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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권김현영(여성학자) 일러스트레이션 마이자 2017-10-26

일회용 생리대가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몇달째다. 얼마 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일회용 생리대는 안전하다고 발표하자 관련 기사의 댓글과 페이스북 등에서 생리대 유해성 문제를 제기한 여성단체를 고소고발해야 한다는 위협이 난무했다. 기업의 주가를 걱정하고 전문가의 권위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한껏 고양되었다. 수많은 여성들은 물러서지 않고 “내 몸이 증거다”라고 외쳤지만, 과학을 불신하는 반지성주의적 태도라면서 특정 기업과의 연결을 조사해야 한다며 음모론을 펼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며칠 후 해당 수치는 입력 오류였고 제품 전부에서 1개 이상의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수치가 잘못 발표된 걸 시인하면서도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생리대는 대부분 안전하다며 지나치게 우려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번 위해평가에 적용한 VOCs 독성참고치 기준은 국제표준에도 외부전문가기준에도 부족함이 없다며, 해당 물질의 잔류로 인해 나오는 문제는 미미하다는 내용의 참고자료도 배포했다. 보건당국에서 취한 다음 조치는 올바른 생리대 사용법에 대한 교육이었다. 생리 중에는 자궁경부가 열려 세균에 감염되기 쉬우므로 각별하게 위생관리를 하라, 통풍이 잘되는 옷을 입어라, 생리대는 2~3시간에 한번씩 교체하라, 생리 기간 중에는 대중목욕탕이나 수영은 가급적 피하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파업 중인 방송국 뉴스채널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방송사 남자부사장과 화학과 남자교수가 나와 생리대 유해성을 둘러싼 대담을 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이분들이 한 이야기는 여성독자라면 대부분 아는 내용이다. 화학과 교수는 조사를 위해 처음으로 일회용 생리대를 뜯어보았다며 생리대 구조를 자세히 설명하고 이것을 착용하는 방법을 질병관리본부가 나서서 가르쳐야 한다는 ‘전문가 소견’을 발표했다. 일회용 생리대를 일년에 100번쯤 써보면 접착면이 어디인지, 날개는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 얼마 만에 교체해줘야 하는지 다 안다.

그리고, (한숨 좀 쉬어도 되나) 생리 기간에 공중목욕탕과 수영장을 탐폰도 아니고 생리대를 착용하고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남자 전문가들은 갑작스럽게 사라진 과거 문명의 흔적을 탐구하거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외계 물질에 대한 이야기처럼 일회용 생리대의 유해성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입을 모아 일회용 생리대에 대한 불안심리는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말한다. 이 모든 일련의 사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미래로 보내고 싶다. 다만 미래의 관객에게 이것은 페이크다큐멘터리가 아니며, 당시에 여자들은 모두 생존해 있었고, 말하고 쓰고 읽을 줄 알며, 남자들과 동등하게 고등교육을 받았던 시절이라는 걸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보건당국 관료들과 남자 전문가들에게 간절히 부탁한다. 모르면 일단 물어보라. 당신들이 이제야 알아낸 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다. 지난 몇 십년간 일회용 생리대, 탐폰, 천생리대, 해면, 생리컵까지 두루 써본 사람으로서 나는 일회용 생리대가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이미 안다. 우리가 궁금한 건 생리대 보관법이나 교체 주기 등이 아니라 생리대 전성분이 뭔지, 그게 생식기와 자궁 등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다.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안전하다는 발표를 믿으라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