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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창비세계문학 <모래 사나이>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백종헌 2017-12-19

창비세계문학 <모래 사나이> E. T. A. 호프만 지음 / 황종민 옮김 / 창비 펴냄

일단 E. T. A. 호프만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었다면 첫 수록작인 <황금항아리>에서부터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가여운 대학생이라고 줄곧 불리는 안젤무스는 느닷없이 금색의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 세르펜티나와 사랑에 빠지고 실체조차 설명되지 않는 존재를 그리다가 급작스럽게 드레스덴의 현실로 돌아와 파울만 교감과 대화를 나눈다. 현실이었다가 돌연 비현실이었다가, 그런데 그 비현실 역시 현실에 영향을 주는 이 기묘한 소설을 읽다 보면 대학생 안젤무스는 결국 이성이 지배하는 시민사회와 낭만적인 예술 사이에서 착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진다. 호프만이 창조한 세계에서 모든 환상과 비현실적인 피조물은 현실에 영향을 주고 또한 받는다. 표제작인 <모래 사나이>의 주인공 역시 대학생이다. 주인공 나타나엘은 각각 현실과 환상을 대표하는 클라라와 올림피아 사이에서 혼돈에 빠진다. 나타나엘은 자신에게 불길한 예감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운명에 순응해야만 하는 예민하고 불쌍한 젊은이다. 환상문학의 대가 호프만(1776∼1822)은 이렇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문, 환상이라는 것이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현실의 작용으로 만들어졌거나 비정한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그 어떤 존재로 그려냈다. 프랑스의 문학 이론가 츠베탕 토도로프는 환상문학을 초자연적인 판타지와 다르다고 정의한다. 환상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독자가 작중인물의 세계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로 간주해야 하며, 언급된 사건들이 자연적인 것인지 초자연적인 것인지를 ‘망설이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망설임은 주인공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니 우리가 ‘환상문학’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떠올리는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 <해리 포터> 등은 그의 분류에 따르자면 환상문학이 아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현실에 적응할 것인가, 시적이면서도 경이로운 환상에 머물 것인가. 호프만의 중·단편을 묶은 <모래 사나이>의 인물들은 진기한 일이 벌어지는 동화 속에 머물다가도 이내 현실로 돌아가고 만다. 문학, 음악, 미술 전 분야에 있어서 재능을 드러냈던 호프만의 소설은 당대에도 기괴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에드거 앨런 포, 도스토옙스키, 보들레르, 발자크 등이 호프만에게 영향을 받았다.

나는 동화에나 나오는 사람일세

그대는 실제 인생보다 더 기묘하고 희한한 것은 없으며, 시인은 이 인생을 광택 없는 거울에 비친 듯 흐릿하게밖에 그려낼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리라.(<모래 사나이>, 144쪽)

유념하게, 모든 분별 있는 사람의 판단에 따르면 나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인물이고, 친애하는 발타자어, 자네도 알다시피 이런 인물은 기이하게 행동하며 마음 내키는 대로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일 수 있지. 더욱이 이 모든 말 뒤에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진실이 숨어 있다면 말일세.(<키 작은 차헤스, 위대한 치노버>,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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