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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욱의 <가을날의 동화> 완성형의 순정

감독 장완정 / 출연 주윤발, 종초홍 / 제작연도 1987년

어릴 적엔 극장 가는 게 꽤나 큰 나들이였다. 비교적 변두리였던 우리 동네엔 내가 군대에 다녀올 때까지도 개봉관이 없었다. 동네에 있는 극장이라고 해봐야 미성년자 관람 영화와 불가 영화를 번갈아 틀어주던 동시상영관이 전부였고, 신문 광고에 ‘개봉박두’라고 박힌 신작 영화를 보려면 종로나 강남역으로 원정을 떠나야 했던 시절이다.

어딘지 음침하고 위험해 보이던 동시상영관은 그 무렵의 나와 내 친구들에겐 애당초 기피 대상이었다. 그래서 사춘기 때는 대부분의 영화를 비디오테이프로 빌려서 보곤 했다. 학교에 매이고 용돈은 빤한 중고생에겐 개봉관 한번 다녀오는 게 지금처럼 그리 수월한 일상은 아니었다. 그러니 평소보다 하교 시간이 훨씬 빨랐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은, 우리 일당에겐 뜻밖의 영화 감상 주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시험이 끝나면 정답을 맞혀본다는 핑계로 낮에 비는 친구 집에 모여 근처 비디오 가게에서 빌린 영화를 틀곤 했다.

그 시절 그 또래 10대 남자아이들의 관심사란 대체로 비슷했다. 우리가 즐겨 대여했던 영화는 주윤발, 알란탐, 유덕화 중 한명이 등장하는 홍콩 누아르였다, 라고만 적고 나니 아무래도 켕기는 기분이다. 사실 그 여러 낮들의 주된 목표는 19금 영화였고, 홍콩 누아르는 그 ‘목표’를 감추기 위한 미끼였기 때문이다. 뻔뻔하지도 대담하지도 못했던 우리에겐, 그렇게 두개를 빌리는 게 비디오 가게 주인을 향한 일종의 암묵적 제안이었다. 한번에 두개를 빌려서 해가 지기 전에 두개를 모두 반납하는 성실한 고객이 되겠습니다! 제안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아줌마도 아저씨도 19금 대여를 제지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우리 중 하나가 매번 교복 차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끼가 필요했던 시절, 미끼 역할을 했던 작품들 중엔 명작이 많았다. 그때 빌린 작품 중 하나가 <가을날의 동화>였다. 모두가 <영웅본색>에 심취한 시절에도 ‘가오 없게’ <지존무상>을 더 좋아했던 내겐 <가을날의 동화>는 그야말로 낭만의 극치였다. 10대 시절의 나에겐 남자들의 의리보다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순정이야말로 남자의 삶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였는데-그 마음을 여인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 사랑의 완성이라 보았던 내 방식의 ‘중2병’은 지금도 일부 유효하다- 현란한 손기술로 위치를 감춘 독배를 마셔 사랑하는 여자를 구해낸 뒤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지존무상>의 유덕화는, 그 시절 내가 꿈꾸던 매력남의 총체였다.

그런 내게 <가을날의 동화>는 아직 2차 성징이 진행 중이던 시절의 내가 품고 있던 이성 교제에 관한 로망이 집결된 작품이다. 어쩌면 그 이후 내가 꿈꾸는 이상적 연애의 원형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이란 예측 가능하게, 그렇지만 미세먼지처럼 스며들어야 진짜라는, 그러니까 운명보다는 생활에 가깝고, 때로는 이뤄지지 않는 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유치한 편견. 그리고 타이밍이야말로 최고의 연애가 갖춰야 할 결승골 같은 존재라는 것. 아, 도무지 참기 힘든 이 유치찬란의 10대 시절이여.

영화에서 서로의 마음이 교감하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고백도, 스킨십도 하지 않은 채 헤어져야 했던 주윤발과 종초홍의 엇갈림은, 오 헨리의 저 유명한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차용한 선물 교환의 에피소드를 통해 관객의 가슴에 길이 남는다. 상투적이면서도 기발한 이 헤어짐의 순간이 만들어낸 안타까움은, 라스트신에서 둘이 주고받은 아련한 미소를 통해서야 비로소 해소된다. 내겐 때로는 멀리서 바라보며 추억하는 것이, 함께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환기시켜준 장면이다. 사랑은 함께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 행복의 기회를 선사하는 것이라 했다. 헤어지는 것으로 사랑을 완성한 두 사람의 미소를 다시 한번 꺼내 보고픈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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