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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②] 정재승 교수에게 들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부터 <엑스마키나>까지 영화로 보는 인공지능 이야기
김현수 송경원 2017-11-06

인공지능이 인간을 미워할 수 있나요?

10월 27일, CJ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신진 작가 기획개발 프로그램 스토리업(STORY UP) 특강의 첫 번째 시간으로,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영화로 보는 인공지능’ 특강이 CGV용산 아이파크몰 4관에서 열렸다. 장장 3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행사의 1부에서는 정재승 교수가 인공지능 기술의 역사 전반에 대해 개괄적으로 소개했다. <씨네21>에서는 정재승 교수의 강의를 발췌, 요약하여 6가지 질문으로 나눠서 정리했다. 거기에 각 질문을 염두에 두고 보면 좋을 영화도 함께 소개한다. 영화가 상상한 미래이자 인공지능이 영화에 던지는 질문이 여기에 있다. 한편, 스토리업 특강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여 신인 스토리텔러 및 예비 창작자의 참신한 스토리 기획과 완성도 높은 스토리 구현에 기여하기 위한 전문 토크 프로그램으로, 이후 이수정 교수의 ‘영화로 보는 인격장애’(11월 17일),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의 ‘영화로 보는 강력범죄’(12월 16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Q1. 로봇은 인간의 경쟁자인가

“19세기 미국의 철도노동자 존 헨리에 관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회사에서 터널 굴착 작업에 기계를 도입하기로 하자 사람들은 기계에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이에 존 헨리는 기계와의 굴착 시합을 제안하고 결국 승리했다. 하지만 기계보다 터널을 먼저 뚫은 존 헨리는 나오자마자 사망하고 말았다. 실화가 아니라 소설 속 우화,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죽을 만큼 일해야 기계를 이길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다. 시간이 흘러 1997년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난다.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가 체스 챔피언 개리 카스파로프와 대결을 벌여 승리한 것이다. 딥 블루의 승리만큼 안쓰러웠던 건 분노하고 흥분한 챔피언의 모습이었다.

다시 시간이 흘러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승리를 거뒀다. 1956년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 겨우 60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우리는 꾸준히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치고 들어오는 걸 목격해왔다. 제조업 분야에 대한 기계의 위협은 러다이트운동(1811∼17년 영국 직물공업지대에서 일어났던 기계 파괴운동)을 불러왔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딥 블루는 분석력에 있어서 인간이 기계에 추월당할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줬지만 그래도 직관과 추론의 영역은 인간을 따라올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알파고의 등장으로 그 믿음도 깨지고 있다. 그래서 기계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은 걸까. 아니다. 제조업의 일자리가 줄어든 만큼 서비스 노동자가 늘었으니 경쟁이라기보다 변화라고 불러야 한다. 그리고 지금 다시, 위협의 종류가 변했다. 육체노동자에서 지식노동자로 말이다.”(정재승)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T-800

SF는 미래에 관한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오늘의 삶을 이야기하는 일종의 우화다. 기계가 사람의 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공포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거쳐 암울한 미래의 초상으로 종종 나타난다. 스카이넷이라는 인공지능이 자아를 가지며 전 인류와 전쟁을 벌인다는 설정의 <터미네이터>는 인류의 불안을 구체적으로 그려나간다. 인간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한 스카이넷은 인류 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의 존재를 말살하기 위해 과거로 파괴 로봇을 보내고 이를 막기 위한 저항군이 과거로 투입되며 상황이 전개된다. 1편에서 암살자로 나온 터미네이터 T-800이 2편에서는 저항군에 의해 개조되어 보호자로 등장하면서 어린 존 코너에게 인간미를 배워간다는 게 매력 포인트. 2편이 1편보다 인상적인 보기 드문 시리즈로 기억된다.

Q2. 컴퓨터와 인간의 뇌는 어떻게 다른가

“컴퓨터는 기존의 기계와는 전혀 다른 물건이다. 이전까지 기계는 용도가 정확히 정해져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컴퓨터는 용도를 특정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동시에 디자인된 프로그램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존 폰 노이만, 앨런 튜링 등 수학자들의 손에 의해 탄생했기에 수학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는 장치, 완결된 알고리즘을 문자와 언어로 표현하는 기계인 셈이다. 인간의 뇌와는 완전히 다른 지점에서 디자인된 거다. 일례로 컴퓨터는 하드웨어를 본다고 해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소프트웨어와 완전 별개이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의 뇌를 보면 성별, 취향, 심지어 직업까지 판별해낼 수 있다. 인간의 뇌는 구조가 기능을 담아내고 있다. 신경의 형태가 곧 인지의 패턴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기억을 저장하는 곳과 처리하는 곳이 동일하다. 뇌가 마냥 커질 수 없기 때문에 한정된 공간에서 효율적인 구조를 취한 결과다. 하지만 컴퓨터의 경우 원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만 있다면 무한히 커질 수 있다. 중앙처리장치와 메모리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경우 기존의 데이터를 기억, 조합, 확장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반면 인간의 지성은 데이터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전복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데이터를 부정하고 데이터가 말하지 않는 걸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인공지능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특화되어 있고 인간의 지성은 문제를 정의내리는 데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언젠가는 우리가 창의성이라 부르는 영역까지 인공지능이 따라잡을지도 모를 일이지만.”(정재승)

<이미테이션 게임>(2014)의 앨런 튜링

수학자 앨런 튜링이 만든 튜링 머신은 컴퓨터의 전신이다. 앨런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의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할 기계를 개발하기 위해 영국의 국가기관 블레츨리 연구소에 들어가게 된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튜링이 연구소에서 에니그마를 풀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튜링 머신은 특정 작업을 위해 입력된 프로그램을 모방하여 해당 작업을 수행하는 모방기기, 즉 이미테이션 머신이다. 영화 속 앨런 튜링은 비사교적이고 타인과의 소통에 곤란을 겪는 천재로 나온다. 수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인데 문제는 이를 사회적 언어로 번역하지 않은 채 그대로 표출하기 때문이다. 개발자의 언어로 말하고 정해진 알고리즘으로 행동하는, 기계를 닮은 사람이라 봐도 좋겠다. 앨런 튜링은 기계가 언젠가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다고 믿었고 기계가 얼마나 사람스러운지를 구분하는 튜링 테스트를 고안했다.

<트랜센던스>(2014)의 슈퍼컴퓨터 트렌센던스

인간의 지성이 디지털 신호화되어 컴퓨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트랜센던스>는 천재 과학자 윌(조니 뎁)의 두뇌가 슈퍼컴퓨터에 업로드되어 의식을 가지게 된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윌은 기계가 인류를 공격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힌 테러단체에 의해 목숨을 잃고 연인인 에블린(레베카 홀)이 그를 컴퓨터상에서 되살리는 데 성공한다. 기술적인 한계나 뇌와 컴퓨터의 메커니즘 차이는 둘째 치고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레베카는 윌의 기억과 인격을 가진 존재가 과연 남편인지, 아니면 남편을 흉내내고 있는 인공지능에 불과한지 끊임없이 반문한다. 다소 진부한 결말보다 “인간은 알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트랜센던스’의 한마디가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꿰뚫는다. 결국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상상력은 우리의 거울인 셈이다.

Q3.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을 뛰어넘었나

“사람에게 쉬운 것이 인공지능에겐 어렵고 반대로 인공지능에겐 쉬운 것이 사람에겐 무척 어려울 수 있다. 가령 인공지능은 복잡한 계산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지만 얼굴을 구분하는 간단한 인지과정을 쉽게 처리하지 못하기도 한다. 정보를 이해한다는 개념이 아직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딥 러닝은 이런 프로그램의 부재를 뛰어넘기 위한 방편이다. 10년 전만 해도 전문가들은 딥 러닝의 가능성을 신뢰하지 않았다. 데이터가 있으면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를 이해하는 과정을 짜서 아웃풋을 뽑아내는 게 기본 모델이었다. 반면 딥 러닝은 정보의 이해처리 과정을 건너뛰고 데이터의 축적을 통해 결과값으로 바로 연결시키는 방식이다. 수많은 데이터와 아웃풋을 결합해 최적의 결과값을 도출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바둑의 경우 경기 규칙과 이기는 법을 입력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패턴들, 수많은 기보와 사례들을 곧바로 입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데이터가 쌓이면 최적의 결과값에 도달한다. 예전에는 그만큼 방대한 데이터를 모으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지만 현재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인공지능은 아직 바둑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바둑을 이기는 법을 알게된 것이다. 아직 추론과 직관 능력이 있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행동과 결과는 그에 유사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정재승)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의 자비스와 울트론

토니 스타크의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는 <아이언맨>(2008)부터 등장한 토니 스타크의 단짝이다. 스타크 타워의 컨트롤을 담당하고 있는 인공지능에게 인간미를 느끼는 건 스타크에게 한치도 밀리지 않는 탁월한 유머 감각 덕분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그런 자비스의 메커니즘이 처음으로 밝혀진다. <어벤져스> 1편에서 외계인의 뉴욕 침공을 체험한 토니는 인공지능을 업그레이드시켜 방어를 위한 힘을 갖추고자 한다. 토니는 브루스 배너와 함께 인공지능을 개발하기로 하고 치타우리 외계인이 남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울트론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인류의 방패로 삼기 위해 제작된 울트론은 자아를 가지자마자 인류를 제거해야 할 위협으로 보고 어벤져스를 향한 공격을 시작한다. 인공지능 개발에 생명공학자 브루스 박사의 도움을 받았다는 게 포인트. 영화 속 울트론과 자비스의 프로그램 이미지는 사람의 뇌세포를 닮았다.

<인터스텔라>(2014)의 타스

유머가 사람을 만든다. <인터스텔라>에서 가장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는 탐사보조로봇 타스다. 기존 SF영화 속 사람을 닮은 안드로이드와 달리 타스는 직육면체의 투박하고 단순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도저히 인간다움을 느낄 만한 디자인이 아님에도 타스의 존재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건 특유의 유머 감각이다. 쿠퍼(매튜 매커너헤이)에 의해 수시로 조정되는 유머지수는 진지한 분위기의 작품 속에 가벼운 활력을 부여한다. 그 역할을 담당한 캐릭터가 딱딱함을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군용로봇 타스라는 사실 자체가 잘 짜인 농담이나 다름없다. 자아의 유무를 떠나 인간보다 뛰어난 연상 능력을 가지고 우주여행을 돕는 훌륭한 파트너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인간의 기분을 달래주는 유머 감각 역시 타스에겐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일 테지만.

Q4. 인공지능이 인간을 미워할 수 있나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적대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들이 필요하다. 첫째, 스스로 자신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둘째,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야 하며 셋째, 그 목적에 인간이 방해된다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로서 가장 어려운 건 전제가 되는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일이다. 이를테면 정체성, 감정, 욕망을 지닐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어렵다. 왜냐하면 인간 스스로도 뇌에 욕망이란 기능이 어떻게 탑재되어 있고 감정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건 <아이, 로봇>(2004)에 나오는 로봇처럼 매우 희박한 확률로 발생할 돌연변이를 기대하는 거다. 우주의 탄생, 생물의 진화가 우연의 산물이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접근이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흡사해지는 방식은 원리적으로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인간의 뇌를 완벽히 이해해서 그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을 컴퓨터에 프로그램화하는 것이다. 현재는, 하드웨어는 기계적 메커니즘을 따르되 소프트웨어는 딥 러닝 등 인간의 뇌를 트랜스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따로 발전 중이다. 언젠가는 두 가지가 겹칠 수도 있을 것이다. 뇌과학이 얼마나 발달할 수 있을지에 따라 달라질 미래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뇌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의식이 탄생할 가능성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원리의 감정과 욕구가 생겨나지 않을 거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이런 경우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인 만큼 아직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정재승)

<그녀>(2013)의 사만다

아내와 별거한 뒤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와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달랜다. 사만다는 테오도르가 공허를 느끼는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어 위로의 말을 건네고 테오도르는 사만다의 배려에 점차 사랑의 감정이 피어난다. 사랑이 무언지 정의내리긴 불가능하다. 하지만 감정이 주고받는 관계에서 피어나는 것이라면 테오도르와 인공지능 사이의 교감은 분명한 실체가 있다. 적어도 종반 이전까지 그렇게 느껴진다. 하지만 학습하는 인공지능 사만다는 수많은 사람과의 데이터를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점차 바뀌어나가고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더이상 자신이 처음 끌렸던 사만다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사랑은 독점이 가능한 것일까. 사랑과 소유욕을 분리할 수 있을까. 단지 인공지능이 얼마나 진짜 같은지를 넘어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 별다른 특수효과 하나 없이 구체적인 미래를 그린다.

<엑스마키나>(2015)의 에이바

프로그래머 칼렙(도널 글리슨)은 인공지능 분야의 천재 네이든(오스카 아이삭)의 초청을 받아 그의 비밀 연구소에 머문다. 그곳에서 칼렙은 네이든이 창조한 매혹적인 A.I.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를 만나고 이내 빠져든다. 칼렙이 에이바에게 느끼는 감정을 얼마나 구분할 수 있을지, 에이바를 사람과 같다고 인식할지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튜링 테스트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연극 같은 전개를 통해 오래된 질문들을 깊게 사유하는 영화. 인간의 존재, 의식의 개념, 사람을 닮은 존재에 대한 매혹과 공포, 로봇에 대한 윤리 등 인공지능에 관한 해묵은 질문들을 극적 긴장감에 맞춰 밀도 높게 파고든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인간답다고 느끼는지, 인간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질문을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그간 잊고 있던 중요한 문제를 자각한다. 자아가 생긴 인공지능은 인간을 어떤 존재로 인식할 것인가.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볼 때 심연 또한 우리를 바라본다”.

Q5. 왜 사람과 닮은 형상의 로봇, 휴머노이드를 만들까

“로봇의 본질은 한마디로 지능을 가진 상태로서 움직이면서 다른 존재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존재다. 지능이 없고 상호작용을 못하면 그저 기계, 장난감일 뿐. 인공지능 로봇에 관해 산업에서 가장 먼저 주목한 곳은 자동차 회사였다. 자동차는 기계가 똑똑하고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은 자동차가 곧 로봇이 될 거라고 여겼다. 그들이 미국보다 먼저 휴머노이드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트랜스포머> 같은 만화가 탄생했다. 미국은 로봇을 실용적으로 대해서 노동을 대체해주는 존재가 굳이 사람 형상을 띨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 MIT 미디어랩에서 본격적으로 휴머노이드 연구를 하면서부터 사람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로봇 연구가 본격화 된다. 로봇에게 사람의 목소리를 부여하려다 끝내 실패하고 만들어낸 것이 신시사이저다. 친근함을 강조하는 서비스업 계통에서 휴머노이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닫기 시작한다. 지금도 휴머노이드 연구자들이 밤낮으로 안정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휴머노이드가 일상화되는 시기는 아마도 로봇 렌털 회사가 생길 때가 될 것 같다. 로봇을 구입하지 않아도 회사가 관리해주면 사람들이 로봇을 자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이라면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원어민형 휴머노이드나 수학 문제를 풀어주는 교육용 로봇이 가장 먼저 도입될 것 같다.”(정재승)

<A.I.>(2001)의 데이빗

인간을 사랑하는 로봇을 만들자. <A.I.>에서 ‘진화신경망’이라는 마음을 가진 로봇을 개발해낸 과학자들과 로봇 렌털 업체는 로봇이 인간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지를 상업적으로 따져 묻는다. 몇 가지 단어만 주입시키면 특정 기억을 영구 소장하게 되고 또 폐기를 원할 때는 소멸시키는 것. 로봇을 대하는 인간의 윤리 문제에도 대응하는 영화 속 로봇 렌털 업체의 씁쓸한 전략이다. 그럼에도 영화 속 주인공들과 보는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로봇 데이빗(할리 조엘 오스먼트)이 진짜 아이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꼭 닮은 형상을 했다는 죄로. “엄마는 네가 아니라 너의 임무를 사랑하는 거야”라는 극중 대사가 뜻하듯 휴머노이드의 슬픔도 곧 현실화될지 모른다.

<바이센테니얼맨>(1999)의 앤드류

가사 노동을 대신 해주는 일종의 가전제품 로봇인 앤드류(로빈 윌리엄스)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휴머노이드다. 그가 기술적인 결함으로 지적인 호기심을 갖게 되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자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얼굴을 원한다는 설정은 인간과 로봇의 상호관계에서 흥미로운 지점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로봇의 입장에서 인간의 본질을 뭐라고 여길까를 되물어볼 수 있다. 로봇 앤드류는 인간의 얼굴을 가장 먼저 택한다. 물론 영화는 앤드류 스스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수십년간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첫걸음은 인간과 똑같은 형상을 지니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의 마지막 보루가 ‘인간형’이 아닌 시대가 도래한다면 인간 스스로 인간의 본질에 대해 더욱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Q6. 섹스 없이도 쾌락을 누릴 수 있다면?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몸놀림이 부드러워지고 피부에 이질감이 없고 사람과 흡사해지면 성적인 영역도 함께 발전한다. 딜도, 바이브레이터 같은 섹스 토이를 포함해 휴머노이드는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인간을 앞지를 것이다. 주드 로의 외모라든가 목소리가 스칼렛 요한슨인 휴머노이드가 있는데 사람들이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구애 행위를 통한 성적 관계를 만들려고 애쓸까? 일부일처제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과거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포르노그래피가 등장했듯이 휴머노이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술이 정교화되면서 사람의 형상에 가까워지고 지능을 지닌 데다 소셜 상호작용이 가능한 휴머노이드 앞에서 우린 어떻게 할 것인가. 이야기를 상상해본다면 내 여자친구가 휴머노이드와 관계를 맺는 것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이를 합법적으로 인정해야 할까?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여기에 더해 가상현실(VR)까지 개입하면 실재와 혼재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훨씬 더 큰 자극을 통해 만족감을 얻게 될 것이다. 기계로 뇌에 직접 중추신경을 자극해 쾌락까지 더해준다면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지 모른다.”(정재승)

<데몰리션맨>(1993)의 스파르탄

냉동 수면과학 기술을 개발한 먼 미래. 인간이 늙지 않고 미래에 다시 깨어날 수 있게 된다. 주인공 스파르탄(실베스터 스탤론)은 변해버린 화장실과 변해버린 식재료 등에 당혹해한다. 그중에서 주인공이 가장 당혹해하는 설정이 바로 미래의 변해버린 섹스 방식이다. 영화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피부를 접촉하지 않고도 서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을 보여준다. 가상현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곧 실현 가능해질 것도 같다. 앞서 정재승 교수가 자세히 설명했듯 인간은 더이상 몸과 몸을 부딪쳐가며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될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써로게이트>(2009)나 <월·Ⓔ>(2008)가 보여주듯 로봇이나 아바타가 대신 삶을 살고 인간은 그저 나약한 육체 뒤로 숨어버린다면 진정한 감각이 무엇인지 잃어버리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그런데 가상 섹스의 영역에서 감각 외에 운동량은 무엇으로 대체할지 그럴싸하게 제시해준 영화는 아직 없다.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의 K

이 영화에는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섹스 이상의 고차원적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리플리컨트 K(라이언 고슬링)의 애인 조이(아나 데 아르마스)는 홀로그램으로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 따라서 K는 인간은 아니지만 물리적인 섹스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조이와의 섹스는 불가능하므로 다른 리플리컨트의 몸체를 빌려와 거기에 조이의 홀로그램을 입힌 뒤 관계를 맺는다. 상당히 복잡한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이 아닌 리플리컨트 K 역시 오직 쾌락만을 좇는 가상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진짜 감정, 진짜 관계 맺기라는 것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역설적으로 되묻게 만드는 섹스 신이었다. 적어도 2049년까지는 미래에 펼쳐질 섹스를 훌륭하게 점쳐본 과거 영화의 사례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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