불허전이구나!

기술시사(9월 4일)

1월 2일 첫 출근을 했으니 8개월 만에 완성본을 ‘납품’했다. 날림으로 만든 거 아니냐고? 극장에서 확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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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리틀빅픽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