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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상 유감
2002-04-17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kookia@jowoo.co.kr

지난주 가깝게 지내는 한 제작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종상 사무국이란 데서 출품에 필요하니까 이런저런 자료를 보내달라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며, “영화인회의의 방침에 따를 생각인데 어떤 입장이냐”고 물었다. 당신이 상임집행위원이라는 감투를 쓰고 영화인회의에 한 다리를 걸치고 있으니, 무슨 지침으로 정한 게 있으면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상당수 제작자들은 대종상을 뜨거운 감자마냥 곤혹스러워한다. 마음 같아서는 출품하고 싶지 않지만, 제작자가 독자적으로 출품을 사양(또는 거부)한다면 같이 작업한 스탭들이 섭섭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영화인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대종상영화제를 보이콧하기로 입장을 정한다면, 그 핑계로 작품을 내지 않아도 스탭들에게 양해를 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는 게 제작자들의 심산인 것이다.

제작자들의 이런 불편함은 오랫동안 누적된 대종상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해마다 뒷말이 끊이지 않은 것은 물론, 상 받은 것이 야유와 비웃음의 대상이 된 적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싶지만, 그동안 대종상을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지만, 올해 대종상에 대한 영화인회의의 입장은 ‘수수방관’이다(여기서 ‘수수방관’이라는 말은, 술자리에서 한 말은 아니지만 별 의미를 담지 않은 비유적 표현에 불과하니 영화인회의의 ‘대종상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검증’하려 들지 말 것). 올해 대종상영화제에 대한 통일된 공식입장을 정하지 않고, 출품 여부는 전적으로 개별 제작사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는 말이다. 대종상영화제의 존재 자체는 인정하지만, 상존하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는 한 본래의 취지와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화인회의는 영화계 대화합이라는 대의에 따라 공동 주최로 나섰다가 관객으로부터 한통속으로 매도당한 쓰린 경험도 이런 판단의 배경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종상영화제가 전통과 권위를 되찾고 관객으로부터 성원받는 행사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은 연구과제가 아니다. 이미 다 나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의 여지가 안 보이는 이유는? 핵심은 한국영화인협회(영협)가 대종상영화제의 ‘주최권’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움직이는 않는다는 확신을 가진 구태 정치인들에게 전국적으로 불고 있는 ‘노풍’이 음모로밖에 이해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영화의 성장과 사회 전반에 흐르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영협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다. 그런데도 영협이 왜 이렇게 대종상 주최에 집착하는지 궁금하지 않나? 상상에 맡긴다. 눈치있는 사람은 알 테고, 감이 안 잡히는 사람은 귀찮더라도 최근 몇년간 영협에 대한 각종 기사와 관련자료를 찾아 보시길 권한다. 최근 한 신문기자는 대종상의 우울한 모습에 대해 “영화계 전체의 적극 참여가 절실하다”며 여지없이 양비론을 들이댔다. 단언컨대 헛다리 짚는 분석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영화인회의는 비겁하게 수수방관하지 말고,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대종상 살리기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게 맞다. 오해 마시라. 대종상영화제 주최권을 영화인회의로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공정하고 안정적으로 영화제를 운영할 수 있는 독립적인 주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