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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전문펀드 결성한 씨앤필름 대표 장윤현
2002-04-17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펀드도 한다”

올해부터 씨앤필름의 제작라인이 활발히 움직일 전망이다. 지난 4월10일 씨앤필름 대표 장윤현 감독은 제작에 들어갈 6편의 영화를 공개하며, 50억원 규모의 전문펀드 결성도 발표했다. 구본한씨와 공동대표였던 쿠앤씨필름에서 <텔미썸딩>을 만든 뒤 씨앤필름을 만들어 독립, 다양한 영화를 많이 제작할 요량으로 2년여 갈고닦은 성과인 셈이다. 이날 씨앤필름 사무실에서 만난 장윤현 감독은 지난해 <꽃섬>을 개봉시켰지만 자체적인 기획, 제작 작품이 없던 터라 오랜만에 한시름 놓는 분위기였다. 이번에야말로 제작 관련 비즈니스를 떠나 연출에 전념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결성된 영상전문펀드는 중소기업청이 15억원, 씨앤필름이 12억5천만원, 삼성생명이 10억원, 소빅창투가 7억5천만원, 엔키노가 5억원을 출자한 조합. 제작에 들어갈 6편은 장윤현 감독의 SF액션 <테슬라>와 윤종찬 감독의 <그녀의 아침> 외에 김동빈 감독의 전쟁호러물 <R-POINT>, 장동홍 감독의 스포츠 휴먼드라마 <아이언 맨>, 김태균 감독의 스릴러 <크랙>, 박광정 감독의 <위대한 마돈나> 등이다. 장윤현 감독에게 이번에 결성된 펀드와 제작할 6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테슬라>는 아직 시나리오를 마무리짓지 못했다던데 언제쯤 완성되나.

5월에는 촬영 들어가니까 그 한달 전에는 끝나지 않을까. 이번 시나리오는 약간 특이하다.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비주얼도 들어가니까 색다르게 만들고 싶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

이번에 50억원 규모 펀드를 만들었는데 제작사 입장에서 굳이 펀드를 만들지 않아도 제작할 수 있을 텐데 어떤 이유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물론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좋으니까 한 거지만 알다시피 제작은 확률 싸움이다. 어떻게 작품마다 확률을 높일까 고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리 잘해도 여러 가지 변수가 많으므로 위험과 손해가 생긴다. 그러면 투자사와 제작사가 부담을 지는 부분이 나름대로 공평해야 한다. 막연하게 투자사가 리스크를 감당하고 제작사가 무책임하게 제작하면 누가 계속 하겠는가. 그게 좀더 일반화, 공식화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했다. 기존 펀드와 일을 하면 이 영화는 여기서, 저 영화는 저기서 하는 식으로 연속성이 떨어지므로 책임분산이 불합리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제작사지만 펀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제작할 영화 여섯편을 발표했는데 모두 씨앤필름의 펀드에서 투자하는 작품인가.

꼭 그런 건 아니다. 펀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으므로 50억원은 한 프로젝트에 온전하게 투자하기도 힘들다. 우리 운영 원칙도 한 회사의 프로젝트에 몰려 가는 방식은 피하려 한다. 넓게,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투자할 것이다.

이번에 발표한 영화들이 어떤 작품들인지 설명해달라.

지금 발표한 작품들은 1년 가까이 준비한 영화들이다. 작품마다 다른 장르와 색다른 소재, 겹치지 않는 영화로 가기 위해 골라서 세팅했다. 같이 하고 싶은 감독들을 모으기도 했고. 프로듀서들은 나와 오래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로 정했다. 캐스팅 때문에 스케줄이 정해지진 않았다. 올해 두편, 내년에 네편을 개봉할 생각이다.

올해 개봉될 영화 두편은 어떤 것인가.

윤종찬 감독의 <그녀의 아침>과 김태균 감독(<화산고>의 김태균 감독과는 동명이인, 곽경택 감독 연출부 출신)의 데뷔작 <크랙>이 가장 먼저이다. <크랙>은 굉장히 오래 준비한 영화이다. 심리적인 스릴러인데 장르가 쉽지 않아서 감독이 결정된 다음에도 시나리오를 오래 작업했다. 한국에 스릴러가 많기는 했지만, 심리적인 공포나 느낌을 주는 영화는 별로 없었다. 대부분 범인과 그를 쫓는 사람의 관계가 중심이었는데 <크랙>은 사람들 관계가 얽히는 심리적인 이야기라서 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그녀의 아침>은 시나리오가 나왔나.

감독이 쓴 시나리오가 곧 나오고, 그것이 아마 우리가 그리려 하는 영화에 근접한 그림이 아닐까 싶다.

배우인 박광정씨가 연출하는 영화도 있는데.

<위대한 마돈나>라고 댄스경연대회에 나가는 여자들 이야기이다. 프로듀서인 조윤정씨가 직접 재즈댄스아카데미에 다니면서 그곳에 나오는 아줌마들을 보며 감동을 느껴서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시나리오를 쓰다보니, 연기, 무대, 안무에 대한 느낌이 중요했고, 그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드라마의 틀이 탄탄해야 했다. 그래서 감독 구하는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고 이런저런 얘기하다 박광정씨 이야기가 나왔다. 감독을 하고 싶어하고, 연극연출은 여러 편 했고, 연우무대 출신으로 연기자를 많이 다뤄왔기 때문에 같이하고 싶었다. 박광정씨가 영화연출을 위해 준비하던 작품 <진술>이 있기 때문에, 많이 설득해야 했다.

<파업전야>의 장동홍 감독은 충무로 데뷔작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이 실패하면서 휴지기가 길었다. 장동홍 감독의 다음 영화 <아이언 맨>을 장윤현 감독이 제작한다니 남다른 느낌이 있을 거 같다.

이 프로젝트에 애정이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장동홍 감독을 좋아한다. 내가 제작할 때 정말 같이하고 싶었던 감독이다. 장동홍 감독의 단편 <그날이 오면>을 보고 너무 감동받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장산곶매에서 함께 작업했었고. 영화감독으로서 장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상업영화 질서에서 시련을 겪은 것은 운이 좋지 않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는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에서 작업했다. 그의 재능이 발휘될 수 있는 영화를 꼭 같이 해보고 싶었다. <아이언 맨>은 나약한 한 사나이가 철인3종경기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장동홍 감독 본인의 열정과 욕구, 소재가 갖는 매력이 잘 맞는 것 같았다. 감독 자신이 낸 아이템인데 듣자마자 하자고 했다.

김동빈 감독이 준비하는 <R-POINT>는 전쟁호러물이라고 이름붙였는데 어떤 경로로 준비하게 된 프로젝트인가.

<하얀전쟁> 각색도 하고, 장산곶매 시절부터 알던 공수창 작가가 군대영화를 하고 싶어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냥 군대이야기보다 베트남전 이야기도 넣고 그걸 호러로 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준비하게 됐다. 공수창 작가가 시나리오 쓰면서 <링>에서 함께 작업했던 김동빈 감독이 연출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링>을 할 때 서로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아 두 사람이 진행하게 됐다. <R-POINT>는 임의로 설정한 어느 지역을 말하는데, 문화가 충돌하고 전쟁에서 각자 이익이 충돌하는 어느 특정한 지역을 설정해 만든 말이다. <식스 센스>나 <디 아더스>가 서양이 해석한 동양의 공포라면 우리는 아예 실제로 동양과 서양이 충돌한 지역, 베트남으로 들어가 적나라하게 파헤쳐보려는 것이다. 서양과 동양이 생각하는 공포의 이미지가 충돌하는 영화인 셈이다.

감독을 하다 영화 비즈니스를 시작했는데 사업이 적성에 맞나.

처음 연출을 할 때부터 제작할 생각이 있었다. 사실 감독도 비즈니스 모르고 하는 일은 아니다. 그런 걸 확대해놓은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비즈니스라고는 하지만, 영화 만드는 일이지 배급이나 영화 외적인 수익 창출은 아니다. 아직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비즈니스의 영역 안에 있다. 지금까지 회사를 세팅하는 과정이어서 내 시간이 없었던 것이 어려웠지만, 이젠 그리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왜 처음부터 제작을 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장산곶매 시절부터 이어진 것이다. 프로듀서 하면서 영화 찍는 작업이 내겐 익숙하다. 장산곶매라는 집단 자체가 감독과 프로듀서가 구분돼 있지 않았으니까. 충무로에 와 보니까 여긴 나름대로의 역할이 나눠져 있었지만, 나는 이전 작업이 좋았다. 가능하면 많은 영화, 내가 연출할 수 없는 남의 영화를 하고 싶었다.

최근 여러 영화사가 코스닥 등록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씨앤필름도 코스닥을 염두에 두고 있나.

언젠가 기업을 오픈하는 것이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모습이라고 여기지만 목표가 아니라 노력하다보면 따라올 결과라고 생각한다. 내가 옆에서 지켜본 시네마서비스의 장점도 그런 것이었다. 목표를 정하기보단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다보니 메이저가 된 것 같다. 지금 만들고 있는 영화를 어떻게 하면 더 흥행시킬까, 어떻게 더 많은 영화를 만들까, 어떻게 더 많은 돈을 끌어올까, 고민하다보니 위버그핀커스나 로커스홀딩스도 들어온 거다. 그런 모습이 내겐 본보기다.

앞으로 이들 6편 영화 캐스팅하려면 정신없겠다. 캐스팅에 대한 복안이 있나.

캐스팅에 물론 욕심이 있지만 무리하고 싶진 않다. 좋은 작품이라면 관객도 배우도 알아줄 것이다. 캐스팅도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검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캐스팅 안 되면, 될 때까지 열심히 좋은 시나리오를 쓰는 수밖에 없다.

펀드도 운영하는 입장이 됐는데 수익이 많이 날 것 같은가.

많이 내야 한다. (웃음) 영화는 시간을 사는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가진 시간을 즐거움이라는 요소와 맞바꾸는 것인데 사실 시간을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꾸준히 노력해서, 관객에게 즐거움을 팔 수 있다면 수익낼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김창완씨하고 술을 마시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영화하는 사람들은 관객한테 사랑받길 원해야 한다. 그들 주머니 안에 있는 돈 생각하지 말고 애인에게 사랑받길 원하는 것처럼 관객에게 사랑받길 원해야 된다. 그 이상은 없다”고. 감동적인 말이었고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영화 만드는 사람이 가장 기쁠 때는 관객이 좋아하고 박수 쳐주고 영화 좋았다고 해줄 때다. 돈 벌 때보다도. 지금까지 한국영화나 영화인들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젠 책임을 통감하며 사랑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돈은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글 남동철 namdong@hani.co.kr·김현정 parady@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