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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프레지던트> 김재환 감독 - '박사모'는 내게 풍자의 대상이 아니다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7-11-02

김재환 감독의 전작들, <쿼바디스>(2014), <MB의 추억>(2012), <트루맛쇼>(2011)를 기억한다면 <미스 프레지던트>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풍자 다큐멘터리라 짐작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미스 프레지던트>는 통렬한 풍자화가 아니다. 영화는, 박근혜의 탄핵을 경험하면서 상실감과 혼란을 겪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저 정중히 듣는다. 김재환 감독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곧 대화의 시작”이라 했다. 세대간의 대화는 어떻게 가능한지 김재환 감독에게 물었다.

-이 영화를 ‘친박’ 영화로 짐작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박정희와 박근혜의 사진을 이용한 포스터도 거기에 한몫하는 것 같다.

=영화 포스터와 관련해 받은 질문 중 말문이 막혔던 황당한 질문이 하나 있다. 포스터에 사용된 사진은 1979년 1월 1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흑백 사진이고, 그 사진에 컬러를 입혔다. 흑백 사진을 컬러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한복 색깔을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입혔냐고 묻더라. 상상도 못한 질문이었다. 친박 영화라고 하는 분도 있지만 포스터의 한복 색깔만 가지고도 빨갱이 감독이 만든 보수 파괴 영화라고 욕하는 분이 있다. 진보 진영에선 왜 저 괴물들을 휴먼 터치로 그렸냐고 욕을 하고. (웃음)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박사모) 회원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이 영화를 봤다던데.

=박사모 외에도 기타 여러 단체들이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울산의 김종효씨 부부는 울산 범박 단체 소속이다. 그들은 박사모로 지칭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개봉 전에 울산의 부부에게 먼저 영화를 보여드렸다. 그때 범박 회원분들이 많이 오셨고, 영화에 대한 정보나 편견없이 보다가 많이 우셨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그들 입장에선 이 영화가 자기 시대를 떠나보내는 이야기다. 본인이 가장 고생했고 또 힘 있었던 한 시대를 떠나보내야 하는 것에서 오는 슬픔이 있었을 거다. 박근혜가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담화를 발표하고 탄핵당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들은 자신의 세계관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실제로 탄핵이 결정된 이후, 영화에 등장하는 청주의 조육형 할아버지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그런 모습이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들과 우리는 삶의 경험이 다르다. 경험치가 다른 존재가 있고 그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걸 인정하면, 그다음부터 대화는 시작될 수 있다.

-박근혜의 존재만 가지고도 <MB의 추억>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박근혜가 아닌 박정희 신화와 육영수 판타지를 공유하는 박정희 세대를 대상으로 삼았다.

=탄핵을 거친 상황에서 <MB의 추억> 같은 영화를 만드는 건 흥미롭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은 것 같았다. 200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이던 시절 한달 동안 밀착 촬영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분량도 결국 다 빼버렸다. 현직 대통령이었다면 영화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거다.

-박정희 세대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

=같은 하늘 아래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느낄 만큼 세대가 너무 나뉘어져 있다.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면 그 세대가 사라질 거라고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1979년 10월 27일, 박정희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자 서울의 대학가 하숙집에선 만세가 울려퍼졌다고 한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구석에서 울고 있고. (웃음) 박정희가 죽었다, 세상은 달라질 것이라 했지만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박정희의 그늘 아래 살고 있다. 역사는 그렇게 칼로 자르듯 정리되고 청산되지 않는다.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건 언제나 필요하다. 어쩌면 지금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타이밍이자 마지막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희, 육영수, 박근혜를 종교처럼 떠받드는 이들을 풍자나 조롱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정중하게 들어준다.

=<공범자들>(2017)을 만든 최승호 선배도 그러더라. 어떻게 그렇게 애정을 담아서 찍을 수 있냐고. (웃음) 처음부터 그들은 내게 풍자의 대상이 아니었다. 풍자라는 건 가장 힘센 자를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풍자했을 때 내가 고생할 가능성이 커야 하고, 주변에서 아무도 풍자하지 않을 때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영화의 주인공인 청주에 사는 조육형씨와 울산의 김종효씨 부부는 어떻게 섭외했나.

=육영수와 박정희의 생가처럼, 특정한 공간에 갈 때마다 만났던 분들이다. 새마을운동과 관련 있는 농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조육형씨가 새마을운동 지도자 1기였다. 그리고 조육형씨가 소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박정희 시절 공화당의 상징이 소였고, 그건 박정희가 생각하는 국민상이 소였다는 얘기다. 울산의 김종효씨 부부를 만났을 땐 마치 영화 <국제시장>(2014)의 주인공 부부가 환생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웃음) 김종효씨는 박정희 시대에 산업화의 역군으로 호명돼 중동에 근로자로 파견 갔던 사람이다. 그런데 박정희, 육영수를 좋아한다는 사실만 빼면 이들 부부도 우리 주변인들과 다를 게 없다. 우리가 박사모라고 퉁 치고 넘어가는 집단 안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들 안에도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선 박정희 시대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일절 시도하지 않는다.

=박정희가 얼마나 영웅적 존재인지 악마적 존재인지 설명하는 데는 아무 관심이 없다. 사람들마다 박정희와 육영수에 대한 저마다의 필터가 있다. 어떤 이들에게 박정희는 소탈한 막걸리로 기억되고, 어떤 이들에겐 시바스 리갈로 기억된다. 두 술은 섞일 수 없다. 내가 설명을 시도하면, ‘쟤는 막걸리 필터를 끼고 세상을 보니 적폐의 대상이야’ 혹은 ‘시바스 리갈의 필터로 세상을 보니 불온한 놈이야’ 그럴 거다. 그렇게 되면 어느 한쪽 진영의 생각만 강화하는 영화가 됐을 거다. 그게 더 프로파간다적이지 않을까. 그건 내가 원하는 접근이 아니었다. 이전에 내가 만든 영화들에 대한 선입견을 버릴 필요도 있다. (웃음)

-박정희 세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거나 질문을 던지지는 않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었으니 이제 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그게 대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들었다면 다시 그들 내부에서 질문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최현숙 작가의 <할배의 탄생>을 보면 작가가 극우화되어가는 가난한 노인들의 생애를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들어준다. 그러면 어느 순간 그들에게서 질문이 나온다. <풍운아 채현국>을 쓴 김주완 기자도 채현국 선생에게 어떻게 극우적 사상을 가진 이들과 대화할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더라. 다시 가르치려 들면 대화는 단절된다. 나의 바람은, 박정희 세대가 이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를 대면했으면 하는 거다. 그들이 가진 확고한 믿음은 바뀌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인정해야 한다. 진짜로 극복하길 바란다면 유연해야 한다. 박정희라는 허들은 굉장히 높은 허들이다. 그 높은 허들을 뛰어넘으려면 유연해져야 한다.

-다음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나.

=<시인>이란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뒤늦게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칠곡에 사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이건 효도 기획성 영화다. 어머니가 교회 권사님들과 <쿼바디스>를 보러 갔는데 영화 끝날 때까지 다들 침묵을 지켰다더라. 어머니께서 동료 권사님들하고 까르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 한편만 만들어 달라셔서 시작한 작품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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