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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의 <대부> 괴물과 싸운다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출연 말론 브랜도, 알 파치노 / 제작연도 1972년

내 오랜 꿈은 <씨네21>에 ‘내 인생의 영화’를 기고하는 것이었다. ‘영화감독 김민식’이라는 소개를 달고. 1996년 MBC 입사 이래 20년 가까이 로맨틱 코미디를 연출하며 언젠가 내가 만든 드라마가 대박나면 극장판을 만들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인생이 참 기구하다. 2012년 MBC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하면서 170일간 파업을 했다. 그때 구속영장 청구로 유치장에 함께 간 집행부 동료들이 다 해고되고, 나는 정직 6개월을 받았다. 지난 6년, MBC의 몰락을 지켜봤고, 올해 초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며 사내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 장면이 최승호 감독의 영화 <공범자들>에 나오면서 <씨네21>에 출연자 인터뷰를 하고 ‘내 인생의 영화’ 원고 청탁을 받았다. 연출이 아니라 출연으로 <씨네21>과 인연을 맺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건, 영화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를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아버지 돈 비토 콜레오네(말론 브랜도)는 마피아 보스인데, 마이클은 시칠리안 마피아라는 가업을 이어받기 싫어 자원해서 군에 입대한다. 아버지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뿐인 목숨을 바친다면, 가족을 위해 바쳐야지, 왜 나라를 위해 바치나?’ 전쟁이 끝나고 참전용사로 돌아온 그는 가족과 거리를 두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려 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향한 암살 시도와 형의 죽음으로 결국 그 역시 집안일에 휘말리게 된다. 정의로운 바른생활 사나이로 그를 기억하는 아내는 남편이 폭력 조직의 두목이 되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리오 푸조의 원작 소설을 열번 가까이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재미있다. 소설도, 영화도, 좋은 작품은 보고 또 봐도 재미있고, 오래된 것도 늘 새롭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영화화를 하면서 원작의 핵심만 추렸는데, 1편이 대박나자 영화에서 빠진 이야기, 이를테면 돈 비토 콜레오네(1편에선 말론 브랜도, 2편에선 로버트 드니로)의 젊은 시절을 가지고 속편을 찍었다. 그것도 또 대박이 났다. 그만큼 원작 소설의 이야기가 풍성하다는 뜻이리라. 3편까지 나왔지만 여전히 영화에 안 나온 이야기가 많으므로 기회가 된다면 꼭 마리오 푸조의 원작 소설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2012년 170일 파업 후, 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싸움이 길어지면 영혼이 척박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드라마는 이제 잘 보지 않는다. 드라마 속 악역은 너무 강력해서 무섭다. 진짜 악당들의 진면목을 보려면, 영화 <공범자들>을 보시라. 우리 곁에 있는 악당들의 비루하고 지질한 모습이 캐릭터 코미디인 양 펼쳐진다(11월3일까지 유튜브에서 영화 본편 무료 상영!).

MBC를 떠나 프리랜서 연출가로 일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나는 MBC를 떠날 생각이 없다. 지난 5년 함께 고난의 길을 걸은 MBC 조합원 동지들이 내게는 가족, 패밀리처럼 느껴진다. 이들과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려고 싸우다 나 자신이 괴물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 영화 속 마이클 콜레오네의 모습을 보며 항상 자신을 돌아본다. 사람답게 살기는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아야지.

김민식 MBC 드라마 PD. <논스톱3> <내조의 여왕> <여왕의 꽃> 등을 연출했으며,<영어책 한권 외워봤니?>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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