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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생명을 부여하는 <몬스터 콜>의 마술
송경원 2017-10-12

동화(童話)에서 동화(動話)로

“떠나지 마요.” 이야기의 끝에서 소년은 매우 간단하지만 감히 꺼낼 수 없었던 사실, 오랫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진심을 엄마에게 전한다. 솔직히 나는 그때 소년이 엄마에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편안하게 가세요”라고 할 줄 알았다. 아니면 “사랑해요”라고 했다고 해도 별 위화감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떠나지 말라니. 방금 전 소년은 몬스터에게 숨겨왔던 진심을 고백하며 스스로 네 번째 이야기가 되지 않았던가. 소년은 마지막 순간에 가서 다시 마음을 고쳐먹은 걸까.

이야기는 언제나 경계에서 시작된다

<몬스터 콜>은 몬스터가 소년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후 소년에게서 네 번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구조를 취한다. 소년의 악몽, 땅이 꺼지고 세계가 무너지는 풍경으로 문을 여는 영화는 소년 스스로 악몽의 뒷이야기를 마무리하게끔 안내한 뒤 문을 닫는다. 소년은 아픈 엄마와의 생활에 지쳐 “이제 그만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자백한다. 소년의 악몽은 엄마와 헤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마음 한구석 그 결말을 바랐다는 죄책감의 결과물이다. 엄마가 죽는다면 거기에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죄의식. 자신이 절실하게 믿지 않아서 엄마가 낫지 않는 건 아닌가 싶은 공포. 그래서 소년은 차라리 괴롭힘을 당하고 싶다. “왜 나를 죽이지 않지? 나는 벌을 받아야 해.” 하지만 몬스터는 “인간은 고통스런 진실보다 쉬운 거짓말을 좋아한다”며 소년의 용기를 칭찬한다. “중요한 건 네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니 진실을 말하라.” 내가 소년이 어머니에게 이별을 고할 것이라고 짐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소년은 마지막에 가서도 엄마에게 떠나지 말라는 답을 내놓는다. 소년은 엄마를 위해 거짓말을 한 걸까. 아니다. 엄마를 떠나보내기 싫다는 마음 역시 진심이다. 이 지점이야말로 <몬스터 콜>의 빛나는 성찰이다. 몬스터는 왕자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를 통해 모순된 감정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왕자는 어떻게 살인자면서 사랑받는 군주가 되었는가?” 마찬가지로 엄마와 계속 함께하고 싶은 욕망과 차라리 엄마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이건 순서나 인과관계의 문제가 아니다. 삶은 그 모순을 허락하고 이야기는 그 과정을 옮겨 담는다.

이야기는 왜 필요한가. 삶은 너무도 복잡해 순서가 정해진 인과의 방식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가능하다 해도 방대한 수사를 필요로 할 것이다. 이야기는 은유의 장치를 통해 듣는 이가 원하는 만큼 퍼갈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둔다. 발화하는 사람만큼 받아들이는 쪽의 경험과 배경이 이야기의 형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건이 되는 것이다. 조금 딱딱하니 다른 이야기를 하나 빌려서 표현해보고 싶다. 얼마 전 지인의 할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계셨다. 꽤 오래 침상에 누워 계셨던 탓에 일가친척이 모여 다들 임종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그런데 지인의 고모 중 한명이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다 못해 조금 편해지시라고 영양주사를 놓아드렸다고 한다. 지인의 할머니는 이내 한숨 돌리며 편안해지셨다. 그런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지인의 삼촌, 그러니까 고모의 오빠가 왜 어머니를 편하게 보내드리지 않았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고모와 삼촌은 그날 밤 심하게 싸웠는데, 지인은 그들이 언성을 높이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그렇게 괴로워 보일 수 없었다며 말을 줄였다. 이것이 이야기다. 여기서 지인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어머니를 빨리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과 조금이라도 숨을 이어가게 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광경’을 전달한다. 이제 질문을 달리해보자.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이야기의 형태와 목적을 결정짓는 건 내용이 아니다. 발화의 주체가 누구이고 착신지가 어디인가에 따라 시작과 끝이 결정된다.

영화의 시작, 악몽에서 깬 소년은 질문한다. “어떻게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몬스터는 답한다. “다른 이야기랑 마찬가지다. 아이라기엔 성숙하고 어른이라기엔 너무 어린 한 소년. 그리고 악몽으로부터.” 이어지는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종이 위에 그어지는 선, 그림을 그리는 펜, 피처럼 흩뿌려지는 잉크의 문양들이 클로즈업된다. 나는 일련의 짧은 몽타주들이야말로 이야기가 각자의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몬스터가 소년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다. 여기서 주목했으면 하는 건 이야기 사이의 이음매다. 달리 말하자면 이야기와 이야기, 또는 이야기와 현실(삶, 체험, 현재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정확히는 이야기가 아닌 모든 순간들)의 경계는 어디인가. 몬스터의 선언처럼 나는 거의 모든 이야기가 경계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경계 위에 선 자는 마침표를 찍고 다음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네버 엔딩 스토리

<몬스터 콜>은 세 가지 층위의 이야기에 감싸여 있다. 제일 바깥에 있는 건 소년이 엄마를 떠나보내며 ‘가지 마요’라고 속삭이는 소년의 이야기다. 이건 소년이 몬스터에게 들려주기로 했던 네번째 이야기이자 소년이 처한 현실이며 실사로 표현된다. 그 바로 안쪽에 몬스터가 소년에게 들려주는 세 가지 다른 이야기가 있다. 몬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수묵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다. 실사와 작화라는 표현양식을 통해 이야기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첫 번째 왕자, 두 번째 약제사의 이야기와 달리 세 번째 이야기인 투명인간 에피소드가 두 가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온전히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던 두개의 이야기와 달리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가 무너진다. 소년은 자신을 더이상 괴롭히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반 친구를 향해 돌진한다. 존재를 부정당했다고 생각하는 소년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면 몬스터의 숨소리도 따라서 커지고 종국엔 둘은 하나가 되어 모든 걸 무너뜨린다. 물론 식당 전체가 날아가고 파괴되는 건 소년의 환상이다. 사실 소년은 친구를 넘어뜨리고 흠씬 두들겨 팼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 장면의 표현이 거짓인가. 아니다. 모든 걸 파괴하고 싶은 소년의 분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진실이다. 소년과 몬스터,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한자리에 있는 이 장면이야말로 <몬스터콜>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세 번째 층위다. 어쩌면 오프닝에서 소년이 악몽에서 깬 순간부터 지속된 판타지, 혹은 동화라고 불리기도 하는 층위.

<몬스터 콜>의 외피가 진실을 마주하는 소년의 성장담이라면 내피는 이야기와 세계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묘사다. 몬스터의 친철한 설명처럼 소년은 경계에서 출발한다. 경계란 결정을 뒤로 미루는 상태다. 소년은 첫 번째 이야기에서 왕자가 살인자이자 좋은 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소년으로서의 순수함은 세상을 인과와 흑백으로 나누는 무지와 다름없다. 또는 무지에 머물고자 하는 의지일 수도 있다. 이야기라는 우회로를 거쳐 드디어 양가감정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소년은 경계를 벗어나 어른이 된다. 소년처럼 경계에 서 있던 이야기도 현실로 복귀한다. 내가 주목하는 건 환상으로 표현되는 경계의 형태다. 나는 이 강력한 환영이야말로 내가 사랑하는 영화의 민낯이자 가능성이며 힘이라고 믿는다.

이야기와 현실의 차이는 무엇일까. 경계는 어디일까. 아마도 지속성일 것이다. 우리는 시작과 끝이 있는 이야기를 듣지만 삶은 지속된다. 이야기에 시작과 끝이 있는 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발화와 착신이 무한히 이어진다면 이야기도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소년은 자신의 이야기가 어머니로부터 이어진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이어진다. 소년의 이야기는 언젠가는 소년의 자녀들의 것이 될 수도 있다. 동시에 그건 옆자리에서 소년의 이야기를 지켜본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하나의 이야기는 씨앗처럼 관객을 향해 흩날리고 다음 이야기로 싹을 틔워 생명을 이어간다. 그러니까 이건 동화(童話-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에 대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화(動話- 움직이는 이야기)다. 이야기와 현실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어쩌면 시간으로부터 탈출하여 영원을 얻고자 했던 모든 영화가 처음부터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출발한 동화(動話)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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