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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⑤] <렛 더 선샤인 인> <인설트> <포큐파인 호수>
임수연 2017-10-09

<렛 더 선샤인 인> Let the Sunshine In

클레르 드니 / 프랑스 / 2017년 / 94분 / 월드 시네마

섹슈얼리티와 욕망의 문제를 관능적으로 다뤄왔던 클레르 드니가 뜻밖의 장르로 부산을 찾았다. 자그마치 로맨틱 코미디다. 파리의 아티스트 이자벨(줄리엣 비노쉬)은 남편과 이혼한 후 진정한 사랑의 실체를, 특별한 사람과의 남다른 관계를 갈구한다. 은행가부터 직업배우, 마지막에 등장하는 점쟁이까지 다양한 군상의 남자를 만나지만 그들과의 인연은 처음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끝맺음된다. “당신도 매력적이지만 내 부인이 더 매력적”이라는 말로 산통을 깨거나, 성적 만족감은 있었지만 자기 말밖에 하지 않는 이기적인 면모에 실망하거나, 의외의 인물과의 만남이 특별한 의미를 주기도 한다.

<렛 더 선샤인 인>을 이끄는 것은 주로 남녀의 끊임없는 대화 장면이다. 클레르 드니와 로맨틱 코미디의 조합도 생소하지만 대화의 형태에 영화의 성패를 건다는 점 역시 클레르 드니의 새로운 면모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크리스틴 안고트가 함께 쓴 시나리오는 프랑스의 구조주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각색한 결과물이다. 클레르 드니는 “원작이 그렸던 극심한 고통의 컨셉을 기본적으로 따라간다”고 설명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원작과는 다소 차별화된다. 씁쓸하거나 황당한 코미디가 주를 이루는 영화는 이혼 후 자유로운 몸이 된 50대 여성 아티스트의 특수한 욕망을 구체화하는 데 보다 집중했다. 한편 제라르 드파르디외 등 여러 남자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원톱극을 이끌어간 줄리엣 비노쉬는 뛰어난 균형감을 보여준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주저하거나 혼란에 빠지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등 감정 변화의 진폭은 크지만 성급하거나 넘치지 않는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개막작.

<인설트> The Insult

지아드 두에리 / 레바논, 프랑스 / 2017년 / 112분 / 아시아영화의 창

개인적인 감정싸움이 전국적인 이슈로 번졌다. 레바논의 열렬한 기독교도 토니는 팔레스타인 난민 야세르가 배관 공사를 하던 중 자신의 발코니를 침범했다고 화를 낸다. 그 과정에서 야세르는 토니에게 무례한 폭언을 던지고, 토니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야세르를 모욕죄로 고소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며 서로를 견제하는 레바논의 특수한 상황,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한 차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이 사건은 화제가 된다.

이스라엘이 몰아낸 팔레스타인인들이 중동 국가를 떠돌고, 특히 레바논은 팔레스타인 게릴라의 중심지가 되면서 많은 난민이 유입됐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분쟁으로 많은 타격을 입은 곳이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내부의 종교 갈등이 더해진 레바논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법정물의 형태로 매끄럽게 풀어냈다. 이런 맥락을 전혀 모르는 관객도 충분히 몰입 가능할 만큼 두 캐릭터의 갈등은 명료하고 첨예하다. 분노가 증폭되고 확산되는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중동권의 역사적 아픔에 공감하게 된다. 야세르 역의 카멜 엘 바샤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포큐파인 호수> Porcupine Lake

잉그리드 베닌거 / 캐나다 / 2017년 / 84분 / 월드 시네마

비는 별거 중인 아빠를 만나기 위해 이제 막 토론토에서 시골 마을로 왔다. 비는 도시에서 살기 원하는 엄마와 시골에 정착하려는 아빠가 갈등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따분하던 비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 것은 전혀 다른 배경과 성격을 가진 케이트와 친구가 되면서다. 원래 포큐파인 호수 근처에 거주하던 케이트의 가족은 그에게 별 관심이 없다. 다만 괴팍한 오빠의 행동이 걸림돌이다.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두 사람은 상대에게 호기심을 느끼며 친밀해진다. 비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말썽을 피우기도 하는 케이트가 어떤 일을 주도하면, 비가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함께하는 식이다.

어느 여름, 변두리 마을을 배경으로 13살 소녀들의 우정과 사랑, 호기심과 성장을 그리는 스토리 자체가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마냥 밝은 면만 드러내지 않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종종 케이트는 비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청소년기의 결핍과 성장통은 보다 입체적으로 묘사된다. 두 사람의 호기심이 침대 위에서 혀를 맞대며 노는 식으로 표현되는 대목 역시 뻔하지는 않다.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비와 케이트를 각각 연기한 두 배우 샬롯 솔즈베리, 루신다 암스트롱 홀의 상반된 매력 또한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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