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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강지연 영화사 시선 대표 - 무거운 소재로 쉽게 마음을 두드리다
이화정 사진 백종헌 2017-10-12

제작자 강지연 영화사 시선 대표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피해자라는 소재를 상업영화의 영역 안으로 끌어와 웃음과 감동을 끌어낸다. 무거운 소재를 코믹으로 풀어내기까지는, ‘소재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이 ‘어려운’ 기획 뒤에 명필름과 함께 영화의 공동 제작사로 참여한 영화사 시선의 강지연 대표가 있다. 처음 원안을 쓴 5년 전부터 개봉 후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낸 현재에 이르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작품을 만든 강지연 대표에게 <아이 캔 스피크>의 제작과정을 들어보았다.

-소재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코믹 장르와 접목해 대중적인 호응을 높인 기획이다. 기존 위안부 피해자 소재의 영화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접근 방식이었는데.

=그 부분에 우려의 말이 많았다. 극단적인 말로 만류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코믹 톤 때문에 자칫하면 소재를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큰 작품이었다. 이런 시선들 때문에 이후 투자받고 영화를 만들기까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영화를 보신 분들의 평이 좋아서 너무 감사하다.

-‘위험 부담’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가지고 코믹을 접목하려 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나.

=영화 마케팅 일을 할 때 작가들이 회사로 시나리오를 많이 보내왔는데, 위안부 피해자 소재의 시나리오들이 주기적으로 오더라. 그 작품들을 검토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다들 이 문제가 대중에게 전달되고 이슈화되길 원할 텐데 접근 방식을 달리하면 목적하는 바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토대로 3장짜리 시놉시스를 써봤다. 그런데 주변 평가가 너무 우려 일색이었다.

-프로젝트 진행에 가속을 붙인 건 CJ문화재단이 주관하고 여성가족부가 후원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 공모전 당선이었나.

=3장짜리 시놉시스밖에 없는데, 공모전 요강은 20장짜리를 제출해야 했다. 시간상으로 무리라 고민하다가 일단 써보자는 마음으로 근처 카페에 갔다. 마침 카페에 지인인 PD님에게 이야기했더니 재밌다며 써보라고 격려해주셨다. 그길로 밤새워서 쓰고 제출하고, 그리고… 잊고 있었다. 될 거라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았다.

-심사를 받으면서 오히려 제작을 진행할 힘을 얻었다고 들었다.

=1차 합격하고 2차 피칭심사를 갔는데, 그때는 더 겁이 나더라. 평소 수요집회(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요구를 위해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정기 수요시위. 1992년 시작되었다.-편집자)에 열심히 나가지도 않았고, 이 문제는 나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 분들이 많은데 내가 자격이 될까 걱정이 되더라. 심사위원들이 ‘작가는 누구냐’고 하기에 “아직은 없다”고 했다. “그럼 직접 썼냐”라며 “너무 재밌게 읽었다” 하시는데 그 순간 눈물이 쏟아져서 운 기억밖에 없다. 다들 좋게 이야기해주셨고, 잘해보라고 힘을 주시더라.

-나옥분이라는 캐릭터가 ‘피해자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입을 통해 소리치는 승리의 서사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수요집회를 나가서 피해자 할머니들을 뵙고 많은 걸 알게 됐다. 가장 중요한 건 그분들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할머니라는 점이었다. 당당하고 씩씩하고, 또 농담도 잘하시고. 그런데 우리가 그분들을 너무‘비극의 역사’ 안에 가둬둔 게 아니었을까. 할머니들이 꾸려온 삶을 상상조차 거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할머니들 모두 여행 다니고 싶어 하시고, 꾸미는 것도 좋아하시고, 또 무엇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신다. 그분들의 리얼한 모습을 나옥분 캐릭터를 통해 가져와야겠다 싶었다.

-코믹 장르로 이 영화의 성취 중 하나를 꼽는다면, 소수자를 비하하는 태도나 대사 없이도 큰 웃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다. 김현석 감독 특유의 코믹 톤과 시나리오작가들의 디테일한 대사들이 준 영향이 컸다.

=<인생은 아름다워> <타인의 삶>처럼 힘든 이야기를 웃음으로, 쉽게 마음을 끌어가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김현석 감독의 <광식이 동생 광태>(2005)의 코믹 톤을 굉장히 좋아해서 감독님을 떠올렸는데, 다들 김현석 감독은 본인이 직접 쓴 시나리오 아니면 안 한다고 해서 포기했었다. 그런데 리틀빅픽처스와 명필름이 배급, 공동 제작사로 합류하면서 감독님께 제안할 통로가 생겼다. 원안은 내가 쓰고 <달콤한 거짓말>(2008)을 쓴 유승희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조영수 작가와 김현석 감독이 각색을 했다. 참여한 작가들이 모두 여성이기에 우리 영화의 여성 캐릭터들이 잘 살아난 측면도 분명 있다고 본다.

-배우 나문희의 노련한 연기가 나옥분을 살아 있게 만든다. 또 호흡을 맞추는 배우 이제훈의 합이 좋았다.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

=초고 때부터 무조건 나문희 선생님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캐릭터 이름도 ‘나’옥분이다. 투자도, 감독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흔쾌히 승낙을 해주셨고, 세팅되기까지 1년 반 넘게 기다려주셨다. 막상 제일 힘들었던 건 민재 역 캐스팅이었다. 정말 많은 배우에게 제안했고, 다 거절당했다. (웃음) 나옥분 중심의 영화이고, 한·일 관계 등도 있다보니 그 부분에 대한 저항이 컸다. 캐스팅 난항 중이었는데,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이제훈씨에게 제안했고 성사됐다.

-처음 나옥분을 이해하고 연대하는 영화 속 9급 공무원 민재 역할이 여성이었다가 개발 과정에서 남성으로 바뀌었다. 어떤 과정으로 바뀌게 된 건가.

=수요집회에 나가면서 겪어보니 이 문제는 여성들의 공감대가 훨씬 커서 여성 캐릭터로 설정했었다. 그런데 애초 휴먼 코미디로 이 문제를 더 알려야 한다면 남성들의 관심을 확대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서 캐릭터의 성별을 바꾸었다.

-마케터로 출발해 이제 <아이 캔 스피크>를 제작했다. 제작사 대표로 이후 영화 필모그래피를 발전시켜나갈 텐데.

=외화 마케팅을 하다가, 한국영화는 2001년에 <두사부일체>를 첫 작품으로 시리즈인 <투사부일체>(2005)를 비롯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 <댄서의 순정>(2005) 등을 마케팅했다. 마케팅 일도 재미가 컸는데, ‘마케팅에 낚였다’는 반응도 들으면서 스스로 한계에 봉착했다. 일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PD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첫 작품이라 실수도 많았는데, 지금은 이 실수들을 잊지 않게 빨리 다음 작품을 하자는 생각이 크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 편찬 이야기인 <말모이>(가제)를 준비 중이다. 몇년 전부터 들으면서 흥미로운 기획이라 생각했는데, 얼마나 진행됐나.

=<아이 캔 스피크> 공모전에 앞서 그 기획이 CJ E&M 광복 70주년 공모전에 대상으로 당선됐었다. 윤제균 감독님이 같이 기획해보자 하셔서 JK 필름과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말모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이다. 일제강점기 국어사전 편찬 과정에서 팔도 사투리에 능한 보부상들이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로 풀어가고 있다. 역사적인 소재에 관심이 많다. 거대한 역사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역사가 되고, 그게 사회의 변화를 불러온다는 방향이다. <아이 캔 스피크>도 만들면서 관객을 울리려는 의도보다 통쾌함을 전달하자는 의도가 컸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왜 맨날 돈 달라고 구걸하냐, 사과도 못 받으면서’ 같은 악의적인 댓글이 너무 많더라. 할머니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내서 승리한 역사가 있다, 결코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 아니고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 아픈 역사이고 문제제기를 하자는 마음은 다 같을 것 같다. 민규동 감독님이 위안부 소재로 <허스토리>를 촬영 중인데, 이 역사를 우리가 계속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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