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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와 마녀의 꽃> 지브리 그 이후를 말하다
송경원 2017-12-11

포스트 미야자키들이 이끄는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명암과 행보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는 집단 창작의 결과물이다. 감독이 설정한 방향 외에도 스탭의 개성이 영화의 요소요소에 영감을 부여한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연출의 구성만큼 중요한 게 바로 작화다. 제작 스튜디오의 특색이 더욱 도드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가 그렸나, 어떤 이들의 그림체인가 하는 점이 곧 작품의 정체성이 된다. 오랜 시간 일본 극장애니메이션의 대표주자는 스튜디오 지브리였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장을 탄생시킨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대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이는 생태주의와 애니미즘, 아나키스트적인 사고, 하늘에 대한 동경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특징으로 연결되는 스타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형태가 프로듀서 니시무라 요시아키의 비전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브리의 색감은 야스다 미치요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고, 살아 있는 듯한 물의 곡선은 지브리가 배출해온 숱한 작화감독들의 솜씨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해체된 뒤에도 그 유산을 물려받은 이들은 여전히 일본 애니메이션계 곳곳에서 활약 중이다.

<메리와 마녀의 꽃>에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니시무라 요시아키 프로듀서가 설립한 스튜디오 포녹에는 지브리의 인력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창립작인 <메리와 마녀의 꽃>의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는 지브리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2010), <추억의 마니>(2014) 등을 연출하며 포스트 미야자키의 유력한 후보 중 한 사람이었다. 물론 <메리와 마녀의 꽃>은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상당 부분 차이가 있다. 미야자키가 본인의 이상과 의지를 작품 속에 녹여내는 데 집중했다면 요네바야시 감독은 미야자키보다 훨씬 친절하고, 대중적인 서사에 거부감이 없다. 그럼에도 애니메이션 정체성의 핵심이랄 수 있는 작화 스타일이 상당 부분 겹치는 것만으로도 지브리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하기에 충분하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양식을 기계적으로 나누면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것들(정확히는 선사에 해당하는 조몬 시대)에 기반한 애니미즘적 판타지, 다른 하나는 서구에 기반한 동화적 세계다. 요네바야시 감독은 두말할 것도 없이 후자에 해당한다. 지브리에서 작업한 두편의 영화 역시 동화 원작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었고, 이번 신작 <메리와 마녀의 꽃> 또한 영국 소설가 메리 스튜어트의 <The Little Broomstick>을 원작으로 했다. 다시 말해 지브리의 계승과 요네바야시의 스타일이라는 두 방향의 교차점 위에 서 있는 작품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지금 호황기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오랫동안 포스트 미야자키를 찾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자는 80년대부터 일본 극장애니메이션의 부흥과 함께해왔지만 미야자키 이외의 대안을 만드는 데는 지지부진했던 게 사실이다.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난 곤도 요시후미를 비롯해 오시이 마모루, 가타부타 스나오, 호소다 마모루, 안도 마사시 등 숱한 애니메이터를 배출했지만 미야자키라는 거대한 그늘을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았다. 존재감이 지나치게 큰 탓도 있었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폐쇄적인 작업 방식 때문이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해체된 다음에야 일본 애니메이션의 다음 단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어쩌면 꾸준히 존재해왔던 움직임들. 다만 지브리라는 환상, 그림자 때문에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을 따름이다. 결과적으로 말해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계는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동시에 급격히 커진 성장세만큼 아슬아슬한 위험도 함께 품고 있다. 산업적인 지표를 놓고 보면 명백한 부흥기라 할 만하지만 80, 90년대 재패니메이션 정도의 문화적 파급력과 내실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기로에 서 있다고 해도 좋겠다.

<NHK>에 따르면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규모는 2016년 처음으로 2조엔을 넘어섰다. 일본 동화협회가 100여곳의 제작사를 대상으로 산출한 결과 극장 수입과 DVD 판매 등 작품의 직접적인 수익이 7676억엔, 캐릭터 굿즈 수익이 5627억엔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이벤트의 다각화, <너의 이름은.> 등의 히트작들이 동력이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짧은 TV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제작편수만 해도 300편을 돌파했고 수익 측면에서 보면 역대 최고였던 2012년 이후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2016)의 경우 일본 역대 박스오피스 4위에 오르는 기록적인 흥행으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경영 악화와 수익을 이유로 잠정 해체를 결정한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주목할 만한 건 2009년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양적으론 팽창했지만 질적으로는 하향 평준화, 특정 그룹에 의존하는 폐쇄적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현재를 알기 위해서는 이같은 괴리를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신카이 마코토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르다

<너의 이름은.>의 흥행을 두고 신카이 마코토를 포스트 미야자키의 대열에 합류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신카이 마코토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접점은 ‘기록적인 흥행’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신카이 마코토가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인식이 변화한 징후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배급사 도호가 호소다 마모루나 지브리가 아닌 신카이 마코토를 여름 애니메이션 대표주자로 전면에 내세운 건 이같은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카이 마코토는 소위 ‘세카이계’로 불리는 경향의 대표주자다. 장르적인 형식으로 규정짓긴 어렵지만 세카이계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 등장한 제로연대(2000년 이후)의 오타쿠 문화의 일면을 떠받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70년대 야마토, 80년대 건담, 90년대 에반게리온 등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주자가 있다면 2000년 이후에는 뚜렷이 묶어낼 만한 히트작이 없었기에 특정 세계관이나 형태로 규정짓는 것이라 해도 좋겠다. 세카이계는 오랜 시간 변방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일본 내 산업적인 활황에도 불구하고 2000년 중반부터 대략 10년간 해외에서 서브 컬처로서의 영향력을 꾸준히 잃어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70, 80년대 유럽과 아시아 시장을 점령한 TV애니메이션, <아키라> <공각기동대> 등 소위 ‘아니메’라 지칭되는 컬트적 인기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2000년 초반 <포켓몬스터> 등 몇몇 히트 상품이 있었지만 확산력에 비해 지속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정리하자면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은 점차 소수 마니아들의 기호를 맞추고 그들로부터 수익을 거두는 폐쇄적인 구조에 집중하며 수익만 불려나갔다.

<마루 밑 아리에티>

2000년 초반 이후 TV애니메이션은 점차 심야시간대로 밀려났고 충성도 높은 소수의 코어 소비자를 위한 작품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제작 분기는 짧아지고 부가 캐릭터 상품의 가격을 올려 수익을 취하는 구조가 이어졌다.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다양성 측면에서는 명백히 침체기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2007년부터 대략 3, 4년간 지속적인 감소 추세가 이어지며 위기론이 대두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차례 변화가 더 일어난다. 2010년을 기점으로 꺾인 줄 알았던 시장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작품의 다변화와 양적 폭발이었다. 미소녀 애니메이션에 치중했던 장르들이 다양해졌고 오리지널 스토리도 적지 않게 등장했다. 넷플릭스 등 해외 시장의 다변화가 가능해진 것도 출구 중 하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OLM(Oriental Light & Magic), 선라이즈, 교토 애니메이션, 가이낙스, 매드하우스, 곤조, 프로덕션 I.G, 다쓰노코 프로덕션 등 명가라고 해도 좋을 여러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꾸준히 자신의 색깔과 개성이 있는 작품들을 양산하여 선보였고 시청자가 이에 호응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80, 90년대 전설적인 작품이 있었다고 하지만 양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팽창한 지금 상황에서 그에 못지않은 작품들도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워낙에 작품이 많고 주기가 짧은 까닭에 과거처럼 집중적인 주목을 받기 어려울 따름이다. 그 끝에 <너의 이름은.>이 등장했다. 이 작품의 흥행은 단순히 한 작품의 흥행이라기보다는 인식의 변화, 환경의 변화,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추억의 마니>

파이는 창작자에게 나눠지지 않는다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우선 산업의 수익이 제작사에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구조다. 워낙에 제작사간의 경쟁이 치열한 탓도 있지만 현재 수치상의 성장은 제작단가를 낮추고 수익을 거두는 방식 덕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몰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제작위원회를 중심으로 작품을 수주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제작자, 창작자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고착화되었다. 제작사가 넘쳐나는 건 제작환경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배급, 유통을 담당하는 회사들이 실질적인 수익을 독차지하는 구조인 까닭에 제작사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 불공정한 계약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견디다 못해 나온 애니메이터들은 신생 제작사를 설립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져 또다시 착취가 반복된다.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경력자, 우수한 애니메이터들이 지속적으로 공급될수록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70, 80년대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을 각자의 노하우를 지키기 위해 매우 폐쇄적인 방식으로 제작을 했다. 반면 현재는 생존을 위해 회사의 간판이 바뀔지 몰라도 애니메이터는 여러 작품, 여러 스튜디오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인력들이 스튜디오 포녹으로 고스란히 옮겨오는 상황에서 지브리와 닮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메리와 마녀의 꽃>이 태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아니 필연적인 결과물인 셈이다.

일본 애니메이션계는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작품 수도 많고 형태도 다양하다. 하지만 애니메이터들이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냐고 묻는다면 주저할 수밖에 없다. 성장의 과실은 창작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경쟁은 점차 치열해지며 한 작품에 온전히 공을 들일 여지가 줄어든다. 그 결과 감독의 개성은 지워지고 양산된 엇비슷한 작품들이 넘쳐나고 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기억할 만한 작품들은 꾸준히 나온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개성, 방대한 이야기와 오리지널 스토리, 시대의 대표로 기억되는 문화적 파급력을 지니고 있냐고 묻는다면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창작자의 영토를 보존하기 힘든 상황에서 현재의 성장과 가능성들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너의 이름은.>의 흥행과 <메리와 마녀의 꽃>에서 느껴지는 향수는 지브리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명암과 차후 행보를 짐작게 하는 지표들이다.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담아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그 와중에 은퇴를 번복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복귀작 제목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로 정해졌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너의 이름은.>

애니메이션의 명가들

스튜디오 지브리만 있는 게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받치고 있는 건 오히려 TV를 기반으로 한 제작사들이다. 대표적으로 <기동전사 건담>을 만든 선라이즈는 메커닉물의 명가였지만 1995년 반다이에 인수된 뒤 <결계사>(2006), <은혼>(2006), <러브 라이브!>(2006)의 히트작을 제작했다. 빼어난 작호로 정평이 난 교토 애니메이션은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2006)로 유명세를 얻은 뒤 <케이온!>(2010) 등으로 기반을 다진다. 그 밖에 <포켓몬스터>(1997), <요괴워치>(2014) 등 아동을 대상으로 한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흥행시킨 OLM,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의 가이낙스, <공각기동대>의 프로덕션 I.G,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매드하우스 등 숱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을 떠받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애니메이터들간 교류도 활발한 만큼 볼륨도 더욱 다양하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들의 작화와 기획력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동력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중국 자본을 비롯한 해외 업계에서 이들 제작사를 포섭하고 지원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는 만큼 일본 내부에서도 업계의 처우 개선 등이 화두로 떠오르며 술렁이는 모양새다. 관객 입장에서야 좋은 애니메이터들이 일본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다양한 형태의 제작물을 선보일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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