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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최민식 -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것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17-10-31

“<침묵>은 장르를 ‘최민식’으로 풀면 된다.” 정지우 감독이 한 이 말은 <해피엔드>(1999) 이후 18년 만에 함께 작업한 배우 최민식에 대한 단순한 상찬이 아니다. 이 영화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 임태산(최민식)의 사랑하는 약혼녀 유나(이하늬)가 어느 날 죽은 채 발견되고, 딸 미라(이수경)가 유나의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시작된다. 소중한 것들을 한꺼번에 잃을 위기에 처한 남자 임태산의 선택과 고민 그리고 행동이 <침묵> 서사의 동력이자 관건이다. 어쩌면 정지우 감독도 그런 뜻으로 한 얘기인지도 모른다. 정지우 감독의 말을 들은 최민식은 “‘<침묵>의 장르는 최민식’이라는 말이 고맙기도 하지만 사실 좀 낯간지럽다. 겸손을 떨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침묵>은 현재 정지우 감독의 생각과 감성, 가치관 그리고 기술, 그 모든 게 녹아 있는 작품”이라고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스튜디오에 들어온 최민식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악수를 청하는 배우였다.

-임승용 용필름 대표로부터 기획만 듣고 출연하기로 결정했다던데.

=상수동에 위치한 용필름 사무실에 놀러갔었다. 가봤나? (“위스키가 많은 곳”이라는 기자의 말에) 맞아, 뷰도 좋고, 아주 이상하게 꾸며놨잖아. (웃음) 임 대표가 중국영화 <침묵의 목격자>(감독 비행, 2013)를 보여주며 리메이크할 생각이라고 알려주었다.

-임승용 대표의 작전에 걸려든 거네.

=그럴 수도 있지. (웃음) 원작은 어떤 면에서 말도 안 되는 부분도 있고, 허세가 좀 느껴지기도 하는 작품이었는데 누가 리메이크를 하는지 물어보니 정지우 감독이라더라. 그러면 상황이 달라지잖아. 정지우와 오랜만에 작품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나는 그림이고, 전작 <4등>(2015)도 잘 봤으니까 그가 어떻게 각색을 할지 궁금해졌다. 현재 정지우의 고민도 엿볼 수 있고, 어떤 가치관을 작품에 불어넣을지 생각만 해도 재미있었다. 모르는 감독이 리메이크를 한다면 각색고를 읽고 고민을 했을 텐데….

-임 대표는 “최 선배가 안 한다고 했으면 기획을 그냥 휴지통에 버리려고 했다”던데.

=하하하. 그냥 하는 소리 아니야? 그런 자리를 만들어준 임승용 대표에게 고맙다.

-정지우 감독과의 만남은 <해피엔드> 이후 약 18년 만이지 않나.

=길면 긴 시간인데 서로의 작품을 항상 봐와서 그런지 길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 술 마시면서 그랬어. 우리 어제도, 그저께도 만난 것 같다고.

-출연을 결정한 뒤 임승용 대표, 정지우 감독과 함께 임태산이라는 캐릭터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에 대한 얘기를 수없이 나눴다고 들었는데 무슨 얘기를 주로 나눴나.

=‘임태산이라는 남자를 통해 대중과 어떤 소통을 하려는 건지’ 같은 작품의 정체성에 대한 얘기를 주로 나눴다. 모든 걸 가진 남자가 소중한 걸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을 때 “그건 결과적으로 내 탓이오”라고 얘기하지만 이런 방법이 영화니까 가능하지 현실적으로 가당키나 한 일인가. 만드는 사람 스스로 브레이크가 걸리는 이 부분을 두고 영화적으로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주로 논의했다. 유독 <침묵>은 다른 작업에 비해 그런 고민이 깊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임태산은 어떤 인물이던가.

=외양만 보면 임태산은 남부러울 게 없는 남자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한 남자다. 영화에는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성공했는지 따로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끼리 나눈 이야기 중 하나는 임태산이 뭘 했기에 그 위치까지 올라가 검찰총장 자리까지 사겠다고 떵떵거릴 수 있냐는 거다. 수많은 정·관계 인맥과 권력은 그가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구축한 거다.

-임태산이 “얼마면 되냐, 돈을 줄게”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지 않나. 그게 허세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그것을 자신의 방어기제로 활용하며 위까지 올라간 것 같다. 그걸 보면 그가 날 때부터 재벌은 아닌 셈이다.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하는 건 임태산이 살아온 인생에서는 먹혔다. 하지만 유나를 잃고 느낀 상실감은 난생처음 경험해본 감정이었을 것이다. 많이 놀랐을 것이고,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 예상치 못했을 거다.

-사람이 가질수록 속이 공허해지나보다.

=그렇다고 그가 백전백승만 하고 살아온 건 아니다. 임태산은 패배와 굴욕감을 수없이 헤치고 뚫고 올라간 사람이다.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가진 자의 여유가 아주 긍정적으로 사랑하는 대상에게 작용됐다. ‘돈은 많은데 뭐 하지?’가 아니라 저 여자(유나)가 참 좋다, 저 여자와 같이 라면 먹고 싶다, 저 여자와 요트 타고 바다에 나가서 대화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난생처음 들었을 거다. 누군가를 되게 그리워하고, 뭐든지 다 해주고 싶은 여자였기에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더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살던 장수 임태산에게 그 사건은 역설적으로 소중한 걸 잃으면서 다른 것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된 거지.

-자식 미라에 대한 애정을 보니 넓은 맥락에서 <주먹이 운다>(2005)에서 연기했던 강태식도 생각나던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부모와 자식간에 관통하는 감정은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그동안 정신없이 살아왔는데 비극적인 상황을 접한 뒤 그래도 고슴도치처럼 내 새끼 예쁘다고 감싸는 데 머무르는 게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는 게 이 영화의 주제라 하겠다. 그게 우리가 촬영 전 토론할 때 중점을 뒀던 부분이다.

-정지우 감독은 <해피엔드> 때와 달라진 게 있던가.

=사람이나 작업 스타일이 바뀐 건 없다. 오히려 더 깊어지고, 더 치밀해지며, 더 고민을 많이 하더라. <해피엔드> 때보다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 너무 좋았다.

-정지우 감독도 “최민식 선배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삶의 연륜이 훨씬 깊어졌다”더라.

=그래서 시간의 간극을 못 느꼈던 것 같다. 경력이 많아지면 없던 허세도 들어가고, 노련한 티도 내고 그러지 않나. 그러면 정지우스럽지 않다고 생각했을 거다. 나이가 50이 넘었는데도 정지우는 항상 고민하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 그대로다.

-정지우 감독은 “최민식 선배는 여전히 뜨거운 배우”라고도 하던데.

=그 뻐꾸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아이고 참. (일동 폭소)

-지금 <해피엔드>를 찍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지금 다시 찍으면 주진모 역할을 내가 한다. (일동 폭소) (“최민식이 했던 민기 역할은 누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알아서 정하시고, 내가 화끈한 격정을…. (웃음)

-박해준, 류준열, 이수경, 이하늬 등 후배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색이 모두 달라서 너무 좋았다. 자기 것을 가진 친구들이 아주 그냥 조목조목, 똑똑하게 표현하려고 하니 그게 모두 화면에 담겼다. 나는 간신처럼 여기 붙어서 이렇게 맞추고, 저기 붙어서 저렇게 맞추며 네, 네, 네, 네 하면 됐다. (웃음)

-얘기를 들어보니 <침묵>은 꽤 만족스러운 작업으로 들린다.

=만드는 사람의 의도와 달리 대중은 영화에 동의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나만 만족하면 된다. 오랜 시간 이런 색깔을 가진 이야기를 재미있게, 또 진지하게 만들었으면 그것만으로 속된 말로 ‘만고땡’이지 뭐. (웃음)

-여전히 열정적이고 뜨거운 비결이 뭔가.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쭉 활동하면서 이 일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친한 친구들과 어쩌다가 1년에 한두번 술을 먹으면 친구들이 내게 ‘너는 행복한 놈이 아니냐, 하고 싶은 일을 지금까지 하면서 먹고살고 있잖아’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면 이후의 삶이 어찌되든 간에 ‘난 정말 행복한 놈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무게를 잡던 시절도 있지 않았나. (웃음)

=어떨 때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더 풀어지고, 릴렉스해져야겠구나’ 생각한다. 특히 감독과는 할 얘기, 못할 얘기 없이 모두 털어놓아야 하고. 합을 함께 맞추는 동료 배우들과는 내 패를 다 까고, 먼저 다가가 비비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에서 띄워주니 무게 잡는 거지, 까놓고 보면 배우들 다 똑같다. 연기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서로 편하게 웃으면서 얘기 나누며 작업하면 얼마나 좋나. 서로의 생각을 편하게 나눈다고 작업 고민을 안 하는 게 아니잖나.

-차기작은 뭔가.

=아직은 없다. 여태까지 그래왔듯 주변을 돌아보며 얘기를 나눠보고, 마음이 확 끌리는 작품이 있으면 한번 해보고, 아니면 좀더 찾아보고. 당분간은 좀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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