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한국영화감독 7인①] <물속에서 숨 쉬는 법> 고현석 감독, "어떻게 이 답답한 세상을 살아갈까"
이주현 사진 이동훈 2017-10-30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은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2017)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간을 흥미롭게 구성한다. 순차적으로 흐르는 듯 보였던 시간이 어느 순간 과거와 연결되는 시간의 역전, A의 시점으로 전개되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B의 시점으로 흘러가는 구성이 <덩케르크>를 연상시킨다. “내가 먼저 영화를 내놨어야 했는데. (웃음)” 이야기를 완성한 건 4년 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설계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부산에서 고현석 감독을 만났다.

-박성원 작가의 단편소설 <하루>를 각색했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초기작이나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1999)처럼 구성이 흥미로운 영화들을 좋아한다. 지금은 구조적인 영화에 대한 흥미가 조금 떨어졌지만 새로운 구조의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라디오의 책 소개 프로그램에서 소설 <하루>를 소개하는 걸 들었다.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바로 서점으로 갔고, 책을 사고 하루 만에 시나리오로 각색했다. 그러고 박성원 작가님을 만나 영화화 허락을 받았는데, 완성한 시나리오로 제작지원을 신청하면 번번이 떨어졌다. (웃음) 그게 벌써 4년 전 일인데, 그사이 단편 버전으로도 만들어보고 중편으로도 만들어봤다. 그러다 대구에 장편영화 제작지원(대구다양성영화제작지원)이 생겨서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각색의 방향은 어떻게 잡았나.

=소설에선 산후우울증을 앓는 은혜가 주인공이다. 각색하는 과정에선 은혜의 단독 이야기가 아니라 은혜를 비롯한 캐릭터들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배치하려 했다.

-인물의 수평적 배치로 인해 시점의 이동과 시간의 역전 또한 가능해졌다. 순차적으로 흐르는 듯 보였던 시간이 어느 순간 과거의 시간과 만나는 시간의 역전은 어디서 힌트를 얻었나.

=소설에서 시간이 역전되는 부분이 한 장면 있다. 은혜와 중학생 영준이 부딪히는 장면인데, 은혜의 입장에서 한번 이야기가 전개되고 중학생 영준의 입장에서 또 한번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방식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인물들의 상황을 좀더 다층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각 인물의 시점과 시간이 매우 자연스럽게 교차되는데, 촬영 및 편집 과정에서 신경 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촬영할 때부터 이건 은혜의 시간, 이건 중석의 시간, 그렇게 정해놓고 찍었다. 두 인물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어떤 인물의 시점과 시간이 중심인지, 누구를 위주로 숏을 구성해야 하는지 정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이 오래 걸렸다. 컷 편집만 4개월을 했다. 영화 속 각 모티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애초의 의도였지만, 편집을 하면서 다시 보니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모든 장면을 연결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연결이 억지스럽다 싶은 장면들은 걷어냈다.

-제목을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이라고 지은 이유는.

=직관적으로 만든 제목이다. 물을 무서워하는 편인데, 수영장에서 몸 안의 숨을 다 뱉고 물속 바닥까지 내려가면 금세 갑갑해진다. 조금만 더 있으면 죽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영화 속 인물들이 사는 세상이 내가 물속에서 느낀 갑갑하고 답답한 세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게 힘들고 답답하지만 그럼에도 살기 위해선 숨을 쉬어야 한다. 어떻게 이 답답한 세상을 살아갈까, 그런 생각을 모두가 한번쯤 해봤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지은 제목이다.

-대구에서 영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영화인들의 네트워크도 서울 중심이고 교육기관이나 제작지원 프로그램 또한 서울에 집중돼 있다 보니 지역에서 장편영화를 완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고향은 대구 옆 경상북도 고령인데 대학에 진학한 스무살 때부터 대구에서 지내고 있다. 대구엔 아직 영상위원회가 없다. 그래서 지원이나 섭외와 관련해 도움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만들 땐 운이 좋게도 병원이나 경찰서 등 대구의 관공서에서 협조를 많이 받았다. 3천만원이라는 적은 제작비로는 완성할 수 없는 영화였는데 그런 협조가 큰 도움이 됐다. 또 스탭들을 최소화했다. 10명 정도의 스탭이 1인다역을 소화했다. 물론 인건비는 제대로 지급했다. (웃음) 단편 <충심, 소소>(2012) 때부터 팬이었던 이상희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었던 것도 기뻤는데, 사실 대구에서 영화 만들면서 힘든 것 중 하나가 배우와의 미팅을 수시로 갖기 힘들다는 점이다. 서울까지 가려면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드는데 저예산영화에선 그 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어떤 계기로 영화감독이 됐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 땐 소설 습작을 많이 했다. 소설을 쓰면서 유려한 문장을 쓰는 것에 많이 매달렸다. 그러다보니 몇년째 단편소설 하나를 완성하지 못하고 있더라. 그러다 카메라를 하나 샀고 예전에 써놓은 미완의 습작을 시나리오 삼아 영화를 찍어봤다. 신기하게 영화는 완성이 되더라. 그러면서 계속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영화가 너무 좋아서 소설은 못 쓸 것 같다.

-어떤 작가들을 좋아했나.

=습작하던 시절엔 전경린, 김영하 두 작가의 장점을 합친 작가가 되고 싶었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들, 특히 <검은꽃> 같은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게 꿈 중 하나다. 아직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꿈은 꿈이니까.

-앞으로도 대구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인가.

=그러고 싶다. 대구에도 영화하는 동료들이 한정적으로 있긴 하다. 올해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나만 없는 집>(2017)으로 대상을 받은 김현정 감독, <혜영>(2016)으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단편부문 대상을 받은 김용삼 감독, <수성못>(2016)을 만든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유지영 감독은 단편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내온 사이다. 그들과 만나면 얘기하는 게, 우리는 대구를 떠나지 말고 계속 이곳에서 영화 작업을 하자는 거다. 이제는 어떤 의무감도 생기는 것 같다.

<물속에서 숨 쉬는 법> 시놉시스

은혜(이상희)는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다. 자동차 부품 공장 인사과에서 일하는 남편 준석(오동민)은 은혜에게 오전에 은행에 들러 전세금을 입금하라고 당부하고 출근한다. 그날 준석은 회사에서 생산라인의 계약직 인력을 축소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같은 공장의 작업반장 현태(장준휘)는 계약직 정리해고 소식을 듣고 괴로워한다. 현태에겐 아내 지숙(조시내)과 난독증을 앓는 중학생 아들 영준(김현빈)이 있다. 한편 아픈 몸을 이끌고 급하게 은행에 간 은혜는 잠시 도로변에 차를 주차해뒀다가 갓난아이가 탄 차를 잃어버린다. 견인 딱지를 뗀 건 중학생 영준이다. 그렇게 두 가족의 이야기가 하루동안 얽힌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