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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들은 뭐라고 싸우는 걸까?
2002-04-17

비디오카페/p찍음

몇년 전 영상번역 인증시험인가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막이나 더빙에 들어갈 대사를 번역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다. 영상번역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걸 느끼는건 가끔 비디오를 보면서 원어와 자막을 주의깊게 비교해볼 때인데, 대사의 핵심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최대한 간략하고 명쾌하게 표현해놓은 몇 글자 안 되는 문장들을 보면, 의역 차원을 넘어서서 그 언어에 대한 노련한 이해가 뒷받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잘된 번역보다 별로인 번역이 더 많다. 비디오의 경우 별로인 번역이라는건 대부분 대사를 뭉텅이로 빼먹는 걸 뜻한다. 주인공이 20초 동안 주절거리고 있는데 자막은 계속해서 “아니, 됐어”라고 못박은 듯 머물러 있기도 하고 자막없이 배우들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일은 비영어권 지역의 영화일수록 자주 일어난다. 클로즈업 되면서 보이는 간판이나 책의 제목은 도대체 뭘까. 즐겁게 웃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 위로 흐르는 저 슬픈 노래의 가사는 또 어떤 의미일까. 가끔 그런 노래가사를 노란색 궁서체로 보여주는 친절한 번역가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 중요한 정보를 멍한 표정으로 놓쳐야 한다. 게다가 문화적인 코드의 차이에서 오는 암시와 유머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는 거다. 자막에 주를 달아놓지 않는 한. 남의 나라말로 된 영화를 보고 나름의 주관을 갖다댄다는 건 여러 번의 비약을 거친 대단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마음으로 통하는 인류공통의 언어를 꿈꾸게 되는 건 엉뚱하게도 이런 때이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bnail@freechal.com