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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실> 이용승 감독 - 을과 을의 세계
임수연 사진 최성열 2017-11-15

이용승 감독은 장편 데뷔작 <10분>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신예 감독의 미학적 고민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탁월한 공간을 발견했다. 공공기관의 좁은 임시 사무실은 창작자에게 좋은 실험실이었고, <10분>은 사회 비판과 프레임 구성에 대한 재미있는 시도가 함께 엿보이는 인상적인 데뷔작이 됐다. 4년 만에 만든 차기작 <7호실>은 압구정 로데오에서 망해가는 DVD방을 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식(신하균)과 학자금 부채로 고생하는 아르바이트생 태정(도경수)의 신경전을 다룬다. 대부분의 사건이 벌어지는 DVD방은 영화로 다루기에 다소 도전적이지만 매력적이다. 10년 전에는 번성했지만 지금은 쇠락했고 온갖 장르영화가 뒤섞인 풍경이 자연스럽다. 개인적인 영화 취향과 부동산 거품을 비롯한 사회문제를 융합시킬 수 있는 이 독특한 공간을 중심으로 그의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DVD방을 시나리오의 주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10분> 당시 관객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회사 때려치우면 장사나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영업자의 이야기를 썼다. 어떤 업종을 선택해야 하나 고민할 때 DVD방 아르바이트를 이틀간 했던 경험이 떠오르더라.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단 이틀의 경험이 영화의 소재가 됐나.

=<7호실>의 두식처럼 내가 일했던 DVD방 사장님도 장사가 너무 안 돼서 가게를 내놨는데 안 팔린다고 말했다. 형편이 안 좋으니 그는 밤에 대리운전을 했고, 두식처럼 무언가를 신봉했다. 첫날에는 그냥 일만 배우고 다음날 첫 손님을 받았는데, 커플이 가게에 들어올 때부터 뭔가 느낌이 이상하더라. (웃음) 그러고는 방 안에서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져서 깜짝 놀랐다. 도저히 DVD방 아르바이트는 못하겠다 싶어서 바로 그만뒀다.

-<10분>에서는 주인공 호찬(백종환)에게 모든 고난이 집중됐다면, <7호실>은 DVD방을 둘러싼 여러 인물에게 두루 고충이 있다.

=<10분>이 갑을 관계를 다뤘다면, <7호실>은 세분화된 을을 그리고 싶었다. DVD방 사장인 두식이 상위의 을, 그 아래에는 아르바이트생 태정. 그 아래에는 조선족 아르바이트생 한욱(김동영)이 있다. 건물 관리인은 부동사 중개인과의 관계에서는 갑에 가깝지만 건물주에게는 보증금, 월세를 올리지 못하면 궂은 말을 듣는다. 영화를 볼 땐 그냥 흘러가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을의 세계가 세부적으로 구분된 것을 발견하는 게 작품을 보는 재미가 되도록 했다.

-오프닝 타이틀도 그렇고 ‘7호실’ 중에서도 ‘7’이란 숫자가 유독 강조되던데.

=7은 행운을 일컫는 숫자지만 ‘7호실’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게 장례식장이다. 그렇게 양가적인 특성을 담고 싶었다. 이곳은 원래 두식에게 종교적인 신봉의 공간이었다가, 태정이 마약을 숨기는 은밀한 공간이 됐다가, 어느 순간 장례식장 같은 곳이 된다. 종교와 죽음이 하나로 맞물리며 동시에 장르영화로 바뀌는 느낌을 의도했다.

-사회 드라마로 풀어낼 수도 있었을 스토리를 호러, 스릴러, 블랙코미디 등 장르영화의 문법으로 다룬 이유는 무엇인가.

=<10분>을 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너무 화가 난다”는 거였다.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들의 분노를 유발한 것이다. 나 역시 찍으면서 배우에게 계속 죽상을 하도록 시키니까 보는 사람이 힘들어지더라. 이런 트라우마의 시간을 꼭 현실적으로만 그릴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진 후에는 장르영화처럼 다뤄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러면 트라우마가 배우의 죽상이 아닌 장르 특유의 분위기로 기억되지 않겠나. 마지막에 느껴지는 정서도 좀 다를 테고. 도전해볼 만한 젊은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지만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도 이게 영화를 보여주는 가장 윤리적인 방식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렇게 확신한 이유가 뭔가.

=마지막에 주인공은 문제를 그냥 안고 간다. 리얼리티로 그려내면 지금과 다른 연기 톤이 됐을 것이고, 그런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10분>과 같은 패턴이 된다. <10분>과 정반대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준비한 작품을 결국 똑같이 만드는 꼴이다. 그렇게 장르의 혼합을 택하는 쪽이 창작자의 윤리성을 확보하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들이 겪는 심각한 트라우마가 블랙코미디로 승화되는 순간도 있다. 어떤 관객은 이를 불편해하거나 윤리적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정서까지도 두식이 안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두식이 할 수 있는 건 당장 직면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그래서 나오는 그때그때 영화의 분위기가 수용되기를 바랐다. 결국 영화가 사람을 대하는 전반적인 태도는 약자의 배척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장르적으로 트라우마를 다뤄도 윤리적으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엔딩을 어떻게 맺을 것인가를 두고 제작사 명필름과 고민을 많이 했다고.

=다양한 버전의 시나리오가 있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최선이 지금의 엔딩이다. 태정이 소년의 도덕적인 용기를 보여준다면, 두식의 태도는 유보에 가깝다. 엔딩 이후 두식이 어떤 행동을 할지는 그와 관객의 몫이다. 그게 가장 여운이 있으면서 최선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마무리였다.

<7호실>

-<10분>에 이어 <7호실>도 2.35:1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촬영했다.

=<10분>은 반드시 2.35:1로 찍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작품이다. 회사가 배경이니까 화면 양옆에 무언가를 채워넣기도 수월했다. 반면 <7호실>은 처음에는 1.85:1을 생각했다. 그런데 <10분>을 함께 했던 성승택 촬영감독이 넓은 화면으로 가자고 제안하더라. 아무래도 짧은 시간에 상업영화를 완성해야 하는 프로젝트 아닌가. 이 비율로 찍으면 오히려 후반작업을 할 때 화면을 위아래로 조정하는 등의 유연한 작업이 가능해진다. DVD방이 양옆으로 뭔가 보여주기 힘든 구조라서 전작보다 카메라의 움직임을 많이 활용했다. 또 DVD방을 벗어나 야외촬영을 할 때 이 영화가 시네마스코프 비율의 느낌을 주게끔 가로축을 많이 쓰는 화면을 구성했다. 막판에 태정이 담배를 피우면서 다리쪽으로 걷는 장면 같은 것들이 그 예다.

-가로가 긴 화면 비율로 찍었지만 스크린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방향으로 DVD방의 복도가 뻗어 있다.

=원래는 DVD방 전체가 십자가 모양으로 그려지기를 의도했는데 사람 눈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시각화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 (웃음) 그래서 대신 사람처럼 만들었다. 7호실이 머리, 7호실로 가는 복도가 척추, 양쪽에 늘어선 방이 팔에 해당하는 거다. 그런데 DVD방 자체의 규모감이 있으니 그 느낌이 잘 안 살아서 애매하게 됐다.

-<10분>에는 캐릭터들이 한 프레임 안에 놓인 방식으로 인물 사이의 권력 관계를 보여줬다. <7호실>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시궁창 안에 있다. 화면 안에 그들을 배치시키는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을이 존재하는 상황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부동산 장면이다. 거울을 활용해 2:2 싸움이었다가 1:1 싸움이 되는 과정을 화면에 담았다. DVD방에서 한욱의 첫 출근날 3명이 한 공간에 있는 장면은 <10분>에서 자주 썼던 방식으로 프레임을 구성했지만 일부러 전작보다 좁은 공간으로 인물들을 몰아넣었다. 전부 다 을이니까 좀더 갑갑하게.

-DVD방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어떤 컨셉하에 이루어졌나.

=방길성 미술감독이 제안한 것은 침몰하는 배 안의 선실 같은 이미지였다. 계속 잠수함 사진 같은 것을 참고용으로 보여주더라. 한정된 장소에서 찍었지만 어느 정도의 사이즈감과 돈을 쓴 느낌이 나는 게 중요했다. 공간이 작게만 보이지 않게 타일이나 마루, 문짝을 디자인했다. 방 안에 걸어두는 옷 같은 오브제도 신경 썼다. 돈이 없어도 가격 대비 가장 예쁘고 좋아 보이는 옷을 사는 캐릭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두식이나 태정이나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있을 법한, 가난하지만 힙한 인물을 염두에 뒀으니까. 아무래도 인물을 보는 재미는 포기하면 안 된다. 그외에 DVD방에 붙인 고전영화 포스터는 미술감독이 많이 골랐다. 작품 자체에 어떤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저작권 문제에 열려 있는 영화 중 색감을 고려해 선택한 거다.

-신하균과 도경수는 현장에서 어땠나.

=기본적으로 <7호실>은 30대 감독인 내가 20대 소년과 40대 중년을 바라보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둘 다 하고 싶은 연기를 할 수 있게 열어놨다. 영화의 장르가 계속 바뀌는데, 신하균 선배는 내내 정중앙에 딱 서서 연기한다. 그럼 내가 연출을 맞추기가 수월해진다. 도경수는 내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20대의 음악 하는 청년의 모습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분석할 줄 알았다. 아무래도 주변에 음악 하는 친구들도 많고 하니까. 그래서 그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했다. 태정은 어떤 옷을 입을 것이고, 이런 식으로 울지는 않을 것 같고, 이런 말투를 쓸 것 같다는 것, 음악을 하는 친구들은 대체로 어떤 지역에 몰려 사니까 자취방의 위치는 이런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까지.

-두식이 태정에게 “너도 약 해봤지?”라고 끈질기게 묻는 장면은 거의 애드리브라고 들었다.

=원래 컷을 하지 않고 그냥 배우들을 놔두는 스타일이다. 그러면 그들은 늘 무언가를 한다. 그게 참 좋더라. 영화에는 짧게 들어갔지만 도경수가 캐리어를 끌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장면은 8분동안 계속 찍었다. 캐리어 무게감이 있어서 꽤 무거웠을 텐데. (웃음) 이 장면을 내가 무척 좋아한다. 그때 도경수가 보여준 모습이 곧 태정의 얼굴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10분> <7호실>에서 비정규직이나 자영업과 같은 사회문제를 다뤘다. 앞으로의 작품도 유사한 방향일 것 같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먹고사는 일에 직면한 문제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이야기가 됐다. 내가 어떤 영화를 만들지는 혼자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산업 시스템 안에서 해야 할 일이니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내 인생의 3~4년을 투자했으면 좋은 선물 같은 작품이 나와야 하지 않겠나. 어떤 이야기를 던져야 그런 의미 있는 결과물이 나올까. 일단 <7호실>에 대한 관객 반응을 보고 그다음 움직임을 생각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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