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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부산의 한국영화들- 영화적인 이야기들이 한가득

신수원의 <유리정원> 정재은의 <나비잠> 방은진의 <메소드> 오멸의 <인어전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에는 우선 중견감독의 신작들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개막작인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선보이는 정재은 감독의 <나비잠>,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선정된 방은진 감독의 <메소드>, 오멸 감독의 <인어전설>, 김성호 감독의 <엄마의 공책>, 신연식 감독의 <로마서 8:37>, 전수일 감독의 <아메리카 타운>, 박기용 감독의 <재회>, 고은기 감독의 <타클라마칸>, 민병훈 감독의 <황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서 선보이는 이광국 감독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최용석 감독의 <헤이는> 등이 그것이다. 감독의 전작들을 아는 관객이라면 기대를 해도 좋다.

<소공녀>

한국 독립영화의 여성 캐릭터들

최근 주류 한국영화에서 여성의 입지가 줄고 있는 반면 독립영화에선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가 늘고 있다. <이월>(감독 김중혁), <밤치기>(감독 정가영), <히치하이크>(감독 정희재), <죄 많은 소녀>(감독 김의석), <소공녀>(감독 전고운), <당신의 부탁>(감독 이동은), <박화영>(감독 이환) 등이 좋은 예다. 물론 <유리정원>과 <나비잠>도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지만 여러 경로로 널리 소개되었으니 생략하고 넘어가자. 우선 <이월>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궁지에 몰려 자꾸 나쁜 선택을 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꿈과 희망 같은 단어랑 거리가 먼 삶을 살아야하는 그녀의 삶을 영화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본다. <박화영>의 여고생 박화영도 비슷한 점이 있지만 박화영에겐 꿈이 있다.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소녀의 꿈은 가출팸의 사나운 질서에 마구 짓밟히고 만다. <소공녀>의 주인공은 <이월>이나 <박화영>에 비하면 얌전한 편이다. 집에서 나와 친구들 집을 전전하지만 자존을 지키려 애쓰는 젊은 여성이다. <밤치기>에서 정가영 감독이 직접 연기하는 여자는 남자에게 집요한 애정공세를 펼친다. 카메라가 앞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연스런 그녀의 모든 표현이 기존 로맨틱 코미디에서 볼 수 없던 독특한 캐릭터를 완성시킨다. <히치하이크>의 주인공은 가족의 품이 절실히 필요한 소녀다. 소녀는 병든 아버지를 대신할 아버지의 존재감을 원하지만 영화는 성장을 위한 그녀의 새 출발을 응원한다. <당신의 부탁>은 죽은 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맡아 기르는 젊은 여자가 주인공이다. 임수정이 연기하는 이 인물은 새로운 가족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죄 많은 소녀>는 자살을 부추긴 걸로 의심되는 소녀를 카메라 앞에 세운다. 죽은 아이의 어머니, 선생님, 형사, 학교 친구들 등 주변 모두가 소녀를 몰아세우고 마녀사냥에 나선다. 세상의 잔인함에 맞서려면 소녀 역시 강해져야 할 것이다.

<이월>

<히치하이크> <당신의 부탁> <죄 많은 소녀> 외에 청소년이나 어린이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영화도 눈에 띈다. <홈>(감독 김종우)은 <당신의 부탁>의 대척점에 놓인 듯한 영화로, 아이의 시점에서 새로운 가족의 형성 과정을 바라본다. 간절히 보호를 원하는 아이와 복잡한 셈법을 해야 하는 어른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살아남은 아이>(감독 신동석)는 아들 대신 살아남은 소년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부모의 이야기다. 어렵게 소년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만 정작 문제는 그다음에 생긴다. 아들의 죽음에 몰랐던 비밀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살아남은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다시 묻게 된다. <물속에서 숨 쉬는 법>(감독 고현석)은 같은 날 두 가족에게 생긴 비극을 보여주는데 이 영화에서도 아이의 존재는 중요하다. 아이를 잃은 가족과 어른을 잃은 가족, 어느 쪽도 어제와 같은 내일을 맞지 못할 것이다.

<검은여름>(감독 이원영)은 동성애를 전면으로 다룬 영화다. 대학 안에서 두 남자가 사랑에 빠지지만 타인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 둘의 관계는 스캔들이 되고 억울한 희생자가 발생한다. <메소드>에도 동성애가 등장한다. <메소드>는 연극 연기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실제 감정의 일치를 통해 연극과 현실이 겹치는 절정을 만들어낸다. 방은진 감독은 자신이 잘 아는 연극과 연기 분야에서 제대로 솜씨를 발휘한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로맨스 조>나 <꿈보다 해몽>에 비해 단순해진 구조 속에 인물의 고독, 자존, 사랑에 대한 갈구, 예술과 창작의 고통 등 이광국 영화다운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헤이는> 역시 감독의 전작에 이어 다시 한번 이방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동안 고향을 떠나 있던 인물이 고향인 부산을 찾아 그곳에서 과거와 재회하는 것이다. <얼굴들>은 피곤한 현실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파산의 기술記術>과 <보라>를 만들었던 이강현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이다.

<박화영>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음악의 시간

<로마서 8:37>은 믿음을 시험받는 젊은 교회 집사가 주인공이다. 집사는 분쟁 중인 교회에서 자신이 믿고 따랐던 목사가 성추행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진실을 밝히려 애쓰지만 사람들은 진실보다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 한다. 시나리오작가이자 감독으로서 신연식 감독의 능력을 보여주는 영화. <아메리카 타운>은 80년대 미군 부대 기지촌의 모습을 그린 영화다. 전수일 감독은 소녀의 첫사랑이라는 필터를 통해 반사된 당시 기지촌 여성의 비인간적인 삶을 그린다. <인어전설>은 계속 제주도에서 영화를 찍었던 오멸 감독의 신작. 해녀들이 싱크로나이즈를 배우는 이야기로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눈꺼풀> 등의 전작에 비해 가벼운 코미디이다. <재회>는 중년 남녀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지만 판타지에 기댄 영화가 아니라 판타지를 깨는 영화다. 그들은 불태울 정열 대신 생활고와 삶의 피로를 확인한다. <엄마의 공책>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 이어 김성호 감독이 다시 한번 가족영화에 도전한 작품이고, <타클라마칸>은 지금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광기와 분노에 초점을 맞춘 영화. 이외에 <황제>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연주를 통해 힐링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영화다. 민병훈 감독은 <황제>를 기존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밖에 올해 화제작은 아무래도 <군함도: 감독판>일 것이다. 감독판에는 무영(송중기)이 양조장 주인인 친일파(정만식)를 처형하는 장면 등이 포함됐는데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 개봉 당시 있었던 많은 논란에 대한 감독의 대답” 그리고 “이것이 감독의 오리지널 버전”이라고 밝혔다. 감독판을 통해 엉뚱하게 불붙었던 친일 논란이 종식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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